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 몇 년 동안 근무하면서 우리보다 더 먼저 고령화사회를 맞은 일본 국민들의 은퇴 준비를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은퇴 준비’라는 개념이 보편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령화사회를 맞은 일본에서도 은퇴자의 90%가 오직 국민연금과 퇴직금에만 생활비의 90%를 의존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고 은퇴 후 자금 운용에서도 제대로 된 투자 교육 등을 받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20대 청년들의 제1 관심사가 은퇴 준비라는 어떤 기사를 읽고 한국에서도 이런 현상이 곧 닥쳐오리라고 생각했다.현재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보다 빠른 속도로 고령화사회로 접어들고 있지만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만으로 안정된 노후를 보장하기에는 역부족이다. 2005년 PCA생명이 업계 최초로 은퇴 캠페인을 시작한 이후 여러 금융회사들이 바람직한 은퇴 준비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30대도 은퇴 준비의 필요를 느낄 만큼 인식이 높아졌지만 실제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그리 많지 않다.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반 직장인의 은퇴 시기를 55세로 잡더라도 대부분의 인구가 적어도 20~30년을 은퇴자로 살아야 한다. 병이나 사고로 평균보다 일찍 죽는다면 모를까, 25세부터 경제생활을 시작해 55세에 은퇴한다고 가정하더라도 평균적인 사람이 30년간의 경제활동으로 은퇴 후 또 다른 30년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오래 살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물론 이 긴 세월을 한꺼번에 대비할 수 있는 비법은 없다. ‘이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라’ ‘은퇴 준비 기간은 적어도 10년을 잡아라’라는 기본 원칙을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시간은 부족한 은퇴 자금을 채워주지 않는다. 변화하는 인생 단계와 본인의 재정 상황에 맞춰 나 스스로 주도하면서 정기적으로 계획을 점검하고 준비해 나가야 한다. 불황일 때는 불황인 대로, 호황일 때는 호황인 대로 미래를 위해 저축하고 투자할 필요가 있다.은퇴 후 30년에 대한 자금 계획을 마련했다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마련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30년은 20만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이고, 삶의 질은 단순히 수입을 보장하는 것만으로 담보되지 않는다. 노후에도 일, 돈, 취미 생활, 친구는 필요하다. 오래 살 준비를 제대로 해 두지 않으면 은퇴 후는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이 되고 말 것이다.나 역시 은퇴 후의 삶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 나이에 이르다 보니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건강관리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 대해 스스로에게 되묻곤 한다. 지금은 은퇴하지 않기 위한 은퇴 준비를 구상하고 있다.인생 전반부 동안 무엇을 성취했는지가 만족의 기준이었다면, 후반부에는 무엇을 베풀고 주었는지가 만족과 행복의 근원이 될 것 같다. 그런데 60대 이후가 되면 일을 위해 출근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쉽게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숙제는 아닌 듯하다.“오래 살 준비를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히 돈을 얼마 모았다는 말로 갈음할 수 없다. 긴 노년, 80, 90대까지도 멋지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자금과 건강, 그리고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명확한 계획을 세우고 대비하는 것이 진정한 은퇴 준비다. 은퇴는 직장이나 사회적 지위에서 물러나는 것이지 사회적인 죽음은 아니다. 이 새로운 삶의 단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꼼꼼하게 준비한다면 ‘은퇴’는 더 이상 막연히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오랜만의 여행처럼 생각만 해도 설레고 기다려지는 미래가 될 수 있을 것이다.PCA생명보험 사장약력: 1959년생. 85년 부산대 수학과 졸업. 2002년 아주대 경영학 석사. 84년 교보생명 입사. 87년 한국알리코생명 입사. 2007년 AIG생명보험부문 한국일본 지역본부 부사장. 2009년 PCA생명보험 대표이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