청와대 통신
“홍 기자한테만 알려주는 건데….”현 정부 출범을 준비하기 위해 구성된 대통령직인수위를 출입하던 지난해 2월 초.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인수위 참여 인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곧 있을 내각 및 정부 주요직 인사에 관해 자신이 은밀하게 알고 있다는 일부 내용을 전해줬다. 그는 금융위원장에 A 씨가 ‘윗선’으로부터 낙점을 받았다고 했다. 기자는 다른 라인을 통해 알아보니 A 씨는 다른 주요직에 갈 것이라는 얘기도 적지 않았다. 그래서 지면에 반영하지 않았다. 결국 A 씨는 나중에 다른 주요직에 발탁됐다.지난해 1월과 2월. 기자들의 관심은 온통 새 정부의 진용이 어떻게 짜일 것인지에 쏠려 있었다. 자연히 이른바 ‘실세’들로부터 ‘한마디’ 듣기 위해 전화통을 붙잡거나 사무실 앞을 서성이기 일쑤였다. 당시엔 인사와 관련한 공식 조직이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류우익 대통령실장 내정자, 임태희 당선인 비서실장, 박영준 비서실 총괄팀장 등이 조각 등을 주도했다. 그뿐만 아니라 소위 ‘실세’라는 사람들도 개입하면서 이들의 입을 통해 인선 정보들이 흘러나왔다. 그러다 보니 장관을 비롯한 주요직 인사를 둘러싸고 하마평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공작과 역공작들이 난무했다. 모 실세는 자신이 미는 인사들을 중용하기 위해 마치 당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재가를 받은 것처럼 언론에 흘렸다. 또 ‘라이벌 실세’가 지지하는 인사들을 낙마시키려고 “그 사람은 당선인의 눈 밖에 났다더라. 이번에 기용되기 힘들 것”이라고 얘기해 주기도 했다.언론의 인사 관련 기사가 춤을 출 수밖에 없었다. 누구로부터 듣느냐에 따라 내용들이 다 달랐다. 심지어 같은 날 B신문엔 총리에 충청 출신의 C 씨가 사실상 내정됐다고 보도된 반면 D신문은 E 씨가 낙점됐다고 쓰기도 했다.‘비선 라인’들이 인사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역대 그 어느 정권이든 공식 인사 라인 이외에 정권 창출의 공신들이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그 전통은 그대로 이어졌다.현 정부 출범 전과 쇠고기 파문이 터진 후 2기 개각 및 청와대 참모들 인선 관련 주요 작업들이 롯데호텔에서 이뤄졌다. 당시 핵심 실세들이 롯데호텔에 자주 등장해 ‘인선에 개입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들이 일기도 했다.비선에서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가급적 정권과 뜻을 같이하고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인사를 고르기 위해선 공식 라인만으론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사 때마다 “쓸 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소리가 종종 나온다. 후보군이 많으면 많을수록 좀 더 능력 있는 사람을 고르기 위한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데 공식 라인만으로는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비선 라인의 추천이 효과가 있을 수 있다.그러나 부작용이 적지 않다. 우선 검증 부문을 소홀히 할 수 있다. 힘 있는 실세가 낙점했는데 아래에서 검증을 ‘세게’ 하기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최근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낙마한 것과 관련, 뒷말이 나오는 것은 이런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들이다. 청와대 민정 라인 실무진과 검찰은 6월 21일 검찰총장 내정 발표 직전까지 권재진 당시 서울고검장이 유력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예상외의 파격 인사가 이뤄졌고, 비선 라인이 작동했다는 설들이 나돌았다. 물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비선 인사 논란이 있는데 정당한 절차에 의해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인사 데이터베이스(DB) 등을 통해 광범위한 후보 물색 작업과 함께 여러 경로를 통한 평가 등이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다.정확히 누가 추천했는지는 베일에 가려 있으나 다른 얘기들도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권 고검장이 김경한 법무부 장관과 같은 대구·경북(TK) 출신이란 점 때문에 고심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천 후보자가 지방 근무 시절 인연을 맺은 청와대 핵심 인사가 추천했다는 설이 있다. 또 정부 요직에 있는 이 대통령 측근 인사의 천거설도 나돌았다. 검증에 미비점이 생겼고 결국 ‘사단’이 벌어졌다.청와대는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뒤늦게 인사 검증 시스템의 총체적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비선 라인 개입의 부작용을 막을 묘책들이 나올지 주목된다.홍영식·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