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드러커 탄생 100년 기념 컨퍼런스
21세기 세계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에게 쉴 새 없이 통찰력과 변화를 요구하는 메시지를 전했던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 교수(Peter Ferdinand Drucker, 1909~2005). 피터 드러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 6월 17, 18일 양일간 서울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국제 컨퍼런스(피터 드러커 소사이어티·한국경제신문 주관)의 주제는 ‘피터 드러커 솔루션’이다.이번 컨퍼런스는 드러커 교수가 생전에 던진 제안을 토대로 글로벌 경제 위기에서 인류가 헤쳐 나갈 해법과 한국 경제가 나가갈 방향 및 기회를 모색한다는 취지다. 부제는 ‘사회적 책임과 고성과 사회로 가는 열쇠(The Key to Responsible High-performing Society)였다.경영학에서는 피터 드러커 원칙을 ‘효과적 경영’ ‘윤리적 리더십’ ‘사회적 책임’의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하고 있다. 그리고 드러커 교수는 ‘혁신’과 ‘기업가 정신’을 방법론적으로 강조했다.이러한 그의 주장으로 현재의 세계를 바라볼 때, 금융회사의 탐욕이 글로벌 금융 위기를 낳았고 드러커 교수가 생전에 강조했던 사회 책임론이 바로 현재의 왜곡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컨퍼런스에 모인 세계적인 석학들은 드러커 교수가 강조했던 ‘혁신’과 ‘기업가 정신’이 고성과 사회로 가는 열쇠임을 재차 확인했다.드러커 교수는 생전에 한국을 주목했다. 뜨거운 교육열로 향후 세계경제를 주도할 국가로 한국을 지명했으며 세계에서 기업가 정신이 가장 투철한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그리고 그가 강조한 사회적 책임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열린 ‘피터 드러커 탄생 100년 기념 컨퍼런스’는 그의 사상에 의미를 더욱 부여했다.컨퍼런스에는 ‘히든 챔피언’의 저자인 독일 헤르만 지몬 교수, 지식 경영의 대가인 일본 노나카 이쿠지로 히토쓰바시대학원 명예교수, 아이라 잭슨 미국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장 등이 참석했다. 일본의 피터 드러커로 불리는 노나카 교수는 철학이 없는 서구식 지식 경영이 결국 현재의 경제 위기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드러커 교수의 경영 철학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가치관이나 윤리 의식에 바탕을 두고 상황에 맞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혜, 즉 실용적인 지혜(Practical wisdom)가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다.하지만 서구식 경영대학원(MBA)은 철학이나 공동선보다는 단순하고 형식적인 지식을 강조했고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겸허함을 가르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그는 짚었다.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강한 공동체 의식은 피터 드러커의 사회 책임 사상의 유산을 이어가는 데 이상적인 것으로 평가됐다. 중국의 밍글로 샤오 드러커아카데미 회장은 “한국이 10년 전 금융 위기를 극복한 것도 이러한 공동체 의식 때문인데, 국민들이 은행에 모여 제값보다 낮은 가격에 금을 파는 모습은 놀랍기도 하고 감동적이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방글라데시에서 전개되고 있는 그라민 은행의 ‘마이크로크레디트(소액 신용 대출) 사업’도 사회적 기업의 한 사례라고 소개했다.남승우 피터 드러커 소사이어티 공동 대표 겸 풀무원홀딩스 대표는 이와 관련, “현대 사회에서 장수 기업으로 남으려면 환경에 대한 책임과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며 지속적인 혁신을 통해 질 높은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고 말했다.혁신은 드러커 교수의 핵심 개념 중 하나다.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필요한 인재와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드러커 교수가 말하는 혁신이다.릭 와츠만 미국 드러커인스티튜트 회장은 “너무 쉬운 것인데 왜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평가를 받는 혁신이 가장 훌륭한 혁신”이라며 혁신은 가까운 곳에서 작은 것에서부터 남이 아닌 나부터 실천해 직접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성공적인 혁신을 위해서는 혁신을 위한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와츠만 회장은 “조직 체계의 변화 없이는 혁신이 어렵다”며 “새로운 팀을 만들어 권한과 책임을 주고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한편 슈밍자오 중국 난징대 경영대 학장은 혁신의 바탕에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통찰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드러커 교수가 누구보다 컴퓨터의 대중화와 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혁신을 실천했던 한국의 기업가 정신이 쇠퇴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한정화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의 기업가 정신이 최근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며 “기업가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 우리 정부와 사회에 주어진 과제”라고 말했다.한 교수는 사회 분위기가 기업에 비우호적이 되고 기업이 실패하면 기업가가 너무 많은 리스크를 떠안게 되기 때문에 점점 모험을 감행하려는 기업가가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해 성토했다. 그리고 파산법 개정 등으로 실패 비용을 낮출 것을 해법으로 제시하면서 “기업이 파산해도 기업가가 지는 부담을 지금보다 낮춰 젊은층이 창업을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리고 강력한 리더십이 바로 혁신의 기반이라는 점이 강조됐다. 프랜시스 허셀바인 미국 리더투리러협회장은 “리더가 혁신을 조직 전체로 확산시킬 수 있어야 한다”며 “이렇게 해야만 구성원들이 변화를 위협이 아닌 기회로 인식하고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강력하고 효과적인 리더십을 권한이 집중된 리더십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경고했다. “과거의 리더는 지시를 내리는 사람이었지만 미래의 리더는 질문을 던지면서 혁신 마인드를 일깨우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헤르만 지몬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규모는 작지만 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 즉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의 주요 성공 요소로 리더십을 꼽으면서 그 중요성을 설명했다. 지몬 교수는 기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한 첫 번째 요건은 야심찬 목표를 가진 경영자가 성공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경영에 뛰어들지 않으면 큰 시장이 형성돼 있고 유능한 근로자가 많다고 하더라도 훌륭한 기업이 탄생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히든 챔피언의 최고경영자(CEO)의 특징은 원칙에 대해서는 보수적이지만 세부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유연하다는 점을 꼽았다. 지몬 교수는 “한국의 중소기업들은 뛰어난 기술로 최고 품질의 상품을 생산해 내지만 글로벌화가 상대적으로 덜 돼 있어 대기업에 납품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소수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글로벌 시장을 직접 개척하려면 다양한 국가에서 일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한국의 잠재적인 히든 챔피언은 현재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이 부족한 상태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글로벌 영업을 할 수 있는 인재가 시급하다는 것이다.한편 지몬 교수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과의 대담에서 한국의 신성장 동력 사업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17개 신성장 동력 산업 전부를 추진하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이나 독일과 같은 중간급의 국가가 이 모든 것을 다 소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며 “독일의 경우 모든 분야에서 리더가 되려고 하지 않고 특정 분야에만 집중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세계적인 석학들의 열띤 토론 속에 우리 사회와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피터 드러커 국제 컨퍼런스는 직설적인 위기 돌파 방법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해법을 찾도록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들이 던진 말들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