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통신 시장은 KT와 KTF를 중심으로 한 KT그룹,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를 중심으로 한 SK그룹, LG3콤(LG텔레콤 LG파워콤 LG데이콤)으로 구성된 LG그룹 등이 ‘3강 체제’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유선전화, 초고속 인터넷, IPTV 등 유선통신 분야와 휴대전화 및 무선 인터넷 등 무선통신 분야 등 통신 산업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시장을 분할하며 ‘지배권’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지역 유선방송 사업자들이 초고속 인터넷 및 유선 인터넷 전화를 서비스하며 통신 시장에서 지분을 조금씩 키워가고 있다.이런 통신 시장에 지난 1월 큰 이슈가 생겼다. 유선 시장의 절대 강자 KT와 이동통신 시장 2위 업체 KTF가 합병을 전격적으로 발표한 것이다. 최남곤 동양종합금융증권 애널리스트는 KT와 KTF의 합병이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고 설명했다. 국내 휴대전화 시장의 각 기업별 시장점유율은 지난 2008년부터 SK텔레콤 KTF LG텔레콤 순으로 5 대 3 대 2의 균형이 거의 흐트러지지 않을 만큼 안정적이다. 하지만 유선통신 시장은 LG파워콤과 SK브로드밴드의 공격적 마케팅으로 시장점유율이 큰 폭으로 변화하고 있다. 즉, KT로서는 무선 분야의 성장이 정체됐고 캐시 카우인 유선 분야가 흔들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이들의 합병은 단지 거대 통신 기업의 탄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유선 사업자와 무선 사업자의 통합은 최근 통신 업계의 가장 큰 화두인 컨버전스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실제로 KT는 합병 후의 돌파구를 유선 통신과 이동통신이 합쳐진 ‘쿡앤쇼’라는 결합 상품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KT는 2000만 명에 달하는 집전화 가입자 수를 확보하고 있다. KTF의 이동통신 가입자는 1400만 명으로 ‘집전화+이동통신’ 결합 상품을 좋은 조건에 판매하면 단순 계산만으로도 600만 명의 가입자 확보가 가능하다.또 KT는 인터넷 전화에 3000여 명에 달하는 마케팅 인원을 확보하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기존 집전화보다 매출과 이익이 적게 날 수밖에 없는 인터넷 전화에 KT가 마케팅을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초고속 인터넷, IPTV, 이동통신을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내겠다는 얘기다,KT가 유선망을 통해 무선 가입자를 확보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면 SK는 그 반대다. 5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가진 휴대전화를 적극 활용해 약점인 유선통신의 가입자를 늘리겠다는 전략이다.최근 SK텔레콤이 내놓은 ‘T 밴드’는 이 같은 전략을 잘 보여준다. T 밴드는 SK텔레콤의 휴대전화 브랜드 ‘T’와 SK브로드밴드가 서비스하는 초고속 인터넷 IPTV 유선전화를 합친 유·무선 결합 상품 브랜드다.특히 SK 진영의 ‘융합’에 대한 의지는 남다르다. 유·무선 통신이라는 특정 산업의 기반의 ‘융합’을 넘어 산업 간의 이종교배를 ‘T’ 브랜드를 통해 진행한다는 게 SK텔레콤의 전략이다.일례로 SK텔레콤은 광대역부호분할다중접속(WCDMA: wideband 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휴대전화에 내장된 가입자식별칩(USIM: universal subscriber identity module)을 활용한 결제 서비스인 ‘T캐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T캐쉬 서비스에 가입하면 인터넷 결제 서비스, 신용카드와 연동되는 T캐쉬 자동 충전 서비스, 고객 간 T캐쉬 선물하기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T브랜드를 활용해 금융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는 것이다.변화되는 통신 시장의 성장 키워드를 각자 가진 경쟁 우위 분야에서 찾으려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KT와 SK 진영과 달리 LG 진영은 조용해 보인다. 하지만 LG텔레콤과 LG데이콤, LG파워콤은 그간 그래왔듯 ‘실리 챙기기’를 위한 영업 방안을 짜고 있다. 특히 LG텔레콤은 일단 소매영업 전문화와 대리점 효율화를 통한 유통망 강화에 주력하기로 했다.아울러 LG텔레콤은 이동전화, 초고속 인터넷, 인터넷 전화 등을 묶은 결합 상품 ‘LG 파워투게더 할인’ 판매를 500여 개 대리점에서 전국 1200여 대리점으로 확대해 결합 상품 마케팅에 나설 방침이다.특히 올해 3분기께 LG 진영이 그간의 ‘실리 챙기기’에서 벗어나 대대적인 반격을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바로 LG데이콤과 LG파워콤의 합병을 통해서다. 이 경우 사업구조가 유사한 양사 간의 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져 효율성도 더 높아지고 시너지 효과 역시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또 그동안 3강의 위세 속에서도 통신 시장에서 나름의 지분 참여에 성공한 케이블TV 사업자들 역시 방송, 유선전화, 초고속 인터넷 등 무선 시장을 제외한 유선 시장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더욱 거센 반격을 해 올 전망이다. 특히 케이블TV 사업자들은 KT 등이 독점하고 있던 유선전화 시장을 저렴한 인터넷 전화라는 상품을 기반으로 빠르게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특히 집전화 번호 그대로 인터넷 전화로 쓸 수 있는 번호이동제가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되면서 케이블TV 업체의 시장 공략이 본격화되고 있는 추세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에 따르면 주요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들의 인터넷 전화 가입자가 하루 2000명 이상 증가하고 있다. 4월 7일을 기준으로 케이블TV 업계의 인터넷 전화 가입자 수는 총 35만 2305명에 달한다.이들은 나아가 이동통신 시장에까지도 신규 진출을 준비하는 중이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에는 가상이동통신망사업자(MVNO) 사업 허가가 포함돼 있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될 경우 케이블TV 업체들은 이동통신 사업에도 뛰어들 수 있게 된다. MVNO는 SK텔레콤 등 기존 이동통신업체의 기지국과 같은 인프라를 빌려 이동전화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으로, 새로운 이동전화 브랜드가 작은 규모로 시장에 들어올 수 있다. 이미 통신 사업에 대한 노하우가 있는 케이블TV 업체의 값싸고 질 좋은 ‘결합 상품’을 활용한다면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다.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