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통신

시도 때도 없다. 지난해 2월 25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와 한나라당 간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잦은 마찰로 국정 혼선은 거듭됐고, 그때마다 수습책으로 소통 채널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불통’의 강도는 더해갔다. 당·청 간의 불협화음은 우선 사회적으로 큰 여파를 불러일으킨 대형 이슈의 대처 방안을 놓고 발생했다. 지난해 4월 말부터 불거진 미국산 쇠고기 파문과 하반기 경제·금융 위기가 대표적 예다. 한나라당에선 국면 전환용의 개각을 비롯한 쇄신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세게 훈련했는데 뭘 또 바꾸나” “문제가 있을 때마다 바꾸면 일을 할 수 없다”는 등으로 거부했다. 그러다가 막판 개각을 전격 단행했다. 최근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한나라당은 또다시 국면 전환용 인적 쇄신 카드를 꺼내 청와대를 압박하고 있고 청와대는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은 하지만 정치적 목적 아래 떠밀린 개각은 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구체적 정책 현안을 갖고도 숱하게 대립했다. 그동안 제2롯데월드 신축 승인, 종합부동산세,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 밤 10시 이후 학원 교습 금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완화, 비정규직 고용 기간 연장, 신차 구입 때 세금 감면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정치적 동지끼리 왜 이렇게 사사건건 싸울까. 기본적으로 당·청은 각기 시각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정 운영의 책임을 지고 있는 청와대는 경제 살리기에 최우선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론에 일일이 반응하기보다 좀 더 길게 호흡을 가져간다는 스탠스다. 반면 한나라당은 민심의 흐름과 접촉하는 최일선에 있다. 그만큼 여론에 민감하다는 얘기다.한나라당은 당·청 간의 마찰을 청와대의 독주 때문이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주요 정책을 당과 충분한 협의 없이 발표하고, 당정 협의도 통보하는 식으로 형식적으로 운영되며 당내 반대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밤 10시 이후 학원 교습 금지 방침을 일방적으로 밝히는 바람에 당이 강하게 반발하며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좋은 취지가 희석됐다는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지난해 하반기엔 수도권 규제 완화를 놓고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았다.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수도권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당·청이 엇박자를 내면서 국정 혼선이 초래됐다는 비판을 들어야만 했다. 지방 균형 발전 대책이 먼저 나오고 수도권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원들의 의견이 무시됐다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이다. 종합부동산세 과세 기준선을 6억 원에서 9억 원으로 올리는 법안을 낼 때도 마찰음이 터졌다. 특히 서울 강남권 의원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의원들의 강한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청와대로서도 할 말이 많다. 일단 한나라당이 당·청 간 불통의 비판 화살을 날리는 데 대해 여당으로선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수긍하면서도 불만의 기류가 적지 않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여당에서 주요 국정 현안을 사전에 충분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고 하는데 청와대와 정부 입장에선 다급한 경제 위기 사정을 감안해 조속히 집행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에선 청와대가 상하 관계 차원에서 지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불쾌한 반응들이 나오고 있지만 주요 정책의 경우 당정 협의 등을 통해 사전 충분히 교감을 한다”며 “오히려 당의 입장이 조속히 정리되지 않아 혼선을 빚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화살을 돌렸다.여당이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파동 이후 꾸준히 제기해 온 인적 쇄신 주장 이면에 당 측 인사를 내각에 포진하려는 숨은 뜻이 있는 것 아니냐는 게 청와대 일각의 시각이다. 청와대의 조율 기능이 미흡하다는 것에 대해선 당을 이끌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다고 답답해 한다. 과거 같이 공천권 행사, 당직 인사, 자금 지원 등을 할 수 없는 마당에 당이 청와대의 말을 듣겠느냐는 것이다.그러면서 청와대는 한나라당이 먼저 통일된 쇄신안을 마련해 오라고 요구했다. 한나라당이 6월까지 쇄신안을 마련하겠다고 한 만큼 당·청 갈등의 마침표를 찍게 될지, 아니면 또 다른 마찰이 시작될지가 초미의 관심거리다.홍영식·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