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국내 최초로 체계화된 브랜드 관리 모델로 개발된 K-BPI(Korea Brand Power Index: 한국산업의 브랜드파워) 조사가 올해로 11번째를 맞았다. 1999년 총 79개 산업군을 대상으로 시작한 K-BPI는 올해 조사 범위를 총 192개 산업군으로 넓힘으로써 명실상부하게 한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조사 제도로 자리 매김했다. 이번 K-BPI 조사를 통해 나타난 우리 기업들의 브랜드 환경을 알아봤다.로버트 캐플란 하버드대 교수는 “불황일수록 전략을 실행해야 호황기에 시장을 지배한다”고 말했다. 비록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수많은 경영의 구루(Guru)들은 ‘경기 침체’, ‘금융 위기’, ‘불황’과 같은 시장 상황에 위축되기보다는 이를 활용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러한 환경을 타개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인가.이제는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라 있는 삼성과 LG는 미래를 열어줄 열쇠를 ‘브랜드’에서 찾고 있다. 삼성은 브랜드 파워를 경기 불황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기업의 재산으로 판단하고 2008년 7월 삼성 브랜드의 통일성 유지 및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해 브랜드 관리위원회를 신설했다. 또 계열사별로 미래의 경쟁력인 ‘상품’의 브랜드 가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 전략 마련에 착수했다. 그뿐만 아니라 LG전자의 남용 부회장은 지금이 역전의 기회임을 강조하고 지난해보다 사업 환경이 어렵지만 회사의 핵심 역량인 연구·개발(R&D), 브랜드, 디자인 분야의 투자를 늘릴 것임을 천명했다. 이처럼 브랜드 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됐다.올해로 11회째를 맞이한 한국산업의 브랜드파워(K-BPI)는 1990년대 이후 국내 브랜드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데 기여해 왔다. 1999년 총 79개 산업군 조사 발표를 시작으로 2009년에는 총 192개의 산업군을 조사·발표했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는 화장품 브랜드 숍, 타이어 전문점, 독서토론 학습, 중고등 교재, 보디 케어, 아동복, 가격 비교 사이트 등을 추가해 초기 제조업 중심의 브랜드 조사에서 명실상부하게 전 산업을 포괄하는 한국 대표 브랜드 조사 제도로 자리 매김했다.K-BPI 조사를 진행한 KMAC(한국능률협회컨설팅)는 이번 조사 결과 브랜드 환경에서 네 가지의 특징이 나타났다고 분석했다.첫째, 브랜드 파워의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나 소득의 양극화 현상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은 K-BPI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내구재와 서비스재에서 브랜드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자본력과 기술력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는 내구재는 이미 상당 기간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 1, 2위 브랜드와 그 외 순위에 있는 브랜드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 또한 무형의 서비스와 그를 통해 전달되는 상품으로 구성된 서비스재도 2008년부터 선두권과 그 외 브랜드 간의 격차가 벌어지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KMAC는 “이는 경기 침체기에 넘버원(No.1) 브랜드로 소비가 집중되는 모습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따라 같은 선두권 브랜드라도 그 혜택은 넘버원 브랜드가 더 크게 누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그러면 어떤 산업군에서 어떤 브랜드가 브랜드 파워 양극화를 주도할까. 웅진코웨이는 정수기 공기청정기 비데 등 소형 생활 가전에서 앞서나가고 있으며 최근엔 음식물 처리기에서도 높은 브랜드 파워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락앤락은 해외는 물론 국내서도 완전히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금호렌터카는 강력한 브랜드 파워는 물론 대한통운과의 합병 뒤 규모 면에서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소비재에서는 정관장이 건강식품 부문에서 여전히 최고의 브랜드 파워를 보이고 있다.둘째, ‘업종 대표 브랜드’가 늘어나고 있다. ‘란체스터 경영전략’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안정된 시장의 경우 No.1 브랜드가 시장점유율의 40%를, No.2 브랜드가 20%, 그리고 No.3 브랜드가 10%를 차지한다고 한다. 즉, 적어도 업종 대표 브랜드는 40% 이상의 시장 점유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 따라서 업종 대표 브랜드의 지위는 나머지 브랜드가 설 자리를 허락하지 않는 것임과 동시에 시장 지배력을 통해 미래까지 보장받는다. ‘지속 기업’을 꿈꾸는 기업은 새 시장을 창출해 가장 먼저 깃발을 꽂고 넘버원이 되는 것보다 업종 대표 브랜드로 지배 산업군을 가지는 것이 전략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KMAC는 이를 “시장 초기에 치열한 경쟁으로 넘버원 브랜드 지위에 올라선 이후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마케팅으로 주도권을 유지해 온 덕분”이라고 해석했다.유통의 최강자인 롯데백화점, 교육 산업을 이끄는 눈높이,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대학교병원, 편하고 안전한 운전을 위해 다양한 인프라를 공급하는 스피드메이트, 빠르고 안전한 여행을 제공하는 금호고속은 서비스재의 업종 대표 브랜드다. 내구재에서는 40여 년간 따뜻한 가정을 만드는 데 힘써온 귀뚜라미, 주방 문화를 선도해 온 동양매직이 각각 가정용 보일러와 복합 오븐 브랜드에서 업종 대표 브랜드다. 소비재에서는 제화 업계와 유아복의 대표 주자인 금강과 아가방이 두드러진다.셋째, 일관되고 성실한 브랜드가 넘버원이 된다. 넘쳐나는 브랜드 속에서 소비자에게 선택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고유한 브랜드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고객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원하기 때문에 기업은 핵심적인 브랜드 가치에 기반을 두되 끝없는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이런 요건을 만족하는 대표적인 브랜드를 살펴보면 서비스재에서는 최고의 아파트 브랜드로 자리 잡은 래미안, 다양한 혜택으로 고객에게 가치를 전달하는 비씨카드, 한국의 유통 문화를 이끄는 훼미리마트가 있다. 또 내구재에서는 영창악기가 최고의 종합 악기를 제공하고 있으며 프리미엄 인테리어 자재인 LG지인은 생활 속의 아름다움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소비재에서는 해태제과의 브라보콘과 태평양제약의 케토톱, 에쎄 등이 즐거운 생활을 제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넷째, 새로운 유통 채널 브랜드가 뜨고 있다. 몇 년 전 블루오션(Blue Ocean)이 기업 경영에 있어서 유행처럼 회자됐다. 경쟁이 치열한 기존 시장인 레드오션(Red Ocean)에 뛰어들지 않고 경쟁요소를 제거하거나 줄임으로써 저비용을 추구하고 동시에 업계가 아직 제공하지 못한 요소를 증가시키거나 창출함으로써 차별화를 추구해 블루오션을 창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주 이상적인 방향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불과 몇 십 년 전보다 산업은 눈부실 정도로 고도화돼 왔으며 그만큼 블루오션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런 어려움에도 기업은 새로운 경쟁의 원천을 발굴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틈새시장을 발굴해 새로운 유통채널을 공략하는 브랜드들에서 그러한 노력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2000년대 초 화장품 시장은 브랜드숍 경쟁 체제로 전환됐다. 아모레퍼시픽의 휴플레이스가 자사 및 타사 제품의 비율을 7 대 3으로 유지했으나 2008년도에 자사 브랜드 중심의 아리따움으로 새롭게 태어나며 화장품 브랜드숍 경쟁이 본격화 됐다. 올해 처음 조사된 화장품 브랜드숍 부문에서는 더페이스샵의 브랜드 파워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또 타이어 전문점 부문은 기존 타이어 판매 중심의 사업 방식에서 타이어 관리 중심의 사업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T’Station(티스테이션)이 높은 브랜드 파워를 보이고 있다. 또 기존 패밀리레스토랑 시장에서 시푸드(Sea Food)라는 특화된 테마를 공략한 시푸드 레스토랑인 씨푸드오션이 2년 연속 1위로 나타났으며 대형 유통점이 제공하지 못하는 편익을 대형 슈퍼마켓에서 제공하고 있는 홈플러스익스프레스 역시 2년 연속 1위로 나타났다.오프라인뿐만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새롭게 유통 채널을 장악하는 브랜드들이 있다. 사이버대학교 부문의 경희사이버대학교, 온라인외국어학원 부문의 YBM시사닷컴, 인터넷전화 부문의 myLG070, 다이렉트자동차보험 부문의 하이카다이렉트가 바로 그들이다.산업 고도화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어 보면 특정 기업이 높은 수준의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제품을 출시하더라도 자본력과 기술력을 겸비한 후발기업이 쫓아갈 수 있을 만큼 기술 수준이 높아져 있고, 기술수준이 높아졌다는 의미는 제품에 대한 업그레이드와 신상품 출시 주기를 앞당겨 제품수명주기도 짧아졌다는 뜻이다. 따라서 신유통채널에서 No.1 브랜드로 올라섰다면 이제는 2위 그룹과의 차이를 벌이기 위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No.1 자리를 지켜내고 업계 대표 브랜드로 자리잡기까지의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192개 산업군 중에서 10년 이상 연속 1위를 한 브랜드들은 49개다. 다시 말해 초기 79개 산업군 중 나머지 30개 산업군에서는 1위 역전이 발생하거나 산업군 진화(세탁기→ 드럼세탁기)가 일어나 사라졌다는 의미다. 그만큼 오랜 시간 동안 넘버원의 지위를 지켜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10년 이상 연속 1위를 지켜 온 브랜드들은 소비자들의 각별한 사랑을 받아 왔다는 방증일 것이다.대표적인 브랜드로는 고추장 부문 청정원 순창, 정장 구두 부문 금강, 커피 부문 맥심, 참치캔 부문 동원참치 등이 있다. 내구재에서는 가정용 보일러 부문 귀뚜라미보일러, 소형 승용차 부문 마티즈, 양문 여닫이 냉장고 부문 지펠 등이 있으며 서비스재에서는 학습지 부문 눈높이, 항공사 부문 대한항공, 피아노 부문 영창악기, 피자 전문점 부문 피자헛 등이 있다.2009년 금융 위기에 이은 실물경제의 위축은 소비도 위축되게 한다. 이런 소비 침체의 상황에 소비자는 비용 지출을 꺼리게 되고 아무리 작은 비용이라도 비용 대비 가치를 느낄 때 지출하게 된다.요즘처럼 경기 상황이 어려운 때에는 소비자들이 가격에 대비해 가장 큰 가치를 제공하는 브랜드를 찾는 것이 일반적인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품질이나 브랜드에 대한 기대가 낮아진 것은 아니다. 가격 대비 가치와 함께 높은 기대 가치를 가진 즉, 가격 프리미엄을 함께 가진 브랜드의 가치가 더 높다. 그런 측면에서 K-BPI에서 조사된 2500개 브랜드 중 가격 대비 가치와 가격 프리미엄 부문에서 상위 1% 안에 든 브랜드는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높은 가치를 제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대표적으로 우리나라 전자 산업의 대표 브랜드이자 현재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도약한 삼성애니콜, 오랜 시간 동안 식생활 문화를 이끌어 온 파리바게뜨 동원참치 정관장 베지밀, 유통의 강자인 이마트와 물류의 강자인 우체국택배, 패션 내의의 명품 브랜드인 비너스, 한 차원 높은 생활 문화를 형성하는데 기여해 온 CGV, 글로벌 브랜드와의 경쟁에서도 언제나 당당히 앞서나가고 있는 설화수와 헤라옴므, 그 외 SK텔레콤 까스활명수 삼다수 등이 상위 1% 안에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기업은 넘버원 브랜드를 통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넘버원 브랜드는 소비자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그로부터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 기업이 차세대 주자를 만들어내는데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준다. 현재의 넘버원 브랜드가 그 힘을 다하게 되면 순차적으로 그 역할을 이어받아야 한다. 따라서 기업에서 다음 넘버원 주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더없이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매년 지수화되는 2500여 브랜드에도 포함되지 못하다가 2~3위 수준까지 전년 대비 급성장한 브랜드를 찾을 수 있다.인지도와 로열티 면에서 고른 성장으로 미래가 촉망되는 브랜드로 화장품 브랜드숍인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움, 건강 트렌드와 함께 성장이 두드러진 하루야채, 환경 친화적이고 세탁력을 더욱 높인 액상 세제인 액츠, 풍부한 맛이 특징인 맥주인 맥스, 높은 기술력으로 새로운 브랜드로 거듭난 리홈, 탈모 예방 기능성 샴푸인 댕기머리, 워터파크인 비발디오션월드 등이 대표적이다.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