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이야기 ②

재야의 일부 경제학자들이 금리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금리 인하가 외국인 투자자들로 하여금 한국 투자를 주저하게 만들어 자본 유출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자본시장에서 이익이 적게 나면 그들의 자금을 회수할 것이라는 논리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해 가면 환율이 급등해 물가 불안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 시점에서는 금리를 과감히 올려 외국인 투자가들의 자금이 국내로 유입되게 해야 환율이 하향 안정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일부 재야 경제학자들의 논리가 맞는 것일까.돈은 고수익과 안전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아다니는 속성이 있다.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을 예로 들어보자. 일반적으로 시중은행이 저축은행보다 안전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시중은행과 저축은행의 금리가 같다면 저축은행에 돈을 맡기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저축은행의 입장에서는 보다 많은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시중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제시한다. 이렇게 되면 수익을 쫓아다니는 특성상 상당한 자금이 저축은행으로 흘러들어가게 되고, 이들 은행 간에는 균형점이 생기는 것이다. 즉, 상대적으로 수익성보다 안전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시중은행을, 안전성보다 수익성을 더 추구하는 사람은 저축은행을 선호하게 된다.나라와 나라 간의 자금 이동도 이와 같다. 저성장이지만 경제가 비교적 안정돼 있는 선진국은 금리가 전통적으로 낮다. 이에 비해 고성장 국가들인 이머징 마켓의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편이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의 금융시장을 시중은행에 비유한다면 한국이나 브릭스(BRICs) 등 이머징 마켓의 금융 시장은 저축은행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금리를 인상해야 외국인 투자가들의 자금 유출이 멈춰지고 추가 자금 유입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바로 일부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경제 원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들의 주장은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물경제는 이론과 다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000년부터 2006년까지 7년간 자본수지 흑자는 592억 달러에 달한다. 한 해 평균 85억 달러라는 자금이 외국인 투자나 금융회사 차입을 통해 국내 금융시장에 공급된 것이다. 그러던 것이 2007년에는 71억 달러 규모로 줄어들더니 2008년도에는 오히려 509억의 순유출이 일어났다. 2007년도만 살펴보면 상반기 중에는 153억 달러가 순유입됐지만 하반기에는 82억 달러의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갔던 것이다.그러면 무려 180억 달러의 순유입이 있었던 2006년도와 순유입에서 순유출로 전환된 2007년도, 그리고 대규모 자금이 빠져나간 2008년도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선 금리 수준부터 비교해 보자. 2006년 6월 29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연방 기준금리를 5.25%로 인상하면서 2007년 9월 18일에 금리 인하를 시작하기 전까지 고금리 정책을 유지했다. 지난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금리 수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기준금리 수준은 어느 정도였을까. 미국이 금리를 인상한 비슷한 시기인 2006년 6월 8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4.25%로 올리고, 이어 그해 8월 10일에는 4.50%를 추가 인상했다. 이 의미는 자금 유입이 활발했던 2006년도나 2007년 상반기만 하더라도 미국의 기준금리가 우리나라보다 최하 0.75%포인트에서 1.00%포인트 높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러면 자금 유출이 시작됐던 2007년 하반기나 2008년의 금융시장은 어땠을까. 2007년 8월 9일을 기준으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5.00%로 인상했다. 이때부터 2008년 10월 27일에 기준금리를 4.25%로 내릴 때까지 고금리 정책을 유지했던 것이다. 한편 미국은 2007년 9월 18일부터 금리를 인하하기 시작해 2008년도 내내 2%대의 저금리를 유지했다. 결국 이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금리는 미국보다 최소 0.25%포인트에서 최대 3.00%포인트까지 높았던 것이다.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높으면 자금이 유입돼야 하고, 반대로 낮으면 자금 유출이 우려된다는 경제 원론적인 이론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다양한 변수가 반영되는 실물경제와 한두 가지 변수만을 고려하는 책상머리 경제가 맞지 않는다는 대표적인 사례다.그러면 이 기간 동안 어떤 일이 발생한 것일까. 2007년 중순에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 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부동산 담보를 매개로 일어난 금융 시스템상의 문제이고 신용의 위기를 말한다. 투자은행에 투자했던 투자가들이 불안해하면서 자금을 거둬들이기 시작하자 투자은행들은 한국 등 이머징 마켓에 투자했던 자금들을 회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투자 자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 도산한 회사가 바로 리먼브러더스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놀란 투자은행들은 이머징 마켓에서 급격하게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2008년 10월과 11월 두 달에만 370억 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이 우리나라를 빠져나갔다. 2000년도부터 2007년도까지 8년간 우리나라로 들어왔던 자금 규모가 663억 달러임을 감안하면 그 절반도 넘는 자금이 불과 두 달 만에 우리나라에서 빠져나간 것이다.쉽게 설명하자면 생활비가 부족해 옆집 아줌마에게 8년간에 걸쳐 663만 원을 꾸었는데, 이 아줌마가 갑자기 돈이 필요해서 370만 원만 먼저 갚아달라고 한 것이 작금의 사태다. 그동안 꼬박꼬박 이자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이 돈이 필요해 자기 돈을 돌려달라는데, 이자를 더 준다고 자기 돈을 가져가지 않을까. 그러므로 지금 현실에서 금리를 몇 % 정도 올린다고 우리나라를 빠져나갔던 자금이 돌아온다고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없어서라기보다 자신들의 필요로 인해 자금이 회수된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현시점에서 금리를 올리는 것은 불필요한 금융비용만 더 발생시키는 것이지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금리를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이런 단순한 생각 때문에 경제가 망가지는 것이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격이다. 여기에서 개구리는 기업을 의미한다.금리를 인상하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다. 기업 운영과 자금 차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원재료를 사서 인건비를 들여 완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기업에 자기 자본금만 가지고 운영하라고 하면 사 올 수 있는 원재료의 양이 한정되기 때문에 매출 규모가 영세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이 금융회사로부터 대규모로 자금을 빌려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다. 안정된 비즈니스 모델이 있다면 여기에 레버리지 효과를 얹는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금리를 인상한다고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10%의 고금리를 부담하면서 물건을 만들어 수출한다면 저금리의 혜택을 받는 일본 기업의 물건보다 그만큼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결국 금리 인상은 기업의 국제 경쟁력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백번 양보해서 현시점에서 금리를 인상하면 빠져나갔던 자금이 돌아온다고 가정하자. 그래 보았자 그 자금 규모가 얼마나 될까. 앞서 언급한 대로 2000년에서 2006년까지 7년간 우리나라로 순유입된 자금은 연평균 85억 달러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올해 3월 한 달에만 46억 달러 정도의 경상수지 흑자를 거뒀다고 한다.더구나 그 자금의 성격은 판이하게 다르다. 투자 자금이든, 금융회사 차입이든 이런 자금은 언젠가는 다시 빠져나갈 자금이다. 그 자금을 잡아두기 위해 계속 금리를 올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본수지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경상수지인 것이다. 남편이 땀 흘려 번 돈과 옆집 아줌마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면서 꾸어 온 돈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핵심인 기업을 위주로 생각해 본다면 금리 인상 주장이 얼마나 뜬금없는 소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아기곰 a-cute-bear@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