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전략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진 후 지금까지 6개월간, 전 세계적으로 채권 투자의 시대가 전개됐다. 일부 외환위기 상황에 놓인 몇몇 국가들의 경우를 제외하면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크게 내린 것이다.특히 2008년 상반기에 원자재 가격 급등을 바탕으로 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글로벌 금리를 끌어올렸기 때문에 이후 나타난 금융시장 불안과 안전 자산 선호 현상, 그리고 디플레이션 위험에 따른 금리 하락 폭이 더 커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3년 만기 국채 금리는 2008년 7월 6.2% 수준에서 올해 1월 저점인 3.2%대까지 반년 만에 3%포인트나 내렸다.게다가 각국 중앙은행의 적극적인 금리 인하와 통화 팽창 정책에 기인한 시장금리 하락은 국채를 넘어 회사채 등 신용 채권까지 확산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 4분기 중 나타났던 금융시장 경색으로 9% 이상까지 치솟았던 국내 AA 등급 회사채 금리는 이제 6% 내외에 머무르고 있다. 통화 정책의 유용성에 대한 논란이 많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한국은행이 실시한 통화 팽창 정책이 신용 경색을 해소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 셈이다.이러한 금리 하락 환경에서 작년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6개월 동안 채권 투자자들은 얼마만큼의 투자수익률을 올렸을까. 무려 6.8%에 달한다. 연간으로 따지면 14%에 육박한다. 같은 기간 주식 투자수익률이 마이너스 26.5%에 불과했고 해당 시점 예금 금리가 연간 이율로 7%대였음을 감안할 때 채권 투자는 상당히 높은 투자수익률을 안겨 준 셈이다.문제는 지금부터다. 앞으로 6개월 또는 그 이상 기간 동안 채권에 투자해 지난 6개월과 같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느 정도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필자가 생각하는 결론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앞으로 1~2년 내에 채권 투자로 지난 6개월과 같은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무엇보다 채권 금리가 너무 낮아졌다. 채권 투자는 기본적으로 최초 매수 시점에서의 이자 수익이 높아야 전체 성과가 높은 법인데 3년 만기 채권의 현재 금리 수준을 보면 국채가 4%에 못 미치고 있고 우량 회사채도 6% 내외다.둘째, 이자 수익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금리 하락에 따른 채권 가치 상승인데 이로부터도 큰 성과를 얻기 힘들어 보인다. 물론 글로벌 경제의 침체가 쉽게 끝나긴 어려워 보이고, 이는 경제의 기대 투자수익률이 낮은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실질금리가 낮은 수준일 것이란 얘기다. 상황이 이렇다면 통화 당국의 정책 방향이 긴축으로 돌아설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물가가 플러스 상태를 유지하는 한 명목금리의 하락은 늘 제한될 수밖에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 물가보다 낮은 금리는 실질적인 손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은행 역시 정책금리를 미국이나 영국처럼 0% 근처까지 내리지는 못할 것이다. 소규모 개방 경제 국가인 우리나라의 원화는 선진국 통화에 비해 극단적 통화 팽창 정책에 따른 가치 하락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게다가 올 들어 각국 정부는 대규모 재정 정책으로 경기 침체를 돌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미 1월부터 추가경정예산 논의가 시작되더니 1분기가 채 끝나기도 전인 3월에 추가경정예산 규모와 자금 조달을 위한 국채 발행 물량의 윤곽이 정해진 상태다. 이에 따라 올해 중 총 80조 원 이상의 신규 국채가 발행될 전망이다. 이는 4월부터 매월 7조 원가량의 국채가 쏟아질 것임을 의미한다. 작년에 월평균 국고채 발행액이 4조 원을 조금 넘어섰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담스러운 규모다.한편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작년 4분기 이후의 극단적인 경기 침체로부터 조금씩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는 점도 채권 투자에는 불리한 점이다. 경기 회복 기대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와 맞물리고 이렇게 되면 긴축까지는 아니더라도 정책금리 추가 인하는 당분간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그렇다면 이제 채권의 시대는 완전히 저물었고 당분간 채권 투자는 접어야 하는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특정 시점에 있어서의 투자 의사결정은 과거 실적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자산군의 미래 실적 전망에 기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이런 관점에서 보면 결국 채권이 안전성과 수익성 측면에서 다른 자산에 비해 어떠한가가 중요하다. 현재 상황에서 채권 투자에서 얻을 수 있는 이자 수익이 은행 예금에 비해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체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에서 채권 투자는 적극적 검토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나타나고 있는 경기 회복 기대와 별개로, 회복 이후 경제 상황이라는 것이 저성장·저물가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채권 투자의 정당성을 높이는 요인이다.저성장·저물가일 것으로 보는 것은 이번 금융 버블의 붕괴가 사실상 실물경제의 버블로 이어졌으며 결국 과잉 공급이 상당 수준 해소돼야만 경기 침체가 마무리될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사실 미국 경제는 지난 2003년부터 2007년 기간 동안 대부분의 성장을 가계의 부채 증가와 그에 따른 주택 가격 상승, 그로부터 얻어진 자산 소득에 의존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미국 소비자들에게 물건을 판 것은 우리나라와 중국 등 제조업 수출 국가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미국의 자산 가격이 떨어지며 미국 소비자들의 소비가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벌어들인 만큼 소비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제조업 수출 국가들의 시설은 새로운 수요가 나타나기 전까지 과잉 상태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신규 투자와 고용이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얘기다.이러한 상황은 결국 글로벌 경제, 특히 수출 지향적 국가의 경제가 당분간 2000년대 누렸던 호황을 더 이상 향유하기 어렵다는 점을 의미하며 돈을 투입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줄었음을 시사한다. 이렇듯 기대수익률이 낮아진 상황에서 실질금리가 높을 수 없고 과잉 공급 상태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클 수 없으니 당연히 금리는 낮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장기적인 저성장 환경에서 위험 자산의 가치 상승이 지속되기 어려우니 채권 투자의 매력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그렇다면 채권 종류 중에서는 어떤 것들이 좋은 투자 대상일까. 일단 필자는 국채보다 공사채나 우량 회사채 투자가 유리하다고 본다. 경기 침체 위험을 반영해 금융회사들의 자금 운용이 보수화되면서 신용 위험이 거의 없다고 여겨지는 채권조차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저성장·저물가 환경에서는 우량한 기업조차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에 기업 선별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는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구조조정을 통해 건전해질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A 등급 이상 회사채와 이를 편입하는 채권형 펀드는 예금보다 한결 높은 성과가 기대된다.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금 조달 비용을 줄이기 위한 우량 기업들의 주식 관련 사채 발행 움직임이 이어질 수 있는데 이 역시 좋은 투자 대안이라고 판단된다.최석원·삼성증권 채권분석파트장 swfi.choi@samsung.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