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기 한국벤처투자 대표

지난 1939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의 한 차고(車庫). 이곳에서 스탠퍼드대 출신의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팩커드는 동전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이 설립할 회사의 이름을 ‘휴렛 팩커드’로 할지, ‘팩커드 휴렛’으로 할지 결정하기 위한 것이다. 이 회사가 전 세계에 종업원 30만 명을 둔 세계적인 컴퓨터 업체 휴렛팩커드다. 이 회사는 실리콘밸리 탄생의 씨앗이기도 하다.이들이 창업할 때 가진 돈은 불과 500여 달러. 하지만 이 회사가 거목으로 자란 데는 창업자들의 도전정신과 기술력 못지않게 벤처캐피털(venture capital)이 자금줄 역할을 했다. 벤처캐피털은 기술력과 시장성이 있으면 과감하게 투자하는 자금을 말한다. 수많은 벤처기업인들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벤처캐피털 덕분이다. 초기 벤처기업들은 담보가 없어 대출을 제대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은행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서울 서초동의 한국벤처투자(대표 김형기). 이 회사는 벤처기업들에 젖줄 역할을 하는 곳이다. 개별 벤처기업에 직접 투자하지는 않지만 벤처캐피털 결성을 촉진할 수 있도록 이들 자금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가뭄이 심할 땐 펌프에 물을 한 바가지 부어줘야 물이 나온다. 이때 붓는 마중물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한국벤처투자다.한국벤처투자는 중소기업청 산하 벤처투자 전문 공공기관으로 주식회사 형태를 띠고 있다. 정부가 지난 2005년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었다.김형기(56) 대표는 “흔히 한국벤처투자는 모태 펀드(Fund of Funds) 운용회사로 불린다”며 “개별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게 아니라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목적으로 하는 벤처 펀드(벤처투자조합)에 출자하는 펀드를 운용하는 회사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창업·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투자조합의 운용사인 개별 창업 투자 회사 등이 전문적으로 수행한다.하지만 요즘과 같은 불황기에는 창업 투자 회사들이 벤처투자조합을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언제 이를 회수할 수 있을지, 또 회수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수익을 올릴 수 있을지 불투명해 이곳에 돈을 대려는 사람이나 기관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김 대표는 “최악의 불황 속에서도 점차 벤처 투자 회복에 대한 기대가 조금씩 높아지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는 “금융시장 불안과 경기 침체로 위축된 벤처 투자심리가 최근 모태 펀드 출자 확대와 코스닥 시장의 안정세 등으로 나아지고 있다”며 “특히 모태 펀드 출자 확대(2350억 원)와 국민연금 출자 참여(1900억 원) 등으로 투자 자금이 확충되면서 재원 마련에서 투자 및 회수로 이어지는 벤처캐피털의 선순환 구조가 점차 회복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한다.그는 “지난 4월까지 벤처기업에 대한 신규 투자는 1804억 원으로 2008년 같은 기간에 비해 12.3% 감소했지만 코스닥 시장의 회복과 정부의 강력한 녹색 뉴딜 정책에 힘입어 점차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모태 펀드의 재원은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진흥기금과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산업진흥기금 등 모두 정부 자금이다.김 대표는 “작년 말까지 총 7101억 원의 모태 펀드 재원이 조성됐고 올해는 본예산과 추경예산을 합쳐 총 3350억 원의 재원이 마련된다”며 “이렇게 된다면 모태 펀드가 출범한 2005년부터 올해 말까지 1조 원을 조금 웃도는 총 1조451억 원의 모태 펀드 재원이 만들어지는 셈”이라고 덧붙인다.그는 다만 내년에는 모태 펀드 예산 확보가 어렵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김 대표는 “중기(中期) 재정 계획에 2010년 모태 펀드 출자 예산이 반영되지 않아 내년에는 벤처 투자 펀드 결성이 급격히 위축될 것”이라며 “이로 인해 벤처 투자 시장의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경기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그는 “유례없는 금융 위기로 심각한 충격을 받은 벤처 투자 시장의 신속한 회복을 위해서는 정부 역할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그는 그 근거로 “올 들어 1월부터 4월 말까지 결성된 23개 벤처투자조합(2874억 원) 중 순수 민간 조합은 5개(174억 원)에 불과하다”며 “벤처 투자는 투자 대상, 효과 등에서 정책자금과 뚜렷한 차별성이 있으며 신성장 분야 중소기업 육성 등에 따른 투자 수요도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출연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인다. “벤처 투자는 융자와 달리 이자 지급 부담이 없고 성장성이 높은 기업의 발굴 투자를 통해 고용 창출과 매출액 증대 등 경제적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김 대표는 한국의 대표적인 벤처캐피털 리스트 중 한 명이다. 1953년 밀양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제대학원에서 벤처 투자 전문가로서 기반을 다졌다. 한국기술개발(국내 최대 벤처캐피털인 KTB네트워크의 전신)에 창업 멤버로 입사해 28년간 벤처 투자 전문가로서 인생을 살아왔다.벤처 펀드는 ‘용감하고 참을성 있는 돈’으로 불린다. 그만큼 리스크가 높고 회수에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김 대표는 “모태 펀드 출자조합의 운영 기간은 통상 7년이어서 한국벤처투자의 정확한 성과를 확인하려면 2012년이 돼야 가능하다”며 “그런데 지금까지 2개의 조합이 조기 해산됐는데 수익률은 19.5%”라고 덧붙인다.그는 “투자 자금은 융자와 달리 담보가 없어도 받을 수 있다”며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도 자금이 부족해 개발하지 못하는 중소 벤처기업에 투자 자금은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라고 강조한다. 그는 “모태 펀드가 유입되면 일종의 인증 효과가 있어 시중 유동자금이나 기관 출자자가 동반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되면 기업은 유동성 부족에서 해방돼 자신의 사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제2의 메디슨이나 휴맥스, CAS, NHN 같은 기업들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그는 “개인적인 바람은 제2의 벤처 붐을 일으키는 것”이라며 “다만 조용하면서도 거품이 제거된 벤처 투자 붐”이라고 소망을 밝힌다. 이를 통해 “한국벤처투자가 한국 경제를 살리는 축이 되어 세계시장에서 신화를 써 내려 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다. 1953년 밀양 출생. 71년 경북고 졸업. 76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2000년 서강대 경제학과 석사. 81년 한국기술개발 입사(자금 및 영업부장). 99년 KTB네트워크 상무. 2002년 나라신용정보 전무. 2005년 한국기술투자 대표. 2008년 8월 한국벤처투자 대표(현). <회사 개요〉창업:2005년본사:서울 강남구 서초동주요 사업:벤처투자조합에 대한 출자를 통한 벤처기업 지원모태 조합(fund of funds)의 총 재원:약 1조 원모태 펀드(fund of funds)는 벤처 펀드에 투자하기 위한 펀드다. 정부 예산으로 결성되며 지난 2005년 출범 이후 약 1조 원이 결성됐다.벤처 펀드(venture fund)는 벤처기업이나 중소기업에 투자하기 위한 펀드다. 관련법에 따라 중소기업창업투자조합(중소기업창업지원법), 한국벤처투자조합(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법), 신기술사업투자조합(여신전문금융업법)으로 나눌 수 있다. 투자 대상은 중소·벤처기업이라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투자 요건과 결성 방법 등은 조금씩 다르다.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