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북천 필택코리아 사장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대표적인 공장 지대였다.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 맞은편부터 구로공구상가와 서부간선도로를 잇는 지역에는 화학 타이어 기계 금속 공장 수백 개가 밀집해 있었다. 지금은 아파트와 주상복합 건물이 숲을 이루고 있지만 서부간선도로변에는 여전히 작은 공장들이 포진해 있다.이곳에 정북천(63) 사장이 경영하는 필택코리아라는 업체가 있다. 직원이 10명도 안 되는 작은 업체다. 하지만 이곳은 일본이나 미국 등지의 바이어들이 자주 찾는다. 이 회사가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한 적이 없는데도 먼 곳에서 이 회사를 찾아온다. 그 까닭은 이 회사가 만드는 튀김 기름 여과기의 품질이 우수하기 때문이다.지난 3월 초에도 도쿄 인근에 있는 일본 업체 관계자가 이 회사를 찾아왔다. 여과기 100대를 주문하고 싶은데 만들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이들 역시 지인들에게 묻고 물어서 이곳까지 찾아왔다. 일본에도 수많은 여과기 업체가 있지만 필택코리아만큼 콤팩트하면서 성능이 뛰어난 것을 찾기 힘들다며 찾아온 것이다.이런 식으로 미국 쿠웨이트 중국 등지에서 바이어가 찾아와 구매해 갔다. 필택코리아는 제대로 된 영업사원도 없다. 기껏해야 홈페이지(www.filtechkorea.com)를 통해 자사 제품을 알리는 정도다. 그런데도 기존 업체에 설치된 제품의 성능을 보고 다른 바이어가 찾아와 구매해 간다. 어떤 장점이 있기에 이같이 국내외 바이어들이 줄을 잇는 것일까.이 회사의 주력 제품은 식품 업체용 튀김 기름 여과기다. 과자 햄 통닭 등을 튀길 때 사용하는 기계다. 식용유를 여러 번 사용하면 그 안에 불순물이 남는다. 밀가루나 기름 찌꺼기 등이 식용유를 산화시킨다. 찌꺼기가 타면서 검은 조각이 남는다. 탄화도 이뤄진다. 산화와 탄화가 어느 정도 진행될 경우 식용유를 교체해야 한다.이 회사의 여과기는 일반 여과기와 달리 필터로 여과포나 여과지 대신 규조토를 사용한다. 규조토는 자체적으로 많은 기공을 갖고 있어 여과 능력이 뛰어나다. 하지만 이를 필터로 사용하려면 기술력이 있어야 한다. 단가가 높아지는 단점도 있다. 따라서 대형 식품 업체의 제조 공정을 제외하곤 여과포나 여과지를 필터로 쓰는 여과기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하지만 필택코리아는 기계와 유체역학 등의 기술을 활용해 적절한 비용으로 규조토 코팅 방식을 이용한 여과 기술을 개발해 발명 특허를 획득했다. 이를 토대로 여과기를 만들어 제과회사 어묵회사 햄패티 제조업체들에 공급하고 있다. 불황일수록 식용유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는 업체들이 많아 이 회사는 오히려 수주가 늘고 있다.정 사장은 “천 재질로 만들어진 여과기는 섭씨 80~90도의 온도에서 유기용매 및 페인트 물 등의 여과에 이용되지만 미세한 입자가 통과할 때 금방 막힌다”며 “특히 튀김 기름처럼 섭씨 170도가 넘는 고온에서 여과할 경우에는 천이 손상된다”고 설명한다. 또 “국내외에서 시판되는 튀김 기름 여과기 중 종이필터(필터지)를 사용한 여과기가 많이 있지만 여과지 교체비용이 많이 들고 카본 여과지는 고가여서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고 덧붙인다. 게다가 “종이 여과지는 기름을 식힌 후에 여과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고 설명한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튀김 기름 여과에 알맞은 필터 디스크를 장착한 여과기를 개발하게 됐다고 소개한다.영등포공고와 한양대 공대(산업공학과)를 나온 정 사장은 ROTC로 군복무 후 잠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지난 1980년 창업했다. 대학 재학 중 기계 분야에 흥미를 느껴 이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한 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뭔가 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을 가진 업체를 창업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그러던 중 창업 아이템으로 여과기를 선택하고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여과기 생산의 외길을 걸어오고 있다. 처음에는 화학 공정에 들어가는 여과기를 제조했다. 도료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찌꺼기를 걸러내는 여과기를 주로 생산했으나 지난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주력 제품을 식용유 여과기로 바꿨다.“당시에 경기 침체가 심해지면서 기업들이 설비 투자를 중단하자 갑자기 일감이 끊겨 위기를 맞았다”고 회고한다. 화학 공정용 여과기는 기업들이 설비 투자를 하지 않으면 제품을 전혀 수주할 수 없었다. 고민하던 그는 “식품은 경기가 어려워도 영향을 덜 받는 분야여서 여기에 사용되는 여과기를 만들면 될 것 아닌가”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그는 자신의 공학 지식과 현장 경험 각종 전시회에서 습득한 정보를 동원해 규조토 여과기를 합리적인 가격에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여과기는 식용유가 펄펄 끓는 고온(섭씨 160~210도)에서도 여과할 수 있고 1마이크로미터 정도의 미세한 찌꺼기까지 걸러내는 특징이 있다”고 정 사장은 설명한다. 이에 따라 식용유의 냄새와 맛을 정화하는 기능도 갖고 있다고 덧붙인다.그는 “수차례 해외에 나가 비슷한 종류의 여과 설비와 비교해 본 결과 우리 제품이 기술적으로 뒤지지 않고 가격도 저렴해 국제 경쟁력이 있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에 도전할 생각”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튀김 기름 여과기는 식용유를 2배 가까이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어 비싼 식용유 값을 절감할 수 있다”며 “어묵회사 한과회사 제과업체 등 튀김 기름을 사용하는 모든 업체들이 쓸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이 회사는 기업체의 업종과 특성에 맞는 용량의 여과 설비를 제작해 공급하고 있다. 한꺼번에 20~2000리터의 튀김 기름을 여과할 수 있는 설비를 만들고 있다.정 사장은 그동안 쌓은 여과 기술을 활용해 폐차장에서 나오는 폐휘발유와 폐경유를 걸러 사용할 수 있는 여과기도 최근 내놓았다. 분당 30리터를 여과할 수 있는 설비로 이 제품 역시 1마이크로미터의 불순물까지 잡아낸다. 폐수 처리용 여과기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절삭이나 연마 공장 등에서 사용하는 물을 여과해 재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품이다. “이 경우 대부분의 물을 재활용할 수 있고 증발하는 부분만 보충하면 된다”고 덧붙인다. 주로 중소형 공장에서 사용하는 폐수 처리용 여과기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 제품은 찌꺼기의 함수율을 크게 낮춰 케이크 상태로 배출하게 된다.정 사장이 처음 설립한 업체는 유성기계였으나 수출에 걸맞은 이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2002년 필택코리아로 사명을 바꿨다. 그는 “여과기는 기름이나 물을 걸러서 재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원가를 절감시키는 중요한 수단”이라며 “고객사들의 비용을 절감하고 자원을 재활용해 환경 보존에 이바지한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해 나갈 작정”이라고 밝혔다.약력: 1946년생. 64년 영등포공고 졸업. 68년 한양대 공대(산업공학과) 졸업. 70년 육군 중위 예편. 80년 유성기계 창업. 2002년 필택코리아로 사명 변경.김낙훈 편집위원 nhkim@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