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시선에서 벗어나라

세상살이가 하도 고달파서인지, 이른바 ‘88만 원 세대’의 루저(Loser: 실패자) 정서를 반영했다는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가 인기다. 좋았던 시절, 그 비싼 스타벅스 커피를 거뜬히 소비해 내던 20대는 지금 ‘싸구려 커피’를 마시며 불황의 시대를 ‘음유(吟遊)’하고 있다.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는 마르크스 사상의 갑작스러운 부활을 알리는 캠퍼스의 현수막을 보면서 경탄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유령이라도 절망하고 있는 젊은 세대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일까. 그러나 경제 이론으로 이 난국을 헤쳐 보겠다는 것은 시대착오, 아니면 망상일 터. 문제의 진짜 발단은 우리가 너무 인간을 몰랐다는 것이다.끝없는 인간의 탐욕을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확고한 신념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우리들의 착각이 오늘의 위기를 낳았다. 지난 시대를 풍미했던 386세대의 가치적인 몰락은 이를 방증한다. 지금까지 경영자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 그것은 경제학자들의 몫이라고 외면해 왔다.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정교한 숙고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불행의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글로벌 시장의 붕괴를 직면하고 있는 우리 경영자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다. 우리는 지금 인간의 본질에 대해 물어야 한다. 경영이 결국 인간에 대한 문제라면, 왜 우리는 이 문제를 지금까지 진지하게 묻고 답하지 않았을까.1420년 코시모 데 메디치는 부친으로부터 메디치 은행을 물려받았다. 당시 메디치 은행은 피렌체에서 세 번째 큰 규모로 급성장했고 사람들은 부러움과 시기심으로 신흥 부자 가문의 새로운 지도자인 코시모를 주목했다. 피렌체 귀족(노빌리)들의 견제가 강화됐고 특별히 알비치 가문은 노골적으로 코시모와 메디치 가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코시모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라’는 메디치 가문의 가훈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따라 입장을 바꾸고, 이웃이 잘되는 것을 절대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코시모는 “질투는 물을 안 주어도 잘 자라는 잡초”라고 자주 말했다.코시모는 메디치 가문의 저택을 건축하기 위해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브루넬레스키에게 설계를 맡겼다. 브루넬레스키는 메디치 가문의 위상에 맞게 거대한 저택의 설계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코시모는 브루넬레스키의 저택 설계안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크기가 작고 검소한 건물 외양을 가진 미켈로초의 설계안을 받아들였다. 공연히 거대한 저택을 신축해 피렌체 사람들의 질투심과 귀족들의 견제 심리를 부추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던 것이다.코시모의 관심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유배지에서 돌아와 실질적인 피렌체의 통치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코시모는 늘 신중하고 겸손하게 행동했다. 그는 피렌체 시내에서 이동할 때 절대로 말을 타지 않았다. 말을 타고 다니면 피렌체 시민들과의 노상 대화가 불가능해질 뿐더러 하층민과의 위화감이 조성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코시모는 피렌체 시내를 걸어 다니면서 마주치는 주민들에게 늘 웃음으로 대했다. 장거리 이동을 위해 말을 타야 할 경우라면 그는 당나귀를 애용했다.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겠다는 의지를 당나귀를 타고 가며 보여 준 것이다. 코시모의 이런 행동은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위선이었으며, 실제로 그는 매우 음흉한 사람이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코시모가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런 절제된 행동을 했다는 것이다.먼저 코시모는 피렌체 시장의 확대와 안정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당시 피렌체는 밀라노와의 전쟁에 패해 국가 경제가 거의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피렌체 정부는 모든 시민들에게 강제적으로 재산을 등록하도록 했고, 일괄적으로 등록된 재산에 0.5%의 세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이런 가혹한 세금 정책은 피렌체 하층민들에게 부당하게 집행됐고, 이들의 불만이 커져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었다.코시모는 피렌체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전쟁은 반드시 피해야 하고 높은 세금에 시달리는 하층민들의 불만을 달래는 것이 피렌체 시장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보았다. 사회질서가 붕괴되면 결국 은행가가 제일 먼저 타격을 받게 된다. 따라서 코시모는 평민들의 불만을 달래주기 위해 늘 겸손하고 신중하게 행동했으며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이 부과되는 누진세를 적용해 사회의 질서와 안녕을 꾀한다. 본인 스스로 더 많은 세금을 납부하는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 주었다.피렌체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내부적인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했다. 코시모는 자신이 피렌체의 실질적인 통치자임을 각국의 영주들에게 각인시켜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거래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각국의 대사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주기 위해 신중하게 행동했다. 그는 먼저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묵묵히 상대방의 말을 듣기만 하는 태도를 유지했다. 꼭 말을 해야 할 경우 간단한 단문만 사용했다.코시모의 개인 문장은 다이아몬드였다. 다이아몬드가 절대로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semper) 모습을 유지하는 것처럼 사람도 마땅히 그래야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셈페르(한결같은)한 사람을 좋아했고 외국과의 관계에서 셈페르한 피렌체의 모습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그는 내부적으로 피렌체의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고 외부적으로 자비로운 지도자의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자선사업을 적극 활용했다. 평생 총 40만 피렌체 플로린(금화)을 자선사업에 기증했는데, 이는 피렌체 국가 총수입의 2배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예루살렘에서 병이 든 성지 순례자를 위한 자선병원을 자비로 설립했고 피렌체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선단체인 ‘산 마르티노의 착한 사람들’을 창립하고 후원했다. 그는 매년 성탄절과 부활절에 이 자선단체에 개인적으로 500플로린의 기부금을 냈는데, 이것은 메디치 은행 간부의 3년 치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코시모의 생애를 이렇게 평가했다.“그는 대단히 사려가 깊은 사람이었다. 중후하고 예의 바르고 덕망 넘치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초년은 고통과 유배와 신변 위협 속에서 지냈지만 지칠 줄 모르는 관대한 성향 때문에 모든 정적을 누르고 백성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거부이면서도 살아가는 모습은 검소하고 소탈했다. 당대에 그만큼 국정에 통달한 사람도 없었다. 변화무쌍한 도시에서 그는 30년 동안 실질적으로 피렌체를 지배했다.”인간은 질투하는 존재다. 우리는 모두 천재 모차르트를 죽도록 미워했던 평범한 살리에리의 후손들이다. 자본의 속성은 잉여(剩餘)의 문제를 낳게 되고, 결국 인간은 이 잉여 때문에 서로 질투하게 된다. 그렇다. 잉여가 있는 곳에 문제가 있다. 돈이 남으면 그 돈을 어떻게든지 써야 하는데, 이 돈이라는 것은 쓰면 쓸수록 더 필요해지는 이상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문제는 이 욕망의 성취 과정을 통해 사회적 갈등이 고착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의 불평등한 분배로, 지역감정으로, 세대 간의 갈등으로, 정치적 노선으로, 이데올로기로 분열돼 있는 한국 사회는 코시모 데 메디치가 살았던 15세기의 이탈리아와 많이 닮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피렌체 시장의 확대와 안정을 위해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코시모 데 메디치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신중하고 사려 깊은 태도를 유지하면서 당나귀를 타고 다녔던 코시모의 처세에서 더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안셀모 칼테로니는 코시모의 죽음을 이렇게 추모했다. “오, 모든 속인들의 빛이여, 모든 상인들의 빛나는 귀감이여, 모든 선한 일꾼들의 참된 친구여, 훌륭한 피렌체인들의 명예여, 빈자들의 친절한 봉사자여, 고아와 과부들의 구원자여, 토스카나 지방의 철통같은 방패여!” 21세기 한국 사회는 이런 코시모 데 메디치의 도래를 고대하고 있다.최선미·연세대 경영대학 교수김상근·연세대 신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