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법칙④

데릭 윌슨, ‘로스차일드’아버지와 아들, 특히 큰 성공을 거둔 사업가에게 아들은 어떤 존재일까. 250년 동안 세계적인 금융 황제로 군림하고 있는 로스차일드 가문을 보면 ‘하늘이 내린다’는 큰 부자에게 아들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다소 시대착오적이긴 하지만 로스차일드가의 ‘아들 예찬’을 한번 들어보자.= “아들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돼 그는 별 볼일 없는 유대인 떠돌이로 생을 마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손가락 하나로 산을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요컨대 아들이야말로 지속적인 부의 원천이자 아버지에게 ‘에너지’와 같은 존재라는 말이다. 데릭 윌슨이 쓴 ‘로스차일드(동서문화사 펴냄)’에 따르면 로스차일드가는 1750년부터 사채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8대, 250여 년에 걸쳐 세계 최대의 금융 제국을 유지해 오고 있는 신화적인 가문이다. 가문을 일으킨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1744~1812)는 프랑크푸르트에서 고리대금업을 시작해 1800년에 은행을 만들고 이어 다섯 아들과 함께 영국 런던, 오스트리아 빈,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나폴리에 지점을 세웠다. 각 지점들은 서로 파트너십 관계를 맺는 형태를 취했다. 다섯 아들은 나폴레옹 전쟁과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어마어마한 부를 쌓았다.현재 로스차일드 가문은 런던과 파리를 중심으로 석유 다이아몬드 금 홍차 와인 백화점 문화 영화 의학 국제금융 철도 등 전 분야에 걸쳐 다국적 조직을 갖고 있다. 로스차일드가의 재산은 19세기에 이미 4억 파운드(60억 달러)에 달했다.여기에는 로스차일드가만의 사업 원칙이 있다. 바로 딸을 배제한 가족과 사업의 결합이다.= “사업에는 남계(男系)만 참여할 수 있고 여계(女系)는 엄격하게 배제하라.”남녀평등 시대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금융 황제 로스차일드가에 내려오는 철칙이다. 창업자 마이어는 1812년 죽음을 앞두고 “아들만 사업에 참여할 수 있고 딸은 엄격하게 배제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 유언은 ‘로스차일드가의 헌법’이 됐다. 회사의 모든 중요한 지위는 외부인이 아닌 가족 구성원이 맡되 딸이 결혼하면 남편은 사업에 관여할 수 없다. 반면 아들이 결혼하면 그의 아내는 사업에 관여할 수 있다.이는 역설적으로 근친결혼을 낳았다. ‘딸들의 반란’이라고 할까. 마이어의 후손 50쌍 가운데 절반이 사촌 간에 결혼했다. 딸에게 물려주는 것이라고는 결혼 지참금 10만 파운드뿐이었다. 사촌이나 삼촌과 결혼하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었다. 이는 가문으로 보면 결혼으로 인해 재산을 분산시키지 않아 가문과 딸들의 잇속이 서로 맞아떨어지는 것이기도 했다. 근친결혼은 총자산을 보호하고 가문의 결속력을 더욱 굳건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때로 큰 부자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불문율이나 원칙이 있는데 로스차일드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가족 간의 화합과 결속은 250년 동안 로스차일드가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다. 죽음을 앞둔 마이어는 다섯 아들을 앞에 두고 유언 대신 평소 즐겨 들려주었던 다섯 개 화살의 일화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들려주었다. 그 일화는 기원전 6세기 무렵 카스피해 일대에서 강대한 국가를 건설했던 유목민족인 스키타이의 왕이 임종 직전 다섯 왕자에게 말했던 것이다. 왕은 한 묶음의 화살 다발을 내밀며 한 사람씩 그것을 꺾어보라고 말했다. 아무도 그것을 꺾지 못하자 왕은 화살 다발을 풀어 하나씩 주고 꺾어보게 했다. 이번에는 누구나 쉽게 부러뜨렸다. 왕은 말했다.= “너희들이 결속해 있는 한 스키타이의 힘은 강력할 것이다. 그러나 흩어지면 스키타이의 번영은 끝날 것이다. 형제간에 화합하라.”로스차일드의 성공 신화에서 다음으로 주목되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파트너십 관계’를 들 수 있다. 보통의 성공 스토리에서는 아버지가 힘겹게 기초를 닦으면 이를 토대로 삼아 아들들이 올라서지만 로스차일드가의 경우에는 아들들의 사업 계획에 아버지가 지혜를 더하는 형태를 취했다. 아버지가 사채업으로 명함을 알리자 장삿속에 밝은 아들들은 아버지의 지혜를 빌려 면직물, 금융업, 금괴 밀무역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그 역할은 셋째인 네이선이 해냈다. 그가 로스차일드가를 사채업자에서 세계적인 금융 황제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역에서 말하는 이른바 ‘이섭대천(利涉大川)’을 감행한 것이다.= 큰 성공, 즉 대축(大畜)은 가족을 돌보지 못하는 희생(不可食)과 큰 강을 건너는 모험(利涉大川)이 있어야 이루어진다.(‘주역’에서)주역에 따르면 대축의 조건으로 ‘불가식’과 ‘이섭대천’ 두 가지를 든다. 로스차일드는 주역에서 말하는 큰 성공의 조건마저 비웃듯이 ‘불가식’이 아니라 가족과 사업을 결합하면서 지속적인 부의 창출과 대물림으로 세계적인 금융 황제로 우뚝 섰다. 그런데 그 초석은 장남이 아니라 차남인 네이선의 모험심과 추진력에서 나왔다. 일반적으로 장남은 보수적이고 원칙주의자가 많은 반면 차남은 도전적이고 모험주의자가 많다. 로스차일드가도 예외는 아니었다.네이선은 영어도 제대로 구사할 줄 몰랐지만 영국으로 건너가 맨체스터의 면직물 사업에 손을 대면서 런던 사교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네이선은 현금 거래 장사 방식을 고수했는데 이게 성공의 비결이기도 했다.= (네이선은) 손님이 소중히 대우받는 듯 느끼게 했고, 팔고 나면 그뿐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아버지 가게에서 배운 상인의 기본 원칙이었다.= ‘최고의 봉사’를 원하면 그에 대한 ‘최고 액수의 보답’을 하라.네이선은 악천후 속에 바다로 나갈 용감한 선장이 급히 필요할 때면 늘 수고비를 듬뿍 주었다. 이들은 몇 세대에 걸쳐 로스차일드가에 봉사하며 대대로 충성심을 이었다. 그들은 네이선을 위해서라면 태풍과의 싸움도 불사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반드시 출항해 도버해협을 넘나들었다. 이렇게 맨체스터와 런던 파리 프랑크푸르트 등 대륙의 수많은 상업 중심지를 잇는 강한 끈(정보망)이 만들어졌다. 로스차일드의 형제들은 이른바 ‘네트워크 경영’을 비즈니스에 도입해 실천했던 것이다. 형제들은 도끼로도 끊을 수 없는 끈끈한 결속력으로 서로 도왔다. 그들은 이미 200년 전부터 ‘정보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던 것이다.= 아이가 없는 암셸은 부와 권력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마치 수도사가 속세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부귀를 바라보았다.5형제 가운데 장남인 암셸은 아이가 없었다(이들에게는 양자 문화가 없다). 그는 자기에게 아이를 달라고 기도하며 기부에 나서는 등 ‘하늘을 설득하는’ 극심한 고행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암셸이 세상을 뜨자 그의 뒤를 이어 나폴리 로스차일드가의 빌헬름과 마이어가 프랑크푸르트 로스차일드가를 떠맡았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파트너십 경영’에 따른 것이다.불행하게 이들도 딸만 10명을 두었다. 빌헬름과 마이어는 신경질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으로 변모했다. 마치 그들의 큰아버지 암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큰아버지처럼 그들은 정통 유대교에 파묻혀 지냈고 유별나게 수집에 몰두했다. 마이어가 수집한 은그릇과 빌헬름이 모은 장서는 프랑크푸르트의 최고 개인 소장품이 되었다. 결국 로스차일드가의 산실이었던 프랑크푸르트 은행은 20세기 초에 문을 닫고 말았다.= 로스차일드 남작에게는 두 가족이 있었다. 자신의 가족과 예술이다. 만약 그가 첫 번째에서 완전한 만족을 찾지 못했다면 두 번째에서 위안을 찾을 것이다.로스차일드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원칙을 대물림한 결과 돈이 절로 따라왔다. 반면 돈을 최우선으로 할 경우 돈을 축적하기는커녕 가족마저 잃을 수도 있다. 여러분은 어디에서 위안을 찾고 있는지. 가족인가, 예술인가, 아니면 돈인가.= 사람은 죽어도 돈은 죽지 않는다.최효찬 소장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향신문 기자를 거쳐 현재는 연세대 미디어아트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는 한편 자녀경영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5백년 명문가, 지속경영의 비밀’ ‘아빠가 들려주는 경제 이야기 49가지’ ‘메모의 기술 2’ ‘한국의 1인 주식회사’ 등의 저서가 있다.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 / 문학박사 roma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