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왔나?

현재 정부가 수립한 행복도시 규모는 도시가 들어설 예정 지역과 도시 주변을 그린벨트로 묶는 주변 지역을 포함한 297㎢다. 예정 지역 면적만 직경으로 8km, 반경으론 9km다. 1기 신도시인 분당의 3.5배, 여의도의 23배인 엄청난 규모다. 단군 이후 최대 국책 사업이라고 평가받을 만하다.최근 재검토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도시 건설 사업은 대부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시범 사업인 첫 마을은 지난 3월 31일 착공에 들어가 현재 33.5%의 비교적 빠른 공정을 기록하고 있고 핵심 지역인 중심행정구역은 27.3%의 공정을 기록하고 있을 뿐 나머지 부분은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현재 토지 보상을 위해 4조2000억 원의 비용이 투입돼 98%가 진행된 상태이며 조만간 보상 작업이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정부 청사는 2012~14년에 단계적으로 건립될 계획이다. 지난 2007년 10월 국제 공모를 통해 마스터플랜이 수립됐다. 중점 사업 중 하나인 광역 교통 개선책 수립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어 대전 오송 청주 공주와 연결되는 도로만 12개나 건설된다. 대전 도시철도 1호선을 행복도시까지 연장하고 청주국제공항과 연계된 교통망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경부고속철도 오송역과 연계되는 도로 공사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밖에도 정부는 행복도시 전 지역을 20분 내 도달할 수 있는 녹색 대중교통 시스템도 도입한다.이들 도로, 광역교통망 등 기반 시설 공정률은 모두 10% 미만에 머물러 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도 바로 이 점 때문이다. 당초 정부가 행정기관 이전을 약속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는 시점에서 기반 시설 건설이 지지부진한 것은 주민들로선 여간 미덥지 않은 부분이다. 정부청사 1구역 건축 공사는 현재 설계 작업만 완료돼 0.9%의 공정률을 기록 중이다. 물론 정부는 행복도시 건설을 위해 지난해보다 76.7%가 증액된 5771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 펴낸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중앙행정기관 건립비용 1218억 원을 비롯해 광역교통시설과 복합 커뮤니티 건설에 각각 2730억 원, 1007억 원씩 투입할 계획이다. 그러나 최근 정부 여당 일각에서 터져 나오는 재검토 분위기를 짐작해 볼 때 예산 편성은 자칫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주민들은 판단하고 있다.행복도시 건설로 가는 길에 지뢰는 곳곳에 잠복해 있다. 정치권 논란은 둘째 치더라도 사업 시행 주체인 토지공사는 ‘주공, 토공 통합’이라는 복병으로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 2007년 설계공모를 통해 공급한 1-2, 4, 5블록은 해당 건설사들이 건설 경기 침체 여파로 대금 납기를 연장해 놓은 상태다. 참고로 이들 블록 택지를 분양받은 건설사는 롯데건설 포스코건설 대우건설 풍성주택 두산건설(이상 1-2블록), 효성건설 극동건설 금호건설 대림산업 현대건설 삼성건설(이상 1-4블록), 쌍용건설(1-5블록)로 이들 업체는 109만2000㎢에 1만5000여 가구를 공급할 계획이었다.그나마 장례단지 은하수공원은 72.0%의 공정률을 기록, 공사 진척이 가장 빠르다.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의 유언에 따라 당초 수도권에 지어질 예정이었지만 건립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면서 결국 행복도시 내에 들어서는 것으로 최종 확정됐다. SK그룹은 500억 원을 들여 단지를 건설해 정부에 무상 기증할 계획이다. 이곳에는 장례식장, 화장시설, 봉안시설, 자연장 묘역 등 총 7만 기가 수용된다. 계획대로라면 올 하반기부터 시험운영에 들어가 내년부터 정상 운영된다.당초 정부가 예상하는 행정도시 인구는 50만 명. 하지만 행정 인력으로만 채우기는 역부족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이 때문에 외자 및 산업단지 조성이 급선무다. 이를 위해 정부는 행정타운 이외에도 도시를 행정, 정보기술(IT), 의료, 교육 특구로 구분해 관련 산업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도시의 자족성 측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대목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행복도시를 대전 대덕 연구단지와 충북 오창 신산업단지 등과 연계해 친환경 IT 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또한 금강운하와 연계해 물류 관광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도 마련했다.교육 시설 유치에도 적극 나서 KAIST가 2014년 개교를 목표로 31만㎡에 IT, BT 대학원, 의과학대학원, 연구중심병원 등을 지으며 고려대도 2014년까지 132만㎡ 부지에 6개 단과대, 7개 일반 전문대를 설치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7000㎡에 측지관측국 시설과 65만㎡에 국립수목원, 산림역사박물관 등도 조성된다. 이 밖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은 현재 해외 유명 의료기관, 의과대학 유치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저탄소 녹색 도시를 만들기 위해 자전거 도로와 보행 전용 녹지 축을 대대적으로 조성하고 예정 지역 52.3%를 공원, 녹지, 하천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도 수립됐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금강은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의 시범 사업으로 지정, 친수 공간과 인공 습지 등이 만들어진다. 이를 위해 정부는 금강유역 정비 사업에 오는 2012년까지 2045억 원의 정부 예산을 투입한다. 도시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15%가량을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한다는 청사진도 마련했다.지난 2008년 6월 행복도시를 탄소 중립도시로 선언하고 청정개발체제(CDM) 추진 기반을 구축한 것도 이 일환이다. 정부가 마련한 CDM 대상 사업은 태양열, 태양광, 폐기물,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는 것과 발광다이오드(LED), 주요 간선도로마다 버스 전용차로제를 실시하는 대중교통 시스템(BRT) 등이 포함돼 있다.행복도시는 노무현 정부의 선거 공약이자 단군 이후 최대 국책 사업이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행정수도 이전을 핵심 선거 공약으로 채택, 충청권 바람몰이에 성공하면서 대권을 거머쥐었다. 당시 참여정부는 행정수도 이전만이 전체 국토의 11.8%에 불과한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48%인 2000만 명이 모여 살면서 발생하는 수도권 과밀 문제를 해소하고 국가 균형 발전의 초석을 만드는 길이라고 강조하며 강공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 결과 2003년 12월 정기국회에서 86%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법률을 제정하게 된다. 과밀화 문제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가 프랑스(18.7%), 영국(12.2%), 일본(32.4%)보다 높다는 것이 행정수도 이전을 주장하는 참여정부의 논리였다. 2004년 7월 이전지로 충남 연기·공주(장기)가 확정되면서 신행정수도 이전은 급물살을 타게 된다. 하지만 신행정수도 건설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과 보수층은 행정수도 이전이 국민적 합의를 거치지 않았다며 헌법 소원을 냈다. 결국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8 대 1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정부 기관 모두를 이전시키려던 참여정부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 당시 헌재는 “정부의 신행정수도 이전은 단순히 행정수도 이전이 아닌 수도 이전”이라고 지적하고 “국민투표가 필수적인 헌법 개정 사항임에도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판결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재판부가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 언급한 논리가 관습헌법이다. 헌재는 “‘수도는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헌법 개정 절차를 거치지 않아 국민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한 만큼 위헌”이라고 말했다.이후 참여정부는 당초 행정, 사법, 입법 등 3부를 모두 이전하는 방안을 대폭 수정, 국방, 외교를 제외한 행정기관의 3분의 2만 이전한다는 것으로 계획을 축소했고 2005년 3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행복도시 건설은 다시 본궤도에 오르는 듯했다. 물론 이 계획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이 제청됐지만 법원은 지난 2005년 11월 수정된 행복도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려 논란의 종지부를 찍었다. 특별법 통과 이후 정부는 2006년 7월과 11월 기본계획과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그해 말 전체 96.7% 토지에 대한 토지 보상을 마무리 짓고 개발에 가속도를 냈다. 동시에 공모를 통해 도시 이름을 ‘세종시’로 확정했다. 그러나 최근 한나라당 수도권 초·재선 의원을 중심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다시 난관에 부닥친 상태다.2002년 노무현 민주당 후보 선거공약 채택2003년 12월 정기국회 신행정수도 이전 특별법 통과2004년 7월충남 연기. 공주 이전 확정2004년 10월 헌법재판소 ‘신행정수도 이전 위헌’ 판결2005년 3월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특별법 국회 통과2006년 7월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기본계획 수립2006년 11월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개발계획 확정2006년 12월 행정중심복합도시 명 ‘세종시’로 확정2007년 7월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착공행복도시 논란은 지역 부동산 경기에도 치명타가 됐다. 당초 엄청난 프리미엄이 기대됐지만 이 모든 기대감은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지난 3월 26일 국토해양부가 2009년도 표준지 50만 필지에 대한 적정가격을 조사한 결과 전국 249개 시·군·구 중에서 223개 지역의 표준지 공시지가가 하락했으며 이 중 충남 연기군은 마이너스 3.99%의 하락률을 기록해 용인 수지(마이너스 5.10%) 다음으로 값이 많이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를 담당한 국토해양부는 연기군 땅값 하락에 대해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계획으로 기존에 많이 올랐던 부분이 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아 상대적으로 공시지가의 낙폭이 컸다”며 “조치원역 부근 구시가지에 있던 상권이 신흥 개발 지역으로 이동한 것도 하락 원인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표준지 공시지가는 개별 공시지가 산정은 물론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증여세의 부과 기준이 된다는 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행복도시 건설이 표류하면서 조치원읍을 비롯해 인근 지역에서는 매물을 서둘러 처분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토지 보상금을 받아 대전, 청주로 이사 갔던 원주민들은 최근 조치원읍, 금남면 일대 아파트로 다시 돌아올 태세다. 하지만 대부분 2억~3억 원 정도의 토지 보상금을 받은 탓에 월세 매물만 품귀 현상을 보이고 있다. 금남면 두진아파트 60㎡(18평형)는 현재 보증금 1000만 원, 월 20만 원씩 월세를 내고 있다. 행복도시 현장과 바로 인접해 당초 높은 프리미엄이 기대됐던 금남면 용포리 신성미소지움(228가구)은 분양가 이하로 값이 떨어졌다. 107㎡(32평형) 단일 평형으로 구성된 이 아파트는 당초 1억6700만 원에 분양됐지만 지금은 1억5000만 원에 물건을 내놓아도 찾는 사람이 없다. 분양 시장도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조치원에 분양한 A아파트는 입주가 임박했지만 분양률이 50%를 넘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 3월 분양한 성호 늘푸른(144가구)도 기간 중 단 한 명도 청약을 신청하지 않았다. 61~81㎡(18~25평)로 구성된 이 아파트는 10년 임대 후 분양이 전환되는 아파트였지만 행복도시 건설이 차질을 빚으면서 저조한 청약 결과를 낳았다. 토지 시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한때 3.3㎡당 25만~30만 원대에 거래되던 농지는 현재 15만 원대로 값이 급락했다. 홍석하 행정중심복합도시 주민생계조합 사무국장은 “정부의 미온적 행태가 집값 하락 등 주민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