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자원은 유한하고 창의는 무한하다.’ 포스코가 포항제철소 정문에 걸린 이 오랜 슬로건을 또 한 번 입증하기 위해 뛰고 있다. 세계 철강사들을 떨게 하는 기후변화 협약에서 오히려 기회를 찾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차세대 그린 에너지 시장을 겨냥해 세계 최대 규모의 발전용 연료전지 공장을 완공했다. 영일만 모래벌판에서 ‘제철입국(製鐵立國)’의 신화를 이룬 포스코가 ‘환경입국(環境立國)’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한국 반대편에 있는 남미의 작은 나라 우루과이. 철광석이 무진장 묻혀 있는 브라질이라면 몰라도 전 국토의 80% 이상이 초원이고 목축업이 중심 산업인 이 나라에 포스코가 특별히 관심을 가질 이유는 거의 없어 보인다. 지난 3월 초 우루과이 현지에 ‘유로탤리(EUROTALY)’라는 계열사를 만들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이 의아해한 것은 이 때문이다.약 9억 원을 투자해 세운 이 회사의 사업 내용은 뜻밖에도 나무를 심는 것이다. 이 지역의 봄에 해당하는 9월부터 1단계로 매입한 1000헥타르(ha)의 목초지에 유칼립투스 나무를 심는다. 포스코는 땅을 추가로 사들여 2013년 전체 규모를 2만 ha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포스코는 우루과이에 여의도 면적의 70배에 달하는 조림지를 갖게 된다.철강 기업인 포스코가 머나먼 남미까지 가서 나무를 심기로 한 것은 탄소배출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기후변화 협약과 관련한 ‘포스트 교토체제’ 논의는 아직 최종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2013년부터 한국도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게 될 것이 거의 확실한 상태다. 이는 제철 공정상 이산화탄소(CO₂) 배출이 불가피한 포스코에는 큰 족쇄가 될 수 있다. 해외 조림 사업은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포스코 에너지사업그룹 김재석 실장은 “우루과이 조림 사업으로 매년 20만6000톤의 탄소배출권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9월 현지에 나무를 심고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으로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 사무국에 정식 등록하면 매년 유엔에서 나와 나무의 생장량을 측정해 흡수한 이산화탄소량을 인증해 준다. 이렇게 확보한 탄소배출권은 5년 단위로 모아 쓸 수 있다. 실제로 이산화탄소 감축 의무가 생기면 탄소배출권을 써 공제 받으면 된다. 배출권 시장에 팔아 수익을 올리는 방법도 있다.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로 유럽 탄소배출권 시장에서 배출권 가격이 CO₂ 톤당 10.3유로까지 떨어졌지만 한때 CO₂ 톤당 20유로를 오르내리기도 했다. CO₂ 톤당 20유로를 기준으로 하면 포스코는 우루과이 사업에서 탄소배출권만 팔아도 매년 약 72억 원의 수익을 남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포스코의 우루과이 조림 사업은 온실가스 감축 규제가 철강 기업에 얼마나 중요한 이슈인지 잘 보여준다. 온실가스 중 특히 철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산화탄소다. 오늘날 이산화탄소 배출은 철강 업체에는 ‘숙명’과 같다. 포스코 녹색성장추진사무국 강희윤 부장은 “철강 1톤을 만드는데 이산화탄소가 2톤가량 나온다”고 말했다. 철(Fe)과 산소(O₂)가 결합한 산화철(FeO₂)에서 철을 뽑아내려면 탄소(C)를 넣어 산소를 떼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 이산화탄소(CO₂)가 나온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소 대신 수소(H)를 환원제로 쓰는 공법이 제안되기도 하지만 아직은 초보적인 연구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현재로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쇳물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이다.세계 철강 업계는 ‘포스트 교토’ 논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포스코는 비교적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다. 일찌감치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효율성을 달성해 놓았기 때문이다. 철강 산업은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다. 우리나라 전체 전기 사용량의 4.4%를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에서 쓴다. 그런데 이 중 76%를 에너지 재활용 기술을 이용한 자체 발전으로 충당하고 있다. 포스코의 에너지 재활용률과 자원 재활용률, 용수 재활용률은 98~ 99%에 달한다. 에너지 절약을 거의 극한까지 밀어붙여 “정말 알뜰하게 철을 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포스코가 온실가스 논의에서 원단위 감축 방식을 주장하는 것도 이런 자신감 때문이다. 원단위 방식은 배출 총량이 아니라 철강 1톤당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양을 감축 기준으로 하는 것으로,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철강사에 유리한 방식이다.포항제철소에 들어서면 노란색으로 칠해진 커다란 배관 파이프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제철소는 이들로 연결된 거대한 에너지의 네트워크라고도 할 수 있다. 복잡하게 들어선 수많은 공장과 고로들이 배관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다. 포항제철소의 주배관망은 45km에 달하며, 가장 큰 파이프는 직경이 4m나 되는 것도 있다. 제철 공정에서 발생하는 4가지 부생 가스가 이 네트워크를 통해 회수되고 재활용된다.지난 2007년 상용 가동에 들어간 포항제철소 파이넥스(FINEX) 고로 옆에는 ‘파이넥스 발전설비’가 설치돼 있다. 파이넥스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생 가스를 모아 전력을 생산하는 복합발전기다. 포스코 환경에너지실 김민수 에너지기획팀장은 “고로 가스를 이용한 복합발전 설비는 세계에 7개뿐”이라고 말했다. 일본 제철소에 4개가 설치돼 있고 중국과 일본에 각각 1개씩 있다. 파이넥스 복합발전으로는 포스코가 세계 최초다.복합발전은 가스 터빈과 스팀 터빈을 결합해 놓은 형태다. 부생 가스를 연소시켜 1차로 가스 터빈을 돌리고 이때 발생한 열을 회수해 2차로 고압 증기를 생산해 증기 터빈을 또 한 번 돌리는 것이다. 당연히 기존 증기 발전에 비해 발전 효율은 12~20% 높다.포스코가 영일만에 제철소를 건설한 후 포항은 ‘철강 산업의 메카’로 불려 왔다. 하지만 조만간 많은 사람들은 포항을 ‘연료전지의 도시’로 먼저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포항제철소에서 차를 타고 북쪽으로 40분 거리에 있는 포항시 흥해읍 죽천리는 바로 이런 꿈이 자라고 있는 곳이다. 동해 바다가 인접한 산속에 지난해 준공된 세계 최대 규모의 발전용 연료전지 공장이 자리해 있다. 그 앞으로 포스코그룹의 연료전지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포스코파워 연료전지부문 사옥이 버티고 있다. 내년 연료전지 스택(발전기) 공장과 연구·개발센터가 들어오면 이 지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연료전지 타운’이 된다.연료전지는 그린 에너지의 총아로 불린다. 소음과 분진, 배기가스가 거의 없어 도심에도 어디든 설치할 수 있다. 발전 효율도 기존 방식을 훨씬 앞지른다. 국내 전기 소비량의 60%를 책임지고 있는 화력발전의 발전 효율이 35%인 반면 연료전지의 발전 효율은 47%에 달한다. 포스코파워 연료전지부문 정하택 생산기술팀장은 “연료전지는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처럼 햇빛, 바람 등 외부 환경에 좌우되지 않아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연료전지는 물을 전기분해해 산소와 수소를 만드는 화학반응의 역반응을 응용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 전해질층에 산소와 수소를 공급해 물과 전기를 만들어 낸다. 연료전지는 일정량의 전기를 저장하고 있어 수명이 다하면 버려야 하는 일반 화학전지와 차이가 있다. 연료인 수소와 산소가 연속적으로 공급돼 전기를 발생시키는 일종의 발전 장치다. 연료전지는 궁극적으로는 물을 분해해 얻은 수소를 사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현재는 수소를 얻는데 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해 수소를 얻고 있다. 정 팀장은 “LNG는 99%가 메탄(CH₄)으로 돼 있다”며 “LNG를 불어 넣어주면 스택에 들어가 고온에서 반응하게 된다”고 설명했다.포스코는 연료전지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2003년부터 작년까지 1500억 원을 연료전지 분야에 투입한데 이어 2013년까지 1조7464억 원을 추가로 쏟아 부을 계획이다. 포스코의 주 타깃은 발전용 연료전지다. 2018년 매출 239억 달러, 시장점유율 40%로 차세대 발전 시스템 시장 세계 1위로 올라선다는 목표다. 정 팀장은 “2003년부터 연료전지 사업을 검토해 상용화 속도가 가장 빠르고 포스코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발전용 시장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포스코의 ‘세계 1위’ 전략은 지난해 세계 최대 규모의 연료전지 공장 준공을 계기로 가시화되고 있다. 포스코는 2007년 발 빠른 시장 진입을 위해 미국 퓨얼셀에너지와 기술제휴를 했다. 미국 동부 코네티컷에 본사가 있는 이 회사는 2세대 용융탄산염 연료전지(MCFC)를 상용화한 유일한 곳이다. 포스코는 기술제휴와 함께 퓨얼셀에너지의 지분 5.6%도 확보해 놓고 있다. 정 팀장은 “퓨얼셀에너지는 소규모 연구·개발 중심 회사로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대규모 생산 설비 구축과 시장 개척에는 한계가 있다”며 “글로벌 금융 위기가 겹치면서 미국보다 한국 연료전지 시장이 오히려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세계 1위를 꿈꾸는 포스코에 원천 기술 확보는 필수적이다. 포스코는 퓨얼셀에너지와 손잡고 2세대 연료전지를 양산하는데 그치지 않고 차세대 제품인 3세대 고체 산화물 연료전지(SOFC) 독자 개발에 나서고 있다. SOFC는 MCFC에 비해 발전 효율이 높고 다양한 형태의 제품 개발이 가능해 많은 기업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정 팀장은 “제너럴일렉트릭(GE)과 지멘스, 롤스로이스가 SOFC를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다”며 “하지만 포스코가 빨리 가고 있다”고 말했다. SOFC는 전해질을 세라믹 형태로 균일하게 구워내고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섭씨 800도의 고온으로 의한 열화 현상을 막는 것이 기술적 난제다. 포스코는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포스텍, 한국과학기술원 등 국내외 4개 대학 6개 연구소와 협력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다.연료전지는 수백 장의 셀(Cell)을 쌓아 스택을 만들고 여기에 수소와 산소를 공급하고 생산된 전기를 처리하는 주변 설비를 붙인 구조로 돼 있다. 포항 공장은 미국 퓨얼셀에너지에서 들여온 스택에 주변 설비를 붙여 국내 수요자에 공급하는 단계에 있다. 포스코는 내년 중 스택 공장을 추가로 지을 예정이며 셀 국산화도 추진하고 있다. 2013년까지 MCFC 국산화와 SOFC 독자 개발을 끝냈다는 게 포스코의 시간표다.발전용 연료전지 시장도 급팽창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2년 의무할당제(RPS)가 시행되면 한국전력을 포함한 모든 발전 사업자는 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반드시 신·재생에너지로 채워야 한다. 이럴 경우 가장 유력한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은 연료전지다. 선박용 연료전지도 유망하다. 2016년 해상오염방지 조약이 발효되면 디젤엔진을 주동력으로 써 온 조선 분야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엄청난 페널티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조선 업체들은 이미 디젤엔진을 대체할 수 있는 동력원으로 연료전지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 밖에 안정적인 전원 공급이 필요한 인터넷데이터센터와 병원, 그리고 일반 빌딩과 집단에너지 사업 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포스코는 세계 철강사들이 벌이는 ‘그린 레이스’에서 앞서가며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고 있다. 녹색성장추진사무국 강 부장은 “온실가스 규제는 위기와 기회라는 양면을 갖고 있다”며 “저탄소 녹색 성장 전략으로 환경과 성장이 선순환하는 구조를 구축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정준양 포스코 회장의 강력한 금연 정책이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2월 말 부임 후 ‘전 직원 금연’을 선언한 정 회장은 “혈액검사를 해서라도 금연 여부를 가려내겠다”며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그는 또 자전거 타기 문화를 정착시키는데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포항시, 광양시와 협의해 자전거 전용 도로 등 인프라 구축에 나설 정도다. 정 회장이 강조하는 것은 생활 방식의 변화, 생활 속의 자발적인 작은 실천이다.그런데 왜 꼭 담배일까. 포스코 헬스업 추진반 강주성 팀장은 “담배는 4단계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담배 농장에서 담배를 재배할 때 주는 화학비료다. 두 번째는 담배 공장, 세 번째는 흡연할 때 내뿜는 이산화탄소다. 담배는 마지막 꽁초가 돼서도 막대한 환경 비용을 유발한다. 강 팀장은 호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캥거루 고기 먹기 캠페인을 소개했다. 호주 정부는 소나 양 대신 캥거루 고기 먹기를 권장한다. 그 이유는 소나 양이 트림과 방귀로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호주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양의 14%를 소와 양이 배출한다. 국제 환경 단체 그린피스도 캥거루 고기 먹기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강 팀장은 “공장이나 자동차만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며 “우리의 생활습관 하나하나가 이산화탄소 문제와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자전거 타기도 마찬가지다. 자전거를 타면 자동차를 탈 때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훨씬 줄일 수 있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걷는 것 보다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한다.포항=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