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드러낸 글로벌 차이나 커넥션

중국 베이징에 있는 런민대에서 회계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줄리안 미코는 아프리카 기니 출신의 엘리트다.아시아태평양국제교육협회(APAIE, 회장 이두희) 4차 회의가 열린 런민대 캠퍼스에서 지난 4월 16일 만난 그는 유창한 중국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중국명 후리안 미커인 그가 중국과 인연을 맺은 건 2000년 런민대 경제학과에 입학하면서부터. 4년간 학부를 마치고 기니로 돌아가 재무부 공무원을 거쳐 엑슨모빌 기니법인에서 일하다 지난해 중국으로 다시 왔다. 그는 중국으로 다시 유학 온 이유를 중국의 가능성과 중국 정부의 학비 지원을 꼽았다. “아프리카 경제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세계적 다국적기업들이 중국에 몰려 있습니다. 그만큼 취업 기회도 많고요. 게다가 중국 정부는 장학금까지 제공합니다.” 런민대 국제관계학원에 지난해 입학한 루마니아 출신 카멜리아 카카이나와 인력자원 석사과정에 다니는 마다가스카르 출신 나린드라 등 다른 외국인 유학생들도 중국 유학 이유가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 대학들이 정부와 손잡고 ‘글로벌 차이나 커넥션’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 세계 인재를 유치해 인도네시아 정계의 버클리마피아(미국 유학파)처럼 곳곳에 친미 인맥을 형성한 미국 대학들을 벤치마킹하겠다는 것이다. 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날 APAIE 연례 총회 개막식에서 만난 하오핑 중국 교육부 부부장(차관)은 “지난해 중국으로 유학 온 외국인 학생이 처음으로 20만 명(연간 기준)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개혁·개방을 시작한 1978년에 비해 180배 늘어난 것이다.중국으로 유학 온 외국인 학생은 매년 20% 늘어 최근 30년간 123만 명에 달했다. 교육부는 중국 유학 전후로 본국에서 장관급 직위를 가진 인력이 30여 명, 대사급은 20여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중국 대학으로 해외 인재들이 몰리는 것은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모델을 선호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발 금융 위기는 선진국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감을 부추기며 이런 추세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중국 정부와 대학들이 앞 다퉈 외국인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도 중국을 ‘세계의 공장’에서 ‘글로벌 인재 공장’으로 바꾸는 배경이다. 지난해 중국 정부 장학금을 받고 유학 온 외국인 학생은 전년보다 33% 증가한 1만3500명에 달했다.중국 언론들은 내년이면 중국 정부가 주는 장학금을 받고 중국에서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이 2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 정부는 외국인 유학생 편의를 위해 2003년부터 거류증을 해마다 갱신하지 않아도 되도록 제도도 바꿨다.중국 정부가 해외에 중국 문화와 중국어를 알리는 첨병인 공자학원을 늘려 세우는 것도 외국인 유학생 유치와 연계돼 있다. 공자학원이 차이나커 넥션의 인프라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초 한국을 찾은 공산당 서열 5위 리창춘 정치국 상무위원은 한라대학 공자학원 개관 기념식에 참석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지난 2004년 서울에 1호 공자학원을 시작으로 해외에 세워지기 시작한 공자학원은 이미 78개 국가 305개에 이른다.중국 대학들은 와튼스쿨 등 세계적인 경영대학원들과 교과과정을 연계 운영하는 국제화 전략도 쓰고 있다. 해외에 분교나 공동 학위 과정을 개설한 중국 대학은 런민대 등 24곳에 이른다. 런민대 지린대 등 중국 대학들이 APAIE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대학 간 네트워크가 차이나 커넥션의 인프라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잔타오 지린대 총장은 “지린대생 가운데 매년 1000명이 해외로 유학가고 매년 1000명이 해외에서 오지만 아직은 부족하다”며 “APAIE를 통해 학생 교류를 더욱 늘려 나가겠다”고 말했다.세계 공장에서 글로벌 인재 공장으로 자리 매김하려는 중국 대학의 노력은 다국적기업과의 산학협력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상하이시 정부가 자오퉁대 캠퍼스를 새 연구·개발 단지인 쯔주과학원구로 옮긴 뒤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오므론 등 세계적인 기업들을 유치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베이징대학 밀집 지역인 중관춘에 IBM 등 다국적기업들의 연구소가 몰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MS는 아예 중국 연구소와 40여 개 중국 대학들이 공동으로 인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다롄시가 25억 달러짜리 공장을 짓고 있는 인텔로 하여금 반도체대학을 만들도록 유도한 것이나 한국 조선업체 STX와 연계해 대학에 조선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로 한 것 역시 세계 인재 공장으로 거듭나는 중국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차이나 커넥션 구축은 인구 대국에서 인재 강국으로 변신하려는 중국의 전략을 보여준다. 중국의 인재 강국 전략은 파격적인 조건으로 해외 고급 인재를 유치하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중국 정부가 1인당 100만 위안(약 2억2000만 원)의 보조금 제공과 자녀 교육비 세액 공제 등의 조건을 내걸고 해외 인재 유치 작전에 돌입한 게 대표적이다. ‘천인(千人)계획’이 그것. 지난해 말 중국 정부가 발표한 해외 인재 1000명 유치 프로그램으로, 최근 구체적인 유치 기준이 공개됐다. 이 기준에 따르면 자격 요건은 55세 이하로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해야 하며 △해외 저명 대학 및 연구소의 교수급 인력 △다국적기업 또는 금융회사 임원 △해외에서 창업한 경험과 지식재산권을 보유한 기업인 △국가에서 긴급히 필요한 고급 인재 등이다. 해외 유학파는 물론 외국인 전문가도 포함된다. ‘천인계획’에 따라 선별된 인재들은 매년 중국에서 6개월 이상 체류해야 한다. 이들은 중국 내 대학, 연구소, 국영기업과 금융회사 등의 고위층으로 활동하거나 중국의 국가 과학 기술 개발 프로젝트 책임자로 뛰게 된다.이들은 우선 일회성 보조금으로 100만 위안을 받고 외국인인 경우 본인은 물론 가족 전체가 영구거류증 또는 2~5년의 복수 비자를 발급받게 된다. 중국 내 의료 양로보험 등 각종 사회보험에도 가입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급여에서 지출된 자녀 교육비, 이사비, 친척 방문비용 등을 5년간 세액공제해 주기로 했다.이미 중국은 지방정부와 기업들이 각개전투식으로 해외 인재 유치에 나서고 상하이시와 금융회사들이 미국과 유럽의 금융 중심지인 뉴욕 월가와 런던 시티에서 잇달아 연 금융 인재 채용박람회에선 2000여 명이 몰리는 성황을 이뤘다. 금융뿐만 아니다. 중국의 창안자동차는 지난해 말 미 디트로이트에서 채용설명회를 개최한 결과 7000통의 입사 지원서가 몰려 회사 홈페이지가 다운되기도 했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제너럴모터스(GM) 크라이슬러 포드 등 빅3 자동차 회사에서 최근 발생한 실직자는 10만여 명이다. 현대자동차의 중국 합작 파트너인 베이징자동차 관계자는 “미국의 빅3 자동차 회사에서 실직한 우수 인재들을 영입할 경우 중국 자동차 기술력이 선진국을 따라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중국은 실리콘밸리 인재 ‘쇼핑’에도 나서고 있다. 최근 중국 200개 기업이 대만의 한 헤드헌팅 회사를 통해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채용 박람회를 열었다. 베이다팡정그룹은 최고재무책임자(CFO) 모집에 연봉 100만 위안(약 2억2000만 원)을 제시했다. 캘리포니아 주 정부가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3월 기준 실리콘밸리의 실업인구는 10만 명, 실업률은 11%에 달했다. 야후, 시스코, 노텔 등 내로라하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감원 대열에 합류하고 있는 위기를 중국은 기회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오광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