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꺾인 아시아 국제학교

아시아 국제학교의 대기 학생 명단이 줄어들고 있다. 금융 위기와 경기 침체 여파로 기업들이 해외 영업을 축소하면서 아시아 지역에 파견돼 근무하던 외국인 직원들이 본국으로 되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최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몇 년 간 아시아지역 국제학교들은 자녀를 동반하고 파견 나온 외국인들이 급증하면서 ‘붐’을 이뤘지만 금융 위기 이후 상황이 바뀌고 있다. 그동안 국제학교들은 학생 1명당 1년에 2만∼5만 달러의 높은 학비를 받으며 꽤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싱가포르의 일부 학교들은 대기자 명단에 자녀의 이름을 올리는 데만 20만 달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 위기 여파로 외국인 직원들이 본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국제학교의 등록 학생 수가 급감하거나 대기자 명단이 짧아지고 있다.특히 학비가 비싼 국제학교들이 타격을 입고 있다. 중국에선 외국 학생들이 학비가 상대적으로 싼 학교로 옮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싱가포르의 일부 국제학교는 등록 학생 수가 20%나 줄었다. 한국 학교들은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경기가 나빠지고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면서 많은 한국 기업들이 잇따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 해외 주재원들을 불러들이고 있기 때문이다.글로벌 기업들의 국제 파견 업무를 자문해 주고 있는 ECA인터내셔널의 리콴 아시아지역 담당이사는 “1년 전만 하더라도 학교에 자리가 부족해 자녀가 있는 해외 기업 직원들이 홍콩으로 건너오기를 꺼렸는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국제학교 관련 조사 업체인 ISC리서치에 따르면 아시아·태평양 지역엔 현재 약 1200개의 국제학교가 있다. 지난 2007년도(937개)보다 263개가 늘었다. 아시아는 전 세계에서 국제학교가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지역이었다. 특히 중국은 지난 2006년 123개였던 국제학교 수가 올해 210개로 2년 사이 70% 급증했다. 아시아 지역 전체적으로는 국제학교가 최근 몇 년 간 연평균 11%의 증가율을 보여 왔다. 그러나 올해는 이 같은 두 자릿수 증가율이 5∼7% 정도로 둔화될 전망이다.=현재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들 국제학교의 매출은 연간 수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사모 펀드들도 국제학교 투자에 관심을 보여 왔다. 지난해 금융 위기가 심화되기 전 사모 펀드 그룹인 베어링스아시아는 영국계 교육 기업인 노드앵글리아에 3억6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노드앵글리아는 현재 중국에서 4개, 한국에서 1개의 국제학교를 운영 중이다. 사모 펀드 잉글필드로부터 투자받은 또 다른 영국계 교육 그룹 코그니타는 싱가포르 소재 호주국제학교를 비롯해 몇몇 국제학교를 인수했다. 덜위치칼리지와 해로스쿨 등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학교들도 중국에 캠퍼스를 지었다. 경기 침체 여파로 국제학교 확장세가 주춤해지긴 했지만 싱가포르의 래플스에듀케이션과 같은 대형 회사는 올 들어서도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에서 학교 시설을 확충했다.ISC리서치의 니콜라스 브루미트 이사는 “국제학교 사업은 여전히 중기적인 관점에서 수익률이 높다”며 “불황이라고 하더라도 학교에 대한 투자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두바이와 같은 지역에선 국제학교 사업이 위축돼 왔지만 궁극적으로는 시장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수요가 침체돼 있을 때 국제학교들이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미래의 성장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일단 아시아의 ‘성장 엔진’인 중국과 인도가 주도해 이 지역 경제가 되살아나면 외국인들이 다시 몰려들 테고, 아시아 중산층들의 자녀 영어 공부에 대한 열의가 높아 국제학교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날 것이란 전망에서다.리처드 부일스테케 홍콩 주재 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학교 공간을 확장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홍콩의 경우엔 그동안 좁은 학교 부지와 정부의 관료주의 등으로 인해 많은 국제학교들이 시설 확장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레이몬드 사이 홍콩교육청 선임국장은 “외국인들이 자녀의 학교 문제 때문에 홍콩 파견을 꺼리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며 “향후 5년간 학교 부지를 할당할 때 국제학교에 우선권을 줄 방침”이라고 말했다.박성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