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나를 보고 ‘참 아버지 많이 닮았네’라고 얘기하면 나는 왠지 기분이 좋다. 아버지는 누가 봐도 마음씨 좋은 아저씨의 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에게 다가가면 약간 비릿한 향기(?)를 먼저 느낀다. 그리고 유난히 두툼한 아버지의 손을 볼 때마다 나는 코끝이 찡할 수밖에 없다.천안 태생이신 아버지는 6·25전쟁에서 팔에 총상을 입고 제대한 후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성북구 보문동에 정착해 1955년부터 생선 장사를 하며 5남매를 키워오셨다. 무척 깔끔하신 어머니와 달리 털털한 아버지에게 ‘비릿한 향내’가 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50여년을 주말도 없이 한결같이 새벽 4시면 노량진 시장에 가서 그날 팔 생선을 구입하셨다. 낮에 생선 가게 안에 있는 반 평도 안 되는 온돌에서 잠시 눈을 붙이시는 것이 휴식의 전부이고 장사를 마치고 생선을 얼음에 쟁여 갈무리하는 밤 11시까지 한시도 손에 물이 마를 날 없는 생활을 평생 하신 것이다. 아버지의 손은 원래 두툼하기도 하지만 불고, 트고, 칼에 베이면서 더욱 두툼한 손이 됐다. 아버지의 그 향기와 불어 터져 두툼해진 손이 우리 5남매를 만들었다.생선 장사에 대한 아버지의 철학(?)은 ‘시간이 경과한 생선은 생선 각각에 맞게 관리하고, 장기 보관이 어려운 생선은 무리하게 보관하지 말고 주위에 베풀라’는 것이다. 생선은 두말할 것 없이 ‘선도’가 가장 중요하다. 얼음에 쟁이고 냉장실에 보관해도 사흘 가기 어려운 것이 생선이다. 아버지는 선도를 유지한 상태에서 팔지 못한 생선을 ‘냉동해 보관할 것’과 ‘말려 보관할 것’을 구분하신 후 나머지는 미련 없이 베푸셨다. 우선 우리 가족이 먹고, 같이 장사하는 시장 상인들과 나누어 드시고, 어려운 동네 분들에게도 주셨다. 우리 가게에는 10시가 되면 아버지가 베푸시는 생선에 소주 한잔하러 오시는 분들이 끊이지 않았다.이런 아버지의 철학과 삶으로 인해 우리 남매 중 가장 많은 덕을 보고 있는 사람이 정치를 하는 ‘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4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적지 않은 동네 어르신들이 나를 만날 때마다 아버지를 회고한다. ‘참 좋은 분이셨는데….’ ‘아버지가 정 의원이 의원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시면 너무도 좋아하셨을 텐데….’ 이런 기억들이 매번 선거에서 큰 힘이 됐다.이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10개월 전, 나에게 너무도 충격적인 비밀(?)을 고백하셨다. 2004년 두 번째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나는 부모님께 너무도 죄스러웠다. 낙선 후 한 달이 안 돼 어버이날이 돌아왔고, 나는 죄스러운 마음에 홀로 두 분을 모시고 양수리의 한 식당을 찾았다. 식사에 곁들여 술 몇 잔을 따라 올리는데 아버지가 1985년의 일을 회고하셨다.“이 얘기는 네 엄마만 알고 있다. 누구한데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그땐 참 무서웠어. 남산에 잡혀가서 옷을 벗긴 채로 네가 있는 곳을 대라고 하면서 마구 때리는데, 내가 아픈 것보다 네가 만약 잡혀 들어오면 얼마나 고생할까 너무도 무서웠지. 아버지로서 자식 도망 다니면서 고생할까봐 어렵사리 돈을 보내주는 건 인지상정인데, ‘왜 빨갱이 자식한테 돈을 보내냐’며 때리는데 아버지 마음이 너무나 아팠어.”1985년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중, 여타 대학의 학생회장이 대부분 검거 구속된 상태에서 현상금과 1계급 특진의 지명수배범임에도 불구하고 검거를 피해 학생운동 조직을 복원하며 활동을 계속하자 두 형님은 물론 연세 많으신 아버지마저도 잡아가 고문했던 것이다.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부모님께 불효를 하나’라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다른 형제 다 걱정이 없는데 네가 걱정이라는, 너 잘되는 것을 보면 아버지는 여한이 없다고 말씀하시며 눈물짓는 아버지의 모습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아버지, 당신의 비릿한 향내가 너무도 그립습니다. 한식 전에 5남매 모두 묘소에 찾아가 부르트고 갈라 터진 두툼한 손으로 소주를 즐기셨던 아버지를 회상하며 술잔을 올리겠습니다.1964년 서울 출생. 연세대 경제학과 재학 중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지난 18대 총선에서 세 번의 도전 끝에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0년 한나라당 성북갑 지구당위원장, 2005년 서울시 최연소 정무부시장, 2007년 이명박 대통령후보 수행단장, 2008년 대통령 당선인 러시아 특사단 등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