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새 성장동력 ‘승강기 산업’

“현대 아산타워와 정몽헌R&D센터는 기술 입국 정신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국민들의 윤택한 삶을 위해 혼신을 다한 고 정주영, 고 정몽헌 선대 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입니다.”지난 4월 15일 현대엘리베이터가 경기도 이천에 완공한 초고속 승강기 테스트타워 준공식에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시아버지와 남편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점을 강조했다.승강기 테스트타워 중 세계 최고 높이(205m, 52층)인 이 타워의 이름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호(號)인 ‘아산’에서 따고, 타워의 1층에 있는 연구·개발(R&D)센터도 직접 고 정몽헌 회장의 이름을 따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현대는 현대·기아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등으로 나눠져 있다. 이 중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을 비롯해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증권 현대택배 현대유엔아이 현대아산 현대경제연구원 현대투자네트워크 등 10개 계열사를 두고 있다. 현대의 대표 산업이 자동차인 만큼 이와 분리된 현대그룹은 대표적인 성장 동력을 찾고 세계적으로 키워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현정은 회장이 올해 초 신년사에서 밝힌 ‘2012년 매출 34조 원, 재계 순위 13위’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대그룹은 ‘1등 브랜드’ 육성 전략을 통해 엘리베이터, 유조선, 물류, 증권 소매영업 등 계열사별로 경쟁력이 뛰어난 분야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천명했다. 이런 가운데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창립 이후 최초로 연간 승강기 설치 1만 대를 돌파하며 국내 시장에서 업계 실적 2년 연속 1위, 2008년 시장점유율 1위(37%)로 지난해 4396억5500만 원의 매출 실적을 낳은 효자 계열사다.이와 함께 현대엘리베이터는 기술적으로도 독자적인 원천 기술을 갖추고 상당한 진보를 이뤘다. 현대아산타워에 국내에서 가장 빠른 분속 600m급 초고속 엘리베이터 설치와 테스트를 마쳤고 오는 9월에는 세계 최고 속도인 분속 1080m급을 개발 완료할 예정이다. 또한 이제 세계시장에 본격적으로 나갈 채비도 마쳤다. 참고로 현재까지 국내 최고 속도 승강기는 63시티에 설치된 분속 540m로 미쓰비시제이며, 세계 최고 속도는 대만 타이베이 101빌딩의 분속 1010m 승강기다.따라서 이번 현대아산타워의 준공은 현대그룹에게 매우 경사스러운 행사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날 내린 봄비 때문에 야외 행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장녀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와 동행한 현 회장은 임시 막사에 머무르며 축하를 위해 참석한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환담을 나누면서 행사의 속개를 기다려야 했다.부득이하게 지하 강당으로 옮겨 열린 준공식에서 현 회장은 “글로벌 기업의 견제 속에서도 유일한 순수 한국 승강기 브랜드인 현대엘리베이터는 세계무대를 향해 비상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현대 임직원 모두가 ‘자신 있습니다’라고 외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세계금융 위기와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해 건설사들이 신규 사업 물량을 축소하면서 엘리베이터 수요는 당분간 줄어들 것으로 현대엘리베이터는 보고 있다. 하지만 철도, 주택공사, 지자체 등의 공공부문 발주는 증가될 전망이고 이와 함께 속속 발표되는 국내 초고층 빌딩 건설 계획은 현대엘리베이터에 큰 기회다. 최근 건축이 결정된 상암동 서울라이트(133층, 높이 640m), 또 제2 롯데월드(112층, 555m)가 최종 건축 허가를 받은 상태고 뚝섬의 현대차그룹 사옥(110층, 550m), 용산 국제업무지구의 드림타워(152층, 620m), 삼성동 한국전력 이전 부지에 그린게이트(110층 이상) 등도 건설이 계획되고 있다.현대엘리베이터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 초고층빌딩은 내년께 본격적으로 발주할 것으로 예상되며 2009년 초고층 부문의 시장 규모는 3000억 원, 2010년 2500억 원 이상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송진철 사장은 초고층 빌딩 승강기 설치를 수주하기 위해 몇 개사와 현재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대엘리베이터는 이제 막 기술 개발을 마친 상태로 초고층 빌딩에 초고속 승강기를 설치한 경험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취약점이 되고 있다.국내 승강기 시장은 현대엘리베이터와 오티스, 티센크루프, 미쓰비시가 각축을 벌이고 있으며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처음으로 오티스를 제치고 1위 차지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시장점유율을 46%까지 끌어올리며 부동의 1위를 확고히 할 계획이다. 하지만 해외시장에서 현대엘리베이터는 아직 후발 주자로서 선도 업체인 쉰들러(스위스) 오티스(미국), 미쓰비시(일본), 도시바(일본), 코네(핀란드)의 큰 장벽을 넘어야 한다. 외국 승강기 기업의 역사가 100년에 가까운 것에 비하면 현대엘리베이터는 25년의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송진철 사장은 “그동안 세계시장에 나가기에는 미흡했다. 세계 유수 경쟁 업체를 벤치마킹하며 자체 기술을 갖게 돼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해외시장 공략에 있어 한걸음씩 진행할 것이며 수요가 많고 경제성이 있는 분속 360m, 420m급 승강기를 주력 모델로 삼을 계획이다. 불황이 시작되기 전에는 산유국인 중동지역을 주요 공략 시장으로 삼았지만 요즘에는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제안을 많이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현재 현대엘리베이터는 중국, 동남아시아, 중동 등 신흥 경제개발국을 중심으로 수출에 나서고 있다.승강기 산업은 전기, 전자, 정보기술(IT)이 결합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2006년 기준 세계시장 규모 30조 원, 국내 시장은 2조 원 규모로 연 2.4%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까닭에 현대그룹은 승강기 사업을 신성장 동력 사업으로 정하고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현대아산타워와 초고속 승강기 기술력은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건설 현대아산 엔지니어링 등이 함께 지난 3년간 750억 원을 투자해 만들어낸 작품이다. 현대엘리베이터 송 사장은 앞으로도 매출의 1.5%를 R&D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현대엘리베이터가 곧 선보일 분속 1080m급 승강기는 첨단 기술의 집합체다. 승강기의 핵심 기술은 권상기(수평으로 된 동체에 감긴 밧줄이나 쇠사슬을 올렸다 내렸다 하는 기계)와 제어기라고 할 수 있는데, 초고속으로 순간 급가속하고 다다랐을 때 순간 제동할 수 있는 능력이 이것으로 좌우된다. 그리고 공기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 항공기에 적용되는 공기역학 캡슐(aerodynamic capsule)과 진동을 잡아주는 능동 진동 제어(active guide roller), 그리고 줄이 끊어졌을 때 자유낙하하는 승강기를 잡으며 멈추게 하는 세라믹 안전 장치(ceramic safety shoe) 등의 기술이 집약돼 있다. 이러한 초고속 승강기의 기술을 보유한 업체는 도시바 등 몇 개 업체에 불과하다.현대그룹은 현대자동차 외에 다른 분야에서도 세계적인 브랜드를 성장시키겠다는 각오 아래 현대엘리베이터에 거는 기대가 크다.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가 승강기 등 공간 이동 산업의 미래를 짊어질 것이며 대한민국을 알리는 또 다른 아이콘으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승강기 부문(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 외에도 비승강기 부문(주차 설비 시스템, 물류 자동화 시스템, 승강장 스크린도어)에도 사업을 확장하며 현대그룹의 든든한 중심축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