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 긴급 점검 - 미국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3월 15일 CBS의 ‘60 미니츠(minutes)’에 나와 “은행이 민간에서 자본을 확충하는 날이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위기가 터진 뒤 민간 은행은 자본 확충 길이 막혔다. 은행들의 파산 가능성이 커진데다 언제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을지 모르는 탓에 투자자를 찾을 수 없었다. 연방 정부가 7000억 달러 규모의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을 마련, 금융권의 자본 수혈에 나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경제 및 금융시장 여건이 최악을 지나면서 일부 대형 은행들이 순익을 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1분기 깜짝 실적 발표와 함께 정부로부터 받은 구제금융 자금을 상환하기 위해 일반 공모 방식으로 50억 달러의 유상증자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 달 새 주가가 70%가량 올랐고 은행에 대한 평가가 개선된 만큼 시장에서 돈을 조달해 연방 정부의 연봉 제한 등 구제금융의 굴레를 벗겠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가 공적자금을 상환하면 JP모건체이스, 웰스파고 등 우량 은행들도 최대한 서둘러 정부 빚을 상환할 가능성이 크다.골드만삭스 1분기 순이익은 18억1400만 달러로 전 분기 21억 달러 적자에서 흑자 전환했다. 전년 같은 기간(15억 달러)보다 이익이 증가한 것이다. 보통주 기준으로 주당 3.39달러의 순이익을 거둬 톰슨로이터가 집계한 월가 전망치(주당 1.64달러)의 두 배를 넘었다. 투자은행(IB) 부문과 자산관리 및 증권 서비스 분야는 여전히 위축됐지만 매매 및 투자 분야에서 예상 밖으로 많은 수익을 거둔 결과다. 물론 은행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회계연도 기준을 11월 말에서 12월 말로 바꾸면서 12월에 발생한 13억 달러의 손실이 반영되지 않은 영향도 순익 증대 요인으로 작용했다.이에 앞서 웰스파고는 시장 전망을 훨씬 뛰어넘는 30억 달러의 1분기 순익 전망치를 내놓았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와 씨티그룹도 작년 4분기보다 뚜렷하게 개선된 1분기 실적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미국 대형 은행의 실적이 개선된 가장 큰 요인은 자산 부실화에 따른 상각 규모가 감소한 점을 꼽을 수 있다. 또 FRB가 모기지 증권 등을 매입을 통해 시장금리와 모기지 금리를 크게 낮추면서 순이자마진(NIM: Net Interest Margin)이 커졌다. 특히 모기지 금리가 급락하면서 유리한 금리 조건으로 다시 모기지 계약한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은행 순익이 불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이 불안한 탓에 매수 및 매도 호가 간 차이가 커졌고 이를 활용해 채권 및 외환 상품 부문에서 상당한 수익을 거뒀다.미국 은행주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3월 들어 지속적으로 상승세를 타는 주식시장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3월 중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7.7% 올라 월간 단위로는 2002년 10월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FRB의 강력한 신용 완화 정책 추진과 재무부의 공공·민간 투자 프로그램(PPIP) 세부 시행 방안 발표 등으로 금융 시스템이 조만간 정상을 되찾을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4월 들어서도 제너럴모터스(GM)와 크라이슬러의 파산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가 평가(mark-to-market) 완화와 일부 경제지표 호조 영향으로 상승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시가 평가 완화로 미국 은행의 순익이 20%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보도했다.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반영하는 공포지수는 작년 9월 신용 위기가 터지기 이전 수준으로 낮아졌다.최근 시카고옵션거래소에 상장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의 변동성을 반영하는 VIX지수(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olatility Index)로 ‘공포지수’라고도 함)는 장중 36.96까지 떨어져 금융 위기 발생 직후인 작년 9월 26일 34.72를 기록한 후 6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VIX지수는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뒤 계속 높아져 작년 10월 24일 89.53까지 치솟았다가 올 들어 평균 44.51로 낮아졌지만, 이는 지수 산정을 시작한 지 19년간의 평균치 20에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채권시장도 재무부의 대규모 국채 발행 증가에도 불구하고 FRB의 시장 개입 등으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3개월 리보금리(런던 은행 간 금리)와 하루짜리 은행 간 대출금리 스프레드도 소폭 감소세를 보이는 등 단기 자금시장도 안정적인 분위기다. 외환시장도 대체로 뚜렷한 변수 없이 박스권에서 움직이고 있다.하지만 금융 위기가 끝났다고 속단하긴 이르다. 1분기 깜짝 실적을 발표한 골드만삭스도 금융 산업에 여전히 ‘역풍’이 존재한다며 위험 요인이 가시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데이비드 비니어 골드만 최고재무책임자(CFO)는 1분기 실적 발표 하루 뒤에 가진 콘퍼런스 콜에서 주택저당채권(MBS: Mortgage Backed Securities)을 비롯한 자산 가치 하락세 지속으로 인해 금융 산업에 ‘역풍’이 남았다고 경고했다. 세계경제가 위축된 상황에서 낙관적으로 실적 전망을 할 수 없다는 얘기다.시장 전망을 웃도는 실적 추정치를 발표한 웰스파고의 하워드 애킨스 CFO도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며 향후 실적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경제 상황이 나빠지면 보유 자산 가치가 떨어져 또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여전하다.물론 미국 경제가 최악의 상황을 지나 회복세로 들어서고 있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미국 경기가 바닥에 근접해 있으며 미 정부 및 FRB의 정책이 점차 효과를 발휘하면서 경기가 회복세로 전환될 것이라는 기대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2분기 세금 환급 등 경기 부양책의 효과가 성장률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주택 시장이 조만간 안정을 되찾을 것이란 예상도 흘러나오고 있다. 주택 소유자 지원 대책, FRB의 장기 국채 매입 및 MBS 매입 규모 확대 등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주택 판매가 살아나는 모습이다. 모기지 대출 신청자 수가 최근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주택 경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다수의 전문가들은 실업률 상승 및 주택가격 하락세 지속 등으로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소비지출의 회복 모멘텀이 약하고 금융회사 부실도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경기 회복을 낙관하기는 다소 이르다고 보고 있다. 3월 미국 실업률은 8.5%로 높아졌다. 연말 혹은 내년 초까지 실업률 상승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상황은 지났지만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하기 위해선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주택 시장도 판매 감소세가 진정됐다고 하더라도 주택 가격은 내년까지 추가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아직은 유효하다. 바클레이스캐피털은 내년까지 케이스-실러 주택가격지수가 작년 말에 비해 20% 추가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게 되면 주택 및 상업 모기지 자산이 많은 금융사들은 추가로 자산을 상각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4조 달러로 추정되는 금융권 부실자산을 해결하는데 15년이 걸릴 것으로 경고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일부 경제지표들에서 긍정적인 신호가 나타나고 있지만 경기 회복의 모멘텀이 아직은 약한 만큼 금융시장의 불확실성도 여전하다고 볼 수 있다. 금융시장 안정 여부는 실물경제 상황에 달려 있는 만큼 세계 경제의 흐름과 미국인들이 언제쯤 지갑을 다시 열지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금융시장 안정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이익원·한국경제 뉴욕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