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 대명사’ 이덕화 충무로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이덕화(57) 충무로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카리스마는 TV 화면이 아닌 실제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끝자락이 소용돌이치며 치켜 올라간 눈썹은 분장이 아니었다. 부릅뜬 듯 보이는 눈초리도 예사롭지 않았다. 탄탄한 얼굴과 거침없는 말솜씨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그의 나이를 잊게 했다.평소 언론 인터뷰에 나서지 않는 이 위원장이 기자를 만나게 된 것은 충무로국제영화제(8월 24일~9월 1일, 충무로 일대)와 한국 영화계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는 현재 영화배우협회장이기도 하고 지난주(7월 2일) 끝난 고 유현목 감독 장례위원회 부위원장이었고, 충무로국제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고, 또 한창 방영 중인 ‘천추태후’ 촬영 중이다. “이거 원. 내가 배우인지, 행정 전문가인지 모르겠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한국의 배우’를 대표하는 그의 상징성 때문인지 점점 그에게 많은 일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어릴 때부터 봐 왔던 선배들에게 진 마음의 빚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그들로부터 받았으니 베푸는 것도 있어야죠. 그래서 한국 영화에 대한 책임감은 늘 있습니다.충무로가 한국 영화의 중심지 아닙니까. 부산 전주 부천 등에 국제영화제가 있는데 서울에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하고 있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제가 별것 아닌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나 스스로 ‘이것 하나로도 최소한 영화계에 기여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위원장을 맡게 됐습니다.지금 영화계에는 신·구세대 간에 보이지 않는 금이 그어져 있어요. 이 영화제를 계기로 하나로 똘똘 뭉쳤으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 바라는 것은 충무로가 한국 영화의 상징인데 너무 관리가 소홀했어요. 지금 충무로 재건 프로젝트들은 많은데, 실행이 잘 안 되고 있어요. 이것들이 빨리 되고 영화인들이 거기에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막상 연기자를 위한 영화제가 됐으면 하지만 영화제가 연기자를 위해 할 일이 많지 않아요. 요즘 매니저들이 ‘영화제들 다 망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합니다. 내가 ‘무슨 소리냐’고 호통 치면 걔들이 그래요. 여배우 하나가 영화제 개막식 참여하려면 코디가 옷, 액세서리 빌려와야지, 헤어와 분장해야지, 차도 필요하지, 기본 경비가 많이 든다 는거예요. 기본 경비를 줘야 맞겠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하는데다 다른 영화제와의 형평성 때문에 그런 걸 줄 수가 없어요. 게다가 감사를 받는 돈이라 함부로 쓸 수도 없습니다. 속 편하게 배우들 몇 명 데리고 오라고 하지만 맨입으로 ‘도와 달라’고 하는 것이 괴롭습니다. 지난해는 날 봐서 배우들이 많이 왔는데 올해는 잘 될지….지난해는 이 행사를 (중)구청 차원이 아닌 서울시 차원에서 하려고 시에 요청했는데 (촛불 시위 여파로) 시기가 너무 좋지 않았고 주위 반발도 거세다 보니 시장님 의지가 꺾였습니다. 시장에게 떠맡기고 도망가면 되겠지만 영화제가 망가지면 내가 다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지난해 대상포진에 걸려 보름 동안 입원도 했습니다.영화제는 대개 처음에는 예산 문제로 관에서 시작하는데 내년에는 독립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 정말 그만하고 싶습니다. 머리털 다 빠지고 대상포진 걸리다 보니 와이프도 ‘뭐하냐’, ‘그만둬라’고 얘기합니다.(영화계에 맺힌 것이 많았는지 영화 출연을 하지 않게 된 이야기로 시작했다.) 내가 지금 영화를 하지 않은 지 13~14년쨉니다. 1996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정권 바뀌고 처음 7~8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았어요. 요즘 음주운전하면 얼마 만에 복귀합니까. 영화·방송 아무것도 안 하고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연극으로 때웠습니다. ‘불효자는 웁니다’에 출연한 게 7년이나 됐습니다. 그때 영화 한 편이라도 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배우가 놀면서 가장 괴로운 게 연말연시 아무데서도 불러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불러주지 않으면 자살하고 싶을 정도예요.2002년 복귀하고 나니까 영화계·방송계가 싹 다 바뀌어 버렸어요. PD고 감독이고 아는 사람이 없는 겁니다. 선거는 배우가 할 일이 아닌데. 자꾸 나를 정치인으로 보는데, 우리 집에는 정치색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YS 출마 때 정치적으로 도운 게 아닙니다. 친구 아버지라서 도운 겁니다. 제 성격이 한다면 화끈하게 하고, 하지 않으려면 아예 안 하는 겁니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고 유세장 70번 정도 가고, CF 출연에 방송 연설도 했습니다.그때 내가 정치인이라는 생각을 단 1%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거 출마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등 떠밀려 나갔습니다. 당시 광명이 야당 밭이었고 희망이 없다는 것도 모를 때였습니다. 선거비용도 많이 들어갔는데 낙선해도 돌려주는 것으로 알 정도로 정치를 몰랐습니다.변신을 하지 않아도 변신됩니다. 나이 때문에 이제는 아저씨 삼촌 역밖에 없습니다. 대본 읽어보면 이젠 주요 인물이 아니라 뒷장에 나옵니다. 나이 든 배우들은 사극을 선호합니다. 이덕화가 현대물에 나가봐야 할 게 없습니다. 주인공 조언하는 역할뿐이죠. ‘천추태후’에서 강감찬이란 역은 뭔가 할 역할이 있겠지. 역할이 작아도 나름대로 어필할 수 있는 확률이 있습니다.그거 이야기가 긴데. 쉬면서 연극으로 시간 때우고 있을 때 대인 기피증이 생겨서 낚시에 빠졌습니다. 신안군의 가거도 대흑산도 소흑산도 홍도 등 가 보지 않은 섬이 없어요. 눈물이 뚝뚝 떨어지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때입니다. 6개월은 연극, 6개월은 낚시였습니다.웬 여자가 찾아와서 가발 모델을 제안했는데 ‘남의 약점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해’라며 처음엔 기분이 나빴어요. 그런데 참 끈질기게 계속 찾아와요. 이미지 광고만 한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돈도 많이 준대요. 노느니 그거나 하자. 당시 제가 ‘앵꼬(바닥)’인데 집도 내놓아야 할 처지였습니다. 콘티를 보니까 대머리는 보여주지 않더라고요.지금 13년째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 둘 다 유학해서 대학 다닐 땐데 아이들을 귀국시켜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 사람들이 나타나서 아이들 교육도 다 시켰습니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감사히 생각했죠.난 우리 아이들이 연예인 했으면 하고 바랐어요. 끼를 타고났을 테니까. 그런데 아들은 공부를 택했어요. 직장 생활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노래도 잘 하는데 아까워 죽겠어요. 그런데 걔가 키가 좀 작아요. 키만 더 컸으면.딸애 걔가 웃긴 애예요. 잘 되면 엄청 잘 되고, 잘못 되면 엄청 못 될 겁니다. 어릴 때 교육도 받지 않았는데 노래나 춤 따라하는 것을 보니까 신기하더라고요.그런데 ‘이거 아니면 죽는다’, ‘천직이다’ 이런 형편이 아니라 우리 때와는 의지력이 달라요. 한다니까 잘 됐으면 좋겠고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전혀 안 합니다. 실생활이 다 관리입니다. 축구는 열심히 합니다. 교통사고로 다리가 좀 좋지 않지만 건강에 축구가 좋다고 해서 몇 십 년 동안 하고 있습니다. 전신운동이라 좋대요. 낚시도 엄청난 운동입니다.1952년 영화배우 이예춘의 아들로 태어남. 동국대 연극영화과 졸업. 73년 TBC 13기 공채 탤런트. 백상예술대상 남자최우수연기상. 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 모스크바영화제 남우주연상 등 다수 수상. 96~97년 신한국당 경기광명갑지구당 위원장. 2008년 충무로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현).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