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르포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가 들어설 예정인 충남 연기군은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의 ‘세종시 대재앙’ 발언이 나온 후에도 예상외로 평온한 모습이다. 정부 여당의 움직임에 즉각적으로 반발,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릴 것으로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조치원읍을 지나 금남면으로 가는 길목에는 ‘행정도시 건설, 우리의 희망’이라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의 플래카드만 볼 수 있을 뿐 반발 목소리는 그다지 찾아보기 힘들었다.하지만 현장 취재 결과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분노’를 넘어 ‘절망’에 가깝다. 정부 여당의 일련의 모습은 이미 예고된 일이었다는 것이 현지 주민들의 반응이다.연기군 금남면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조한(55) 씨는 행복도시 논란에 대해 묻자 “이젠 정부가 뭘 한다고 해도 믿지 못 하겠다”는 말부터 꺼내며 거침없이 이어갔다.“신뢰가 무너진 지 오래입니다. 거의 절망에 가깝죠. (추진)한다는 말만 되풀이 할 뿐 뭣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마당에,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이 재앙 운운하며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는데 더 이상 뭘 기대하겠습니까.”연기군에는 최근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늘고 있다. 경기 침체 여파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큰 이유는 행복도시 건립 지연에 있다는 것이 지역 주민들의 주장이다. 덩달아 실업률도 큰 폭으로 치솟은 지 오래다. 지난 3월 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8년 지역별 고용 조사 잠정 결과’에 따르면 전국 158개 시·군(특별·광역시 제외) 중 고용률이 가장 낮은 곳은 계룡시(48.3%)였고 연기군(53.8%)이 그 다음을 차지했다. 하지만 계룡시는 군사도시로 군인이 경제활동인구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전국 단위 최저 고용률은 연기군이라는 것이 통계청 설명이다. 현지에서는 행복도시 건설로 연기군의 토지가 정부에 수용되면서 농업 종사자의 비중이 크게 줄어든 것이 고용률 하락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이 같은 고용률 하락은 현지에선 피부로 와 닿는 문제다. 토지를 보상받아 타지로 거처를 옮겼지만 정착할 길이 막막해 다시 행복도시 인근에 생활 기반을 마련하는 인구가 최근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현지 주민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평생 땅 일구는 일로 살아온 이들에게 일자리는 먼 나라 이야기에 가깝다. 여기에 내수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살길마저 막막한 실정이다. 남면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김모 씨도 “보상받은 땅값은 농가 부채로 농협에 상환하고 1억~2억 원으로 겨우 살아가고 있다”면서 “70~80대 노인층은 금남면 주민센터에서 주는 무료 급식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현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정모 씨도 “연기군에서는 저녁때만 되면 하릴없이 당구장이나 술집을 기웃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난다”며 “대부분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고 전했다.행복도시가 들어설 지역의 원주민들은 현재 정부로부터 토지 보상금을 받고 이주한 상태다. 하지만 이들이 토지를 이양하고 정부로부터 받은 돈은 2억~3억 원 선. 당초 이들은 청주, 조치원, 대전 유성 등지로 이주한 뒤 정부가 제공하는 이주자 택지나 조합 아파트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추진이 논란에 휩싸이면서 주민들의 불안감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금남면 까치공인 김소희 중개사는 “금남면 일부를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풀어줬지만 나머지 지역은 그린벨트여서 여전히 토지 거래가 금지되고 있다”면서 “행복도시 건설 이전에도 이 지역은 그린벨트였지만 토지 거래가 자유로웠으므로 지금이라도 당장 전면 규제를 해제해야 한다. 그래야 원주민들이 주변인 행복도시 인근에 땅을 사고 농사라도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남면 양화리 근처에서 만난 이문규(83) 씨는 “시간만 나면 예전 살던 곳을 둘러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며 “시세의 70%로 이주자택지를 공급한다는 것에 희망을 걸었는데 이마저도 물거품이 되는 것 아니냐”며 극도로 우려를 표시했다. 이주자택지는 원주민들에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한차례 전매가 가능한 이주자택지는 지난해 같은 기간만 해도 1억 원가량의 프리미엄이 형성돼 있었지만 지금은 5000만 원대로 떨어졌으며 신도시 추진 자체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면서 매기마저 뜸해졌다.연기군 주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신은 현재 최고조에 달해 있다. 대부분의 반응은 “정부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당초 행복도시 건설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었지만 지난 대선 기간에 이명박 후보가 여러 차례 충남을 방문한 자리에서 “행복도시는 반드시 건설한다”는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다는 것이 주민들의 말이다.“사실 이 대통령이 BBK사건 등 정치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충남을 찾아 한 표를 호소하면서 ‘행복도시 건설’이라는 대선 공약을 재확인했는데 이제 정권을 잡았다고 해서 손바닥 뒤집듯이 말을 바꾸는 것은 충청도민에 대한 선전포고입니다. 사실 그 약속을 믿고 충청도민 상당수가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찍어줬는데 이제 와서 이럴 수 있습니까.”(홍석하 행복도시 주민생계조합 사무국장)참고로 지난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연기군에서 28.1%(1만1585표)의 득표율로 25.5%(1만2525표)의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금남면 둥지공인 나양찬 중개사는 “지난해 2월 임시국회를 비롯해 국회가 열릴 때마다 정부는 행복도시를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었다”면서 “이런 이유로 지난해 지자체 선거에서 충남 충북 대전 등 3개 광역시도 단체장을 모두 한나라당으로 밀어줬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정부의 미온적인 입장에 분노를 표시했다. 일부 주민은 더 이상 정부에 기대를 걸 필요가 없게 됐다며 낙심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조치원읍에 사는 한 주민은 “대통령 자신이 서울시장 재임 시절 ‘행정수도’ 이전을 반대했고, 이재오 김문수 등 한나라당 주류 세력들도 기본적으로 행복도시 건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면서 “논란의 불씨를 지펴 결국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내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지역 주민들은 겉으로는 추진한다고 하면서 뒤로는 ‘재검토’운운하는 행태보다는 솔직한 입장을 밝힐 것을 주문한다. ‘세종신도시 특별법’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보여야 한다고 말한다.“지금도 정부는 행복도시 건설은 원안대로 추진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정부 부처 이전에 대한 행정안전부의 변경 고시는 여전히 불투명합니다. 이런 와중에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행복도시 지위를 광역시 산하 자치도시 정도로 축소하려고 하는데 과연 누구 말을 믿어야 합니까.”(홍석하 사무국장)현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정부가 건설로 경기를 부양할 생각이면 행복도시가 적격”이라면서 “소모적인 4대강 사업에 ‘올인’하는 것보다 국민적 합의를 거친 행복도시를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행복도시 건설은 충청도에 향후 30년간 70%가량 생산, 고용 유발 효과를 만들 대규모 국책 사업”이라면서 “가장 중요한 정부기관 이전부터 확정해야 교육, 산업 시설들의 이전도 줄을 이을 것”이라고 주장했다.하지만 도시 건설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에서나마 제기되고 있다. 조치원읍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정모 씨는 “수도권 규제가 철폐된 마당에 정부가 솔선수범해 이전하지 않으면 기업, 대학들이 목 좋은 수도권을 두고 지방으로 과연 내려오겠는가. 정략적으로 따져봐도 행복도시 건설로 수도권 1000만 표가 날아가는데 쉽게 결단을 내리기는 힘들지 않겠나”라고 반문한 뒤 “행정기관 이전이 행복도시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실효성 있는 도시 계획을 재수립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보다 치밀한 준비를 주문했다.연기 = 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