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우먼 팽현숙

요즘 방송가는 1980~90년대를 풍미한 개그계 ‘올드보이’들의 유쾌한 컴백으로 탄력을 받고 있다. 그 선두에서 ‘아저씨’ 시대를 활짝 연 주인공은 바로 최양락이다. 녹슬지 않은 입담에 연륜이 가미된 구수한 그의 개그가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개그맨 커플 1호’로 화제를 모았던 아내 팽현숙에 대한 궁금증 역시 커지고 있다. 그런데 결혼과 함께 방송 활동을 접은 팽현숙은 그간 사업가로 변신했다. 코끝을 유혹하는 구수한 순댓국의 냄새를 쫓아 경기도 덕소로 그를 찾아갔다.“순댓국은 그야말로 서민 음식이잖아요. 불경기에 우리 집은 더 잘되는 것 같아요. 인근에서 일하는 인부들도 많이 오시지만 고급 외제 승용차 타고 오는 상류층까지 손님층이 다양해요. 그분들은 도대체 왜 찾으시나 했더니 사업하기 전 어려울 때 먹던 장터 순댓국 맛이 그리워 오신다고 하더라고요.(웃음)”경기도 덕소에 1년 반 전에 문을 연 ‘팽현숙의 옛날순대국’. 손님들의 대부분은 남자, 그리고 30대 이상이라는 것이 팽현숙(44) 사장의 설명이다. 그들에게는 공통적인 코드가 있으니 바로 ‘그리움’이다. 전통 순댓국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1980년대를 풍미했던 인기 개그우먼 팽현숙에 대한 그리움이 그것이다. 그래서인지 제대로 된 광고 한 번 하지 않고도 그의 순댓국집은 하루 400~500명, 주말이면 가족 단위 손님까지 1000명은 훌쩍 넘는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됐다.“요즘은 손님들이 카메라를 들고 와서 사진을 많이 찍고, 또 찍은 사진들을 블로그에 올리니까 저절로 홍보가 돼요.(웃음) 손님 중에 유독 사진 찍는데 열중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이 우리 집 음식 맛에 대한 칭찬도 많이 해주니까 고마울 뿐이죠.”누리꾼들을 통해 파도타기식 ‘홍보빨’을 받고 있는 순댓국, 과연 그 맛은 어떨까. 밥을 말아 나오는 전통 국밥 스타일은 5000원, 따로국밥으로 나오면 6000원인 대표 메뉴 순대국밥은 첫눈에도 국물 위로 둥둥 떠오른 순대와 머릿고기, 내장이 일단 푸짐하다. 밑간된 채로 나와 양념을 따로 넣지 않아도 되는 것이 특징인 ‘팽현숙표’ 순댓국은 불그스레한 빛깔에서부터 매콤함이 전해지는데, 과연 혀끝에 닿는 맛이 담백하고 칼칼하다.“사실은 서울 여의도에 있는 화목순대국밥의 비법을 전수받았어요. 10년 넘게 남편과 함께 다닌 단골집인데 처음엔 농담 삼아 나중에 비법 전수해 줘야 한다고 얘기했는데 그게 현실이 됐죠. 10년 넘게 설득해서 전수받았지만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나름대로 계속 연구하면서 맛이 변했거든요. 일종의 퓨전이죠.”26년을 지켜 온 ‘원조’의 룰을 깨고 맵기로 유명한 베트남 고추를 밑간할 때 넣는다든지 하는 다양한 시도를 한 데는 사업가로서의 경험이 작용했다. 전통 레시피를 고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는 손님의 입맛을 따라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믿는다.원조에서는 좀 멀어진 맛이 됐다지만 새우젓만 살짝 가미해 주면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칼칼하고 담백한 순댓국 국물은 수많은 마니아를 끌어모았다. 230㎡(옛 70여 평)의 식당이 점심시간만 되면 거짓말처럼 꽉 차는 이유가 바로 그것. 국내산 재료만을 고집하며 매일 아침 담그는 깍두기와 겉절이 등 ‘아낌없이 주는’ 밑반찬 역시 또 찾고 싶은 고객 서비스다. 직접 만드는 4가지 종류의 순대 역시 별미다. 그가 개발한 김치순대와 고기순대는 쫄깃하고 특색 있는 맛을 자랑한다.“5월에 곤지암점을 오픈하는데 그곳 점주도 단골손님이었어요. 가족을 번갈아가며 모시고 와서 수차례 먹어본 뒤에 ‘이거다’라는 결론이 섰다고 하더라고요. 곤지암에 이어 안산점 오픈도 계획돼 있는데 프랜차이즈를 하겠다고 기다리는 분만 15명 정도 돼요.”처음부터 프랜차이즈를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입소문이 난 그의 순댓국 맛에서 경쟁력을 발견한 사람들이 저절로 ‘줄’을 서더라는 것.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커지다 보니 수원에 사업본부를 차리고 전문적으로 ‘팽현숙의 옛날순대국’ 프랜차이즈 상담을 하고 있다. 순댓국 제조 레시피 전수, 인테리어, 오픈 이벤트 지원까지 여느 프랜차이즈 사업과 다를 것이 없다.팽현숙과 순댓국. 요즘 그가 가장 자주 듣는 얘기 중 하나가 “순댓국과 너무 안 어울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순댓국이야말로 사업 20년에 얻은 답”이라고 말한다. 사실 그는 올해로 21년째 이런저런 업종으로 잔뼈가 굵은 사업가다. 10년을 해도 알 수가 없던 길이 20년을 하니 답이 보였단다.“결혼하면서 최양락 씨가 저에게 방송 활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일하면 다른 스태프들이 불편하다고요. 그때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달라고 했죠. 처음 2번은 손해를 봤고, 세 번째로 한 것이 외식업이었어요. 구리시에서 4년 정도 ‘네로25시’란 카페를 열었는데 그때부터 손해를 보지 않았어요. 그때 음식점이 내겐 맞는구나 싶었죠.”자신감을 얻은 그는 양수리로 자리를 옮겼다. 12년 전, 땅 1650㎡(옛 500평)를 매입해 10개월 동안 남편과 함께 한옥을 직접 짓고 퓨전 스타일의 한정식집을 열어 1년 안에 땅값과 건물 값을 모두 건저 내는 쾌거를 이뤘다.“그렇게 잘되던 차에 남편이 이민을 가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호주로 갔는데 1년 만에 돌아왔어요. 최양락 씨는 말로 먹고사는데 말을 제대로 못하고 사니까 답답했죠, 저 역시 언어도 통하지 않고 일도 없으니 너무 답답하더라고요.”9년 전 그렇게 돌아온 남편 최양락은 컴백과 함께 ‘알까기’ 개그로 ‘대박’을 터뜨렸고 아내 팽현숙은 호주 이민 생활에서 힌트를 얻어 매니지먼트형 부동산 임대업에 손을 댐과 동시에 외식업 분야에서 사업가 기질을 십분 발휘하기 시작했다.“순댓국집을 하니까 저더러 ‘어려워서 그러느냐’고 물어보는 분들이 많아요. 전 남편이 아무리 잘나가도 순댓국집 할 거예요.(웃음) 강남에 몇 십억 원씩 들여서 고급 일식집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 대부분 실패해요. 전 크게 무리해서 사업한 적이 없어요. 어떤 사업을 하건 망해도 그 다음 1년은 버틸 수 있을 만큼 여유자금을 만들어 두고 시작해야 해요. 모양새 너무 따지지 마세요. 그냥 오는 대박은 절대 없어요. 발품을 판 만큼 성공하는 것이고 부부가 한다면 두 사람 인건비와 대출이자 정도 남길 생각으로 시작하는 게 정답이에요.”20년간의 ‘산 경험’을 들으려는 사람들로 방송 출연과 창업 강의 섭외가 줄을 잇는 요즘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방송이나 강의를 할 시간이 없다. 순댓국 프랜차이즈 준비와 또 다른 사업 아이템 구상으로 딴생각을 할 틈이 없다.“전국에 순댓국 프랜차이즈를 200~300개 정도 내는 것이 목표예요. 딸이 있는 호주에도 열 생각이고요. 호프 체인점도 구상 중이에요. 전 내일 죽어도 오늘 저녁엔 장부 정리를 할 거예요.(웃음) 제가 열심히 일하면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잖아요. 돈이요? 정말 많이 벌고 싶어요. 5년 후에 계획하는 일이 있거든요. 제 인생, 열심히 살았다는 흔적을 보여주고 싶어요.”“섣불리 밝히고 싶지 않다”는 그의 5년 후 포부는 왠지 이 사회를 순댓국 국물처럼 담백하게 할 ‘좋은 일’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장헌주·객원기자 hannah31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