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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프면 약도 먹고 병원 치료도 받는다. 심하면 응급실로 가고 증상에 따라 수술도 받는다. 한방 양방 식이요법 명상 등 치료법도 다양하다. 돌림병은 격리와 소독 예방이 중요할 것이다. 기업에 이를 적용해도 다를 게 없다. 가령 10년 전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을 때는 기본적으로 고금리가 주치료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금리다. 세계경제의 상황이 달라졌고 우리 여건도 변했다. 그때 국제통화기금(IMF)식 강제 구조조정은 극단적 처방의 부실 처리와 군살 빼기였다. 은행이, 그것도 5개씩 집단 퇴출된 것이 그런 예다. 반면 지금은 가급적 살려놓고 지켜보자는 것이 저변의 기류로 해석된다.치료법을 자세히 보자. 보약이냐, 진통제냐 이렇게 양극단으로 나눈다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전 세계적인 저금리 정책과 이후의 인위적인 자금 공급은 가장 대표적인 진통제 투여 방식이다. 미국 정부가 자국의 자동차 산업에 구조조정 없는 지원을 한다면 모르핀 주사를 놓고 아편을 먹이는 것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보호무역주의 금융보호주의와 같은 보호 정책 기류도 같은 맥락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도 이 방법을 부분적으로는 원용한다. 물론 진통제 요법만 따를 수는 없다. 쓰지만 보약도 먹어야 한다. 그래서 체질을 바꾸도록 해야 한다. 확 뜯어고치면 더 좋겠지만 욕심을 내다가는 자칫 ‘사망’할 수 있다. 그게 더 문제다. 보약에 넣는 비상(砒霜)의 처방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 체질을 고칠 노련한 의사가 필요한데 능력은 고사하고 책임을 지겠다는 당국자는 보이지 않는다. 환란 때와 지금의 차이점 중 중요한 한 가지가 바로 이 점이다. 지금 기업 구조조정이 부진한 이유이기도 하다. 건설 조선 해운 등 구조조정이 시급한 분야가 한두 군데가 아니고 이런 분야는 외과수술과 업계의 자구 노력이 병행되면서 입에 쓴 약을 먹어야 하는데 해당 업계, 해당 기업은 아편 같은 진통제만 찾는다. 팔목을 붙잡아 매고 쓴 약을 먹여야 하는데 누구도 ‘총대’를 메지 않는 것이다.죽지 않을 만큼 최소한의 진통제를 주사하되 환부만 찍어 도려내면서 기업과 가계 나아가 공공부문의 체질까지 확 고치는 구조조정까지 마무리할 명의는 없는가. 이렇게 해서 기업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그런 차원에서 최근 한국거래소와 상장회사협의회가 발표한 국내 상장기업의 지난해 실적은 시사점이 있다. 유가증권시장 12월 결산 법인의 영업이익은 56조 원 수준으로 전년보다 2.1% 줄었다. 이 자체는 크게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상반기에는 고유가 등 고원자재가 파동이 있었고 하반기 이후에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쳤지만 제품을 판매하는 통상적인 영업 활동에서는 나름대로 선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영업외에 이자와 여타 투자 부문까지 반영하는 순이익은 32조 원에 못미쳐 전년보다 40.9%씩 감소했다. 순이익이 이처럼 급감한 주원인은 환율 급등에 따른 환차손과 보유 주식의 가치 하락과 같은 영업외비용이 늘어났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영업 활동에서는 그럭저럭 버텨 왔는데 다른 부문까지 종합해 보면 기업 경영이 매우 취약하다는 얘기다. 덩치만 컸지 혹한기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 능력이 모자란다는 말이기도 하다. 환율과 같은 기업 외부의 환경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영업이익을 그대로 까먹는다는 점에서 안타깝다.이런 데서 잘 대처하지 못하면 결국 구조조정에다 강제 수술이라는 쓴 약을 먹게 될 것이다. 이미 경영 활동을 둘러싼 여건 변화에 따른 리스크에 좀 더 다각도로 대비하는 것이 영업 활동 못지않게 중요한 시대가 됐는지도 모른다. 환율만일까. 부동산 관련 투자나 이자 문제 등 기업 경영에서 평소에 신중히 판단하고 리스크를 점검해야 할 사항이 계속 늘어난다고 봐야 할 것이다.상장사들의 단기 차입금에 대한 우려도 있다. 1년 미만의 기업 부채가 지난해 말 68조 원으로 전년 38조 원에 비해 80%씩 급증했다는 ‘에프앤가이드’의 분석은 재무구조가 취약해졌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 부채비율도 5년 만에 100%를 넘었다. 애로점이야 많겠지만 기업들이 수술실로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면, 쓴 약을 먹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급변하는 외부 환경에 대비해 나가는 게 현명하다.허원순·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