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를 맞은 캠퍼스에 중국인 유학생이 넘쳐나고 있다. 한국에 공부하러 온 중국 유학생 숫자는 지난해 말 사상 처음 5만 명을 돌파했다. 5년 새 무려 10배가 늘어난 것이다. 이제 대학 교정이나 강의실, 학교 앞 식당에서 중국어 대화를 듣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중국 유학생이 급증하면서 대학 풍속도도 바뀌고 있다. 문화적 차이로 생기는 해프닝도 있다. 2009년 봄, ‘중국 유학생 5만 명 시대’를 맞은 대학가의 달라진 모습을 살펴본다.사례1. 서울 시내 D대 신입생 김모 씨는 수강 신청을 하다 학과 선배에게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고등학교에서 중국어를 배운 김 씨는 제2외국어로 중국어 강의를 들으려고 했는데 이를 본 선배가 극구 만류했다. 중국인 유학생들이 중국어 과목을 ‘싹쓸이’하기 때문에 한국 학생은 아무리 잘해도 좋은 학점을 받기 어렵다는 게 이 선배의 설명이었다. 김 씨는 어쩔 수 없이 고등학교 때 배운 중국어를 포기하고 낯선 프랑스어를 선택했다.사례2. 경희대 생활과학대는 올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참가 대상을 확대했다. 그동안 한국 학생만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을 다녀왔지만 올해부터는 외국인 유학생을 행사에 포함시킨 것이다. 물론 외국 유학생의 절대 다수는 중국인이다. 생활과학대는 TV 드라마 ‘대장금’의 인기로 중국에서 한국의 음식 문화와 식품영양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몇 년 새 중국 유학생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요즘 오랜만에 대학 캠퍼스를 찾은 사람들은 늘어난 중국 유학생에 깜짝 놀라게 된다. 학교 주변 식당이나 술집, 교정에서 삼삼오오 모여 다니는 중국 학생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중국 유학생은 5만6034명을 기록했다. 한국 전체 외국인 유학생 7만1531명의 78.3%에 달하는 수치다. 2003년 5607명이던 것이 매년 42~76%씩 증가해 어느새 ‘중국 유학생 5만 명 시대’를 맞았다.중국 유학생의 증가로 대학가 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성균관대 학생회장 선거에선 중국 유학생들을 위한 중국어 대자보가 등장했다. 중국 유학생과 한국 학생이 서로 중국어와 한국어 공부를 도와주는 모임도 생겨난다. 중국 유학생을 타깃으로 한 중국식 술집과 중국어 노래를 완벽하게 갖춘 노래방도 늘고 있다. 물론 갈등도 불거진다. 지난해 4월 베이징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에서 빚어진 중국 유학생들의 집단행동은 큰 파장을 불렀다. 중국 유학생들은 숫자는 많아졌지만 여전히 한국 학생들 사이의 ‘섬’이다. 요즘 대학들은 한층 가깝게 다가온 이웃 ‘중국’과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조성경 명지대 교수는 요즘 수업 시간에 한자를 쓰는 일이 많아졌다. 글쓰기 과목을 듣는 30명 중 6명이 중국 유학생이기 때문이다. 강의를 하다가 중국 학생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은 한자를 함께 써 주면 금방 알아듣곤 한다. 조 교수는 “수업 내용을 평균적으로 70% 정도 이해하는 것 같다”며 “한국어를 잘하는 학생들은 작문 실력이 웬만한 한국 학생들보다 뛰어나 깜짝 놀랄 때도 있다”고 말했다.중국 유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학과 중 하나는 경영학과다. 경희대 경영대학의 경우 전체 1200여 명 중 176명이 중국 유학생이다. 경영대학생 10명 중 한 명은 중국인인 셈이다. 휴학생까지 포함하면 중국 유학생 비중은 더 높아진다. 김홍유 경희대 경영대 교수는 “중국 학생들은 교수를 대하는 문화에서도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한국 학생들은 여전히 ‘스승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지만 중국 유학생들은 교수를 친구처럼 대하는 문화에 익숙해 간혹 오해를 빚기도 한다는 것이다.수업 시간에 중국 유학생과 함께 조를 짜 과제물을 내야 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일부 한국 학생들은 시간관념이 느슨한 중국 학생들에게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또 한국어 커뮤니케이션이 서투르고 워드프로세서나 파워포인트를 잘 다루지 못해 같은 조가 되는 것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국 유학생을 반기를 의견도 있다. 경희대 경제학과 민경식(4학년) 씨는 “중국 유학생이 많아지면 외국어를 쉽게 배울 수 있고 해외에 학교도 알릴 수 있다”며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10개월 정도 중국 생활 경험이 있다는 그는 “아직은 조별 수업을 빼고는 교류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중국인은 가난하고 더럽다는 식의 편견을 버리고 중국 유학생에 가깝게 다가가야 한다”고 말했다.중국 유학생들은 ‘자기들끼리만 몰려다닌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 학생들과 어울리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희대 경영학과 리찌에(1학년) 씨는 한국 학생들과 잘 어울리는 편에 속한다. 애초에 잠깐 한국어만 배우고 미국으로 갈 계획이었다는 그는 “학교를 다니다 보니 한국에 정이 들어 남게 됐다”고 말했다. 리찌에 씨는 “그동안 동아리 활동도 많이 하고 MT(멤버십 트레이닝)도 빼놓지 않고 갔지만 중국 학생들이 어울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경영대 동아리인 경영학회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1988년 동아리 탄생 이후 두 번째 외국인 회원이다. 리찌에 씨가 갖고 있는 비결은 바로 ‘술’이다. 그는 “한국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이라며 “자주 마시다 보니 주량이 늘었다”고 말했다.같은 대학 왕쿤(2학년) 씨는 한국인의 근면함과 성실함에 끌려 한국을 선택한 경우다. 그는 “중국 유학생들이 한국 학생들과 잘 교류하지 못하는 이유가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유학생 대부분이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중국 유학생의 80% 정도가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학과나 동아리 MT에 가고 싶어도 갈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대학가 상인들은 중국인 유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을 환영하고 있다. 특히 신입생이 줄어들고 있는 지방 대학 주변 상점들은 중국인 유학생들을 더욱 반기는 분위기다. 일부 지역에서는 중국 유학생을 겨냥한 중국어 펼침막도 내걸리고 있다. 지난해 원화 가치 하락으로 1위안에 130원이던 환율이 200원까지 치솟아 중국 유학생들의 주머니가 두둑해지기도 했다.고려대 인근 음식점 ‘꽃피는 우산골’ 김모 사장은 “중국 유학생의 발길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발음이 부정확하지만 이제는 거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희대 인근 부동산박사 신경선 사장은 “중국 유학생들은 반가운 손님”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 지역 원룸이 공급 과잉이기 때문이다.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시끄럽다는 이유로 중국 유학생을 꺼리던 집주인들도 ‘대환영’으로 돌아섰다. 회기동 일대는 경희대 한국외국어대 서울시립대 고려대 등 대학이 가깝고 집값이 비교적 싸 중국 유학생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다. 신 사장은 “작년까지는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40만~50만 원짜리 원룸을 많이 찾았지만 경제 위기 때문인지 최근에는 보증금 2000만 원에 월세 60만~70만 원 정도인 방 3개짜리 집을 얻어 4~5명이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했다.중국 유학생을 겨냥한 음식점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외대 앞 이문동에만 양고기 꼬치구이점이 두 곳 문을 열었다. ‘외대 양고기 꼬치구이점’ 강수정 사장은 “한국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먹듯이 중국인들은 양고기 꼬치구이를 즐겨 먹는다”며 “한·중 축구 경기가 있거나 밸런타인데이 같은 특별한 날에는 유학생들을 위한 이벤트를 벌인다”고 말했다.중국 유학생들이 많아지면서 요즘 대학가에서는 아르바이트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경희대 등 중국인 유학생이 많은 곳은 경쟁이 더 치열하다. 현재 경희대 인근 편의점은 거의 중국인 유학생을 아르바이트생으로 쓰고 있다. 대학 주변 음식점에서도 중국 아르바이트생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중국 유학생은 한국 학생들보다 훨씬 낮은 임금을 받는다. 중국 유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출입국사무소에 ‘체류자역외 활동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교수 추천장, 근로 계약서 등 서류 절차가 까다롭다 보니 대부분 허가를 받지 않고 ‘불법 아르바이트’를 한다.중국 학생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한국에 오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3년 5607명에 불과하던 중국인 유학생은 이후 매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중국 학생들이 한국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유학 경비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또 중국 내 한국 기업이 많아져 귀국 후 취업에도 유리하다. 이는 중국 유학생들의 출신지 분포에서도 나타난다. 중국 유학생을 위한 정보 사이트인 스터디인코리아 강창주 이사는 “한국으로 오는 중국 유학생의 상당수가 산둥성 출신”이라며 “바로 한국 기업이 가장 많이 진출해 있는 지역”이라고 말했다.비용도 중요한 변수다. 강 이사는 “일본 유학비용의 절반이면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지방 대학들의 열악한 사정도 중국 유학생의 증가를 부추겼다. 인구 감소로 지방 대학들은 신입생 정원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 1학기 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은 20여 곳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정원 외로 받을 수 있는 유학생들은 대학 재정을 보충하는 중요한 방편이 된다. 하지만 지방 대학들만 중국 유학생 유치에 공을 들여 온 것은 아니다. 수도권이나 서울 지역 주요 대학은 대학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외국인 학생 비중은 대학 평가에서 중요한 평가 항목 중 하나이며 중국 유학생을 대거 받아들이면 손쉽게 이 수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중국 유학생의 급팽창이 몰고 온 후유증이 부각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한 대학 관계자는 “일부 지방 대학에서는 남학생은 짐 나르기, 여학생은 식당 일에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학교 당국도 이를 방관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전화 금융 사기인 ‘보이스 피싱’에 국내 중국인 유학생이 직접 나서거나 이용당하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지난해 4월 베이징월드컵 성화 봉송 때 빚어진 사건은 중국 유학생 문제를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많은 사람들이 오성홍기를 들고 시청 앞에 구름처럼 몰려든 중국 유학생들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중국 현대문학을 전공한 장동천 고려대 교수는 “중국 유학생들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굉장히 모순적”이라며 “국내 대학 사정 때문에 유학생들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면서도 이들을 굉장히 낯설어 한다”고 말했다.중국 유학생은 지난 5년 새 몰라보게 늘었지만 이들을 끌어안는 공존의 모색은 이제 막 시작 단계다. 경희대는 올해부터 양적 확대에서 중국 유학생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했다. 중국 유학생을 위한 기초 교양 강좌를 현재보다 5배가량 늘리기로 했다. 중국 유학생의 생활 상담을 맡을 외국인지원센터도 얼마 전 문을 열었다. 경희대 국제교류처 이진섭 씨는 “중국 학생은 넘쳐나지만 이들은 여전히 한국 학생들 사이에서 섬”이라며 “숫자가 많아지다 보니 잘못한 게 없어도 적대감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 대학은 중국 유학생 100명의 체험담을 묶은 책 발간도 준비 중이다. 중국 학생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한국에 오며,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한국 교수와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확실히 공존은 서로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