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갓 결혼한 친구를 얼마 전 만났다. 그의 최대 고민은 지금 집을 사느냐 마느냐였다. 정부의 경기 부양 정책 때문에 시중에 돈이 넘쳐난다는데 집값이 하반기에 치솟지는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가격이 뛰면 정부가 금리를 올린다고 하는데 지금이라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사야 하는지 아니면 좀 더 기다려 봐야 하는지 혼란스럽다고도 했다. 그는 은행과 부동산 중개업소로 열심히 발품을 팔고 다녀 봐도 명확한 해법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 친구가 우려하는 것은 결국 돈이 넘쳐나면서 그 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가 집값이 뛰게 되고,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사실 이 부분은 정부의 고민이기도 하다. 경기 부양을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이다, 추경이다 하면서 시중에 푼 돈들이 과잉유동성 우려로 돌아왔다. 실제 시중에 나도는 돈과 시중은행이 한국은행에 예치해 둔 돈을 합한 본원통화는 지난 4월 61조 원으로 1년 전에 비해 21% 늘었다.하지만 경기 불확실성으로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돈들이 투기적 성향을 띠면서 국지적으로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5000만 원에서 최대 2억 원까지 올라 떨어지기 이전의 80~90% 수준으로 돌아섰다. 최근 청약을 실시한 청라지구, 송도국제업무지구 등 4개 단지에 청약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뤄 계약금만 총 2조565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이 몰렸다.그래서 요즘 나오는 단어가 ‘출구 전략(exit strategy)’이다. 출구 전략이란 어떤 정책을 선택한 뒤 예상되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그로부터 빠져나오는 전략을 말한다. 어떤 상황에서든 쓸 수 있는 용어지만 요즘 논의되는 출구 전략은 경제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각국이 경쟁적으로 풀었던 돈이 앞으로 초(超)인플레이션을 부를 수 있으니 통화 긴축을 통해 흡수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는 금리 인상이나 재정지출 축소 등의 방식이 쓰일 수 있다.하지만 정부는 아직은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윤종원 경제정책국장은 6월 25일 하반기 경제 운용 방안 발표에서 “통화정책은 한국은행이 판단해 운용할 것이고, 재정정책은 어느 정도 확장적 기조를 끌고 가고 고용·복지 등 한시 대책을 어떤 속도로 줄여나갈 것인가는 추후 경제 상황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다.이는 당분간 현재의 확장적 정책 기조를 유지하되 경기 회복세가 뚜렷해졌다고 판단되면 ‘출구 전략’을 실행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다만 ‘출구 전략’을 위한 준비 단계로는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윤 국장은 이 자리에서 부동산 투기를 우려해 “주택 담보대출 관리를 강화하는 등 선제적 대응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정부와 한국은행이 일반 은행에 지원한 외화유동성도 8월 말 만기 이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했다.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연스럽게 풀었던 돈줄을 조이려는 시도다. 정부는 또 경제 위기 극복을 목적으로 한시적으로 도입한 각종 대책도 연장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정부 입장이 이러한 것은 아직 경기 해빙의 조짐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5월 취업자 수는 1년 전에 비해 21만9000명 줄었다. 한 달 전인 4월 취업자 감소 폭이 18만8000명이었던 것에 비해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이다. 오는 7월 비정규직법 시행을 앞두고 있는 것도 위험 요소다. 여당은 시행 시기를 늦추겠다고 방침을 정했지만 국회 통과는 불투명하다. 이미 상당수 기업들이 비정규직 직원들을 해고하기 시작했다.섣부른 출구 전략이 오히려 장기 불황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1997년 일본의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은 일부 경제지표가 호전되자 “일본 경제의 불황은 끝났다”고 선언한 뒤 소비세율과 금리 인상에 나섰다가 경기를 급랭시켰다.결국은 출구 전략을 사용하되 그 시점이 관건이다. 앤 크루거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과 교수가 6월 23일 서울 장충동에서 열린 세계은행 개발경제 컨퍼런스에서 “지금도 출구 전략을 논의할 수 있겠지만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얘기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답변한 것도 이를 우려했기 때문이다.박신영·한국경제 기자 nyusos@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