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항 경북 봉화군수

낙동강 최상류와 백두대간의 중심지에 자리한 경북 봉화군은 그동안 도시민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땅이다. 그러던 이곳이 다큐멘터리 사상 처음으로 관객 300만 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는 영화 ‘워낭소리’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팔순 노인과 마흔 늙은 소가 마치 한 몸인 양, 달구지에 걸터앉아 느릿느릿 가는 영상이 감동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었는가. 원초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곳, 경북 봉화에서 엄태항 군수를 만났다.옆집에 사는 사람 사이에도 단절된 삶을 사는 것이 보통인데, 사람과 말 못하는 소가 느릿느릿 평생을 농사짓고 소통하는 모습이 감동과 교훈을 주는 것 같습니다. 우연히 이런 좋은 영화가 우리 봉화에서 촬영돼 문의도 많아지고 삼삼오오 영화 촬영지인 하눌마을을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이런 자원을 관광 테마로 개발하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주인공 할아버지와 소가 걷던 길을 관광객이 실제 소달구지 타고 가보는 코스를 만드는 방안 등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아요. 인터넷을 보면 걱정하시는 분도 계신데, 가능한 한 본래의 모습을 훼손하지 않고 노부부의 삶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요즘 봉화가 ‘워낭소리’로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도 노무현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과 헷갈린다는 사람도 있고요, 하여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에요. 교통이 불편한 게 가장 큰 이유였죠. 그런데 중앙고속도로가 뚫리고, 영주~봉화 간 4차로 국도가 개통되면서 사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가치가 달라졌습니다. 자연과 건강, 웰빙이 중요시되면서 봉화가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지요. 봉화는 숲과 맑은 물, 그리고 춘양목이 유명한 고장으로 대한민국 대표 청정지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봉화의 이 자연을 그대로 문화 관광자원으로 육성할 것입니다.국립백두대간고산수목원 건립, 낙동강 프로젝트 등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백두대간은 생태계의 보고라고 하지요. 봉화는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 이 백두대간의 중심에 있습니다. 정부의 예비 타당성 심사 결과 이곳에 2012년까지 2560억 원의 국비를 들여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을 조성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습니다. 종자보존소, 목재체험장, 습지식물원, 컨벤션센터 등 생태 연구와 생태 관광 체험이 함께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생태계 보호뿐만 아니라 생태 관광과 연계함으로써 지역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 2015년 열리는 제14차 세계 산림대회(World Forestry Congress)를 유치하려고 산림청에 유치 신청서를 낸 상태입니다. 6년마다 열리는 세계산림대회는 평균 60여 개국에서 참석하는 대규모 국제 행사로 1926년 로마에서 처음 개최됐습니다. 요즘 저탄소 녹색 성장에 대한 관심이 많은데요, 봉화에서 세계산림대회를 유치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산림 도시로 자리 매김할 수 있을 겁니다.봉화에는 송이축제와 은어축제가 유명합니다. 제가 민선 초대 군수를 하던 시절에 만들어서 지금 10년이 넘은 축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전에는 송이를 일본에 전량 수출했는데, 이 귀한 송이를 봉화에 와서 먹어 보고 살 수 있도록 축제를 만들었더니 송이를 매개로 사람들이 봉화에 오기 시작했습니다. 송이를 팔기만 할 때는 단순히 파는 수익밖에 없었는데 축제를 만드니까 와서 택시도 타고, 먹기도 하고 지역경제에 더 보탬이 된 거죠.은어축제도 처음에는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송이축제보다 사람이 더 많이 올 것이라고 확신하고 밀어붙였어요. 은어는 양식이 잘되고 비린내가 나지 않고 고기를 잡기도 아주 수월합니다.봉화군 전체 인구가 3만5000명인데, 2회 행사 때 1만5000명이 왔습니다. 가게, 치킨, 시장에 관광객이 몰리니까 그때부터 지역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더라고요. 작년에는 수해 때문에 못했는데 재작년에는 100만 명이 왔다갔습니다.봉화에 계서 성이성이라는 분이 있었는데요, 대표적인 청백리로 암행어사를 4번이나 하셨어요. 그분이 태어난 생가 계서당을 문화재로 보존해 오고 있었는데, 춘향전으로 처음 박사학위를 받은 연세대 설성경 교수가 이몽룡의 실제 모델이 성이성 선생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그동안엔 충분히 홍보가 되지 않았는데 이곳에 암행어사 박물관 등 이몽룡 테마파크를 만들 계획입니다.봉화군 인구의 27%가 65세 이상 노인입니다.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라고 하는데 봉화는 이미 한참 전에 고령사회를 지나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것이죠. 어떻게든 도시 사람들이 이곳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전원주택 단지 조성 계획, 귀농 관련 조례 개정 및 교육 등 다양한 시책들을 펼치고 있습니다.군에서 직접 농촌 총각들을 캄보디아 여성들과 결혼시켜 주는 사업도 하고 있고요. 특히 귀농인들 사이에서 봉화가 인기가 많은데 2007년에는 100가구 넘게 봉화로 귀농했습니다. 봉화가 땅값이 싸고 자연환경이 좋기 때문입니다. 귀농인들은 친환경 농산물, 산양삼, 베리(berry)류 등 고부가가치 농산물에 관심이 많습니다. 도시와의 네트워크도 잘돼 있고요. 귀농인들 중 성공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소문을 듣고 또 많이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대한민국 대표 청정지역 봉화에는 이제 ‘워낭소리’의 고장이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붙었다.서울서 봉화까지는 생각만큼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앙고속도로가 뚫리면서 2시간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다. 그동안 개발이 안 된 오지로 남아 있었기에 지금 비로소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 봉화는 그야말로 미래를 위해 남겨 둔 땅이 아닐까. 엄태항 군수의 말처럼 봉화가 자연을 훼손하는 개발이 아니라 저탄소 녹색 성장 시대에 맞는 개발을 통해 보다 더 매력적인 관광지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약력: 1948년 경북 봉화 출생. 중앙대 약학과 졸업.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지역사회개발학과 졸업(행정학 석사). 79년 엄약국 대표. 80년 봉화군 약사회 회장. 91년 경상북도의회 의원. 2007년 경북 봉화군수(현).박병표 기자 tiki2000@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