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건 도요타의 재기 몸부림
일본의 도요타자동차 본사가 있는 아이치현 도요타시의 모토마치 공장 조립라인은 작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전장품 조립부엔 12명이 1개조로 작업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6명만 일하고 있다. 올 들어 생산량을 생산 능력의 50% 수준으로 줄이면서 라인 흐름 속도도 절반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조원 6명은 쉬고 있는 걸까.그렇지 않다. 조장을 포함한 나머지 조원들은 조립부 사무실에 모여 회의 중이다. 회의 주제는 전장품 장착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가이젠(改善)’ 방안. 현장에서 작업하면서 느꼈던 불편한 점과 개선 아이디어 등을 자유롭게 토의하면서 조립 시간을 단 1초라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짜내고 있다.세계 경기 침체로 자동차 판매가 급감하면서 대대적 감산에 돌입한 도요타 공장은 지금도 썰렁하지 않다. 조립라인이 천천히 돌면서 자동차 생산량이 줄긴 했지만 그 공백을 ‘가이젠’ 열기가 채워주고 있다. 가이젠은 도요타를 ‘세계 최강의 자동차 회사’로 만든 대표적 생산성 혁신 운동이다. 감산으로 작업 인원이 줄면서 여유가 생긴 근로자들은 원가를 아끼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가이젠’에 다시 머리를 싸매고 있다.도요타는 지난 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4610억 엔(약 6조 원)의 영업 적자를 냈다. 비상 경영을 선언한 도요타는 올해 공장의 원가 개선을 통해 총 3400억 엔을 아끼는 긴급 수익 개선책을 추진 중이다. 현장 근로자들의 가이젠 활동은 회사의 이런 방침에 대한 자발적인 호응이다.◇ 크라운 마크X 등 도요타의 중대형차를 만드는 아이치현의 모토마치 공장은 올 들어 생산량을 50%로 줄였지만 근로자들의 손놀림은 바쁘기만 하다. 생산량을 줄인 만큼 작업 인원도 절반으로 감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건비 절감을 위해 부품 운반 등 보조 인원은 더 줄였다. 감산으로 조립라인은 천천히 흐르지만 근로자들은 뛰다시피 일해야 할당량을 끝낼 수 있다.오전 10시 40분 2교대 오전반의 점심시간. 벨 소리와 함께 라인이 서면 작업자들은 장갑을 벗고 조립 공장 건너편의 구내식당으로 향한다. 횡단보도 앞에선 좌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자동차가 오는지 확인하고 건넌다. 공장 내 안전 수칙 준수도 철저하다. 40분간의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작업자들은 라인의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물론 라인에 들어갈 때 담배와 휴대전화 등 개인 용품을 소지할 수 없다. 담배는 10분간의 휴식 시간에 정해진 흡연실에서만 피울 수 있다. 이에 따라 식당 근처 등에서 담배를 물고 잡담하는 근로자들을 찾아볼 수 없다. 도요타 본사 홍보부의 호리 도시아키 그룹장은 “작업 시간과 공장 내 안전 수칙 준수는 근로자들의 의무”라며 “근무 기강은 제품 품질과 직결되는 만큼 모든 근로자들이 불만 없이 규칙을 잘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모토마치 공장 생산관리부 사무실 한쪽엔 몽당연필을 모으는 나무 상자가 있다. 여기 모인 몽당연필들은 1주일에 한 번씩 볼펜대에 끼워져 직원들에게 다시 지급된다. 세계 최대 자동차 회사인 도요타가 몽당연필까지 재활용하기 시작한 건 작년 11월부터다. 기노시타 미쓰오 부사장을 위원장으로 긴급 수익개선위원회가 구성돼 아낄 수 있는 비용은 뭐든지 아끼자는 캠페인이 시작됐다.이때부터 공장에선 더러워지면 버리던 작업용 목장갑을 빨아 쓰고 있다. 사무실에 컬러 프린터가 사라졌고 복사지도 이면지를 사용한다. 엘리베이터는 절반만 가동되고 화장실의 손 말리는 에어 드라이어는 모두 코드가 뽑혔다. 비용 절감에 지독하기로 유명한 도요타답게 마른 수건을 쥐어짜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현장의 위기의식과 긴장감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도요타는 앞으로 소형차의 생산비용 절감도 본격 추진해 2012년까지 연간 1000억 엔(약 1조3000억 원)가량의 비용을 줄일 방침이다. 우선 일본 내에서 생산하는 ‘카롤라’와 ‘비츠(Vits)’ 등 연간 100만 대의 소형차를 대상으로 차체와 부품을 공통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이를 통해 한 대에 10만 엔(약 130만 원)씩의 원가를 아낀다는 얘기다. 일단 일본 내 공장에서 성공한 비용 절감책은 해외 공장에도 적용해 나갈 계획이다.도요타에선 노조도 회사의 위기 극복 전략에 손발을 맞추고 있다. 지난 3월 말 끝난 올해 임금 협상에서 노조는 ‘기본급을 동결하고 보너스를 삭감하자’는 회사안을 그대로 수용했다. 6000명의 기간제 종업원(계약직) 감원에도 토를 달지 않았다. 노조는 오히려 해고된 사원들을 모아 재취업을 위한 재교육과 직장 알선을 실시해 회사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도요타 노조의 나카마루 노부유키 기획국장은 “회사가 창업 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을 맞은 만큼 노사가 합심해 위기를 돌파하자는 게 조합원들의 지금 정서”라고 말했다. “글로벌 대기업 노조가 파업하는 건 사회적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 대화와 협상으로 못 풀 문제가 어디 있나.”최근 아이치현 도요타시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고노 신야 도요타자동차노조 서기장(사무국장)은 현대자동차 등 한국 자동차 회사들의 연례행사처럼 벌이는 파업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위원장 부위원장과 함께 노조 3역 중 한 명인 고노 서기장은 7년째 도요타 노조에서 일하고 있다.자동차 판매 급감으로 생산이 절반 이하로 줄었기 때문에 현장 근로자들이 회사의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노조는 당초 기본급 월 4000엔(약 5만2000원) 인상과 연간 보너스 198만 엔(약 2600만 원)을 제시했다. 그러나 한달간의 협상 과정에서 회사의 경영 악화를 무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노사 관계가 나쁠 때인 1950년 협상 때 회사안에 반대해 파업한 적이 있다. 그 뒤로는 한 번도 거부하지 않았다.결과적으로 회사안을 수용했느냐 여부보다는 최종 결정까지의 협상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노조는 6만3000여 명의 조합원들이 모두 납득할 수 있는 수준까지 회사 측과 대화와 협상을 한다.기간제 종업원은 일종의 계약직 사원이다. 계약이 끝난 경우 회사가 고용 연장을 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노조가 무조건 고용 보장을 요구할 수는 없다.없다. 보너스 삭감안에 대해선 650여 명의 대의원들이 전원 찬성했다. 극심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최대한 성의를 보였다는 걸 대부분의 조합원들이 이해해 주고 있다.”큰 동요는 없다. 감산으로 생긴 여유 시간엔 공장에선 원가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가이젠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있다. 현장 근로자들 사이에 이럴 때일수록 1초, 1엔이라고 아끼고 개선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협상 문화에 차이가 있다고 본다. 우리는 노사가 흉금 없이 대화하고 협의하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다고 본다.도요타시= 차병석·한국경제 특파원 chabs@hanky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