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전략
“지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학습 효과가 큽니다.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졌어요. 일단 매물을 찾는 문의 전화가 늘어났습니다. 괜찮은 물건만 나오면 웃돈을 얹어서라도 구입하려는 모습들입니다.”(송파구 신천동 금성공인 관계자)계절적인 수요 때문인지 4월로 접어들면서 부동산 시장은 기지개를 켜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이다. 최근 정부는 그동안 시장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해 온 규제를 대부분 해제했다. 과도한 규제가 건설 경기와 내수 시장 침체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뜻에서다. 정부발 훈풍이 불면서 부동산 시장은 해빙 무드가 완연하다.잠실 제2 롯데월드 허용이 확정된 지난 3월 31일 잠실동 A부동산 중개업소에는 여기저기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 정부는 건축 시 서울공항 작전 운영 및 비행 안전 문제를 공군과 협의한다는 조건으로 지상 555m, 112층 높이의 제2롯데월드 건축 허용을 최종 확정했다. 소식은 서울 송파 강동 지역 집값을 끌어올릴 메가톤급 호재다.그동안 서울 집값의 선행지수 역할을 했던 강남 지역 아파트는 최근 조금씩 거래가 늘고 있다. 국토해양부가 조사한 아파트 실거래 동향에 따르면 지난 2월 강남 3구(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아파트 거래량은 1210건으로 2006년 12월 1642건을 기록한 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투기지구 및 투기과열지구 해제 여부가 아직 가시화되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당초 예상치를 뛰어넘는 반응이다. 강남 아파트 값의 바로미터인 대치동 은마아파트 101㎡(31평형)는 지난 1월에 비해 4100만 원 오른 8억9500만 원에 거래가 체결됐다. 이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시장이 너무 앞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개포동 주공3단지 35㎡(11평형)는 지난 1월과 2월 사이 10건이나 계약됐다. 이 기간 동안 아파트 값도 5억2000만 원에서 5억9250만 원으로 뛰었다.부동산정보업체 스피드뱅크가 조사한 3월 넷째 주 아파트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송파구(0.21%) 강동구(0.17%) 강남구(0.09%) 서초구(0.08%) 등 강남권 전체가 재건축 아파트 값을 중심으로 오름세를 기록하고 있다. 강남 4구를 제외한 서울 전 지역이 마이너스 상승을 기록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제2롯데월드 허용 소식이 전해지면서 잠실 집값은 호황기였던 2006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양상이다. 잠실5단지 115㎡(35평형)는 3월 중순보다 5000만 원 오른 12억~12억5000만 원 선에서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참고로 이 아파트는 지난해 말 8억9000만 원까지 값이 급락했었다. 장미아파트 109㎡(33평형)도 지난해 연말 5억9000만 원까지 내려갔던 것이 지금은 8억 원대에서 매물이 나오고 있다. 잠실동 삼성공인 이문형 중개사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발표에 2종 일반 주거지역 층고 제한 완화 소식까지 더해지면서 재건축 아파트 매물을 찾는 수요가 평소보다 2~3배가량 많아졌다”며 “제2롯데월드 호재까지 반영되면 집값 강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제2롯데월드 건립으로 인근 지역에 교통 대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 속에도 상업용 부동산 값은 초강세를 기록 중이다. 장미아파트 단지 내 상가 값은 대로변에 위치한데다 재건축 상가라는 호재가 함께 작용하면서 3.3㎡당 가격이 1억2000만 원이다. 잠실동 S공인 관계자는 “고정적인 월세 수입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요인”이라고 강세 이유를 설명했다.강동구의 대표적 재건축 단지인 둔촌주공, 고덕주공 등도 상황은 비슷하다. 고덕동 고덕주공 2단지 52㎡(16평형)는 2주 전 5억3000만 원에 거래됐던 것이 지금은 5억5000만 원까지 값이 뛰었다. 둔촌동 둔촌주공3단지 112㎡(34평형)는 2주 전 까지만 해도 8억5000만 원이면 매물을 찾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9억1000만 원을 훌쩍 넘어섰다. 둔촌동 둔촌1번지행운공인 강복순 중개사는 “3월 11일부터 문의가 폭주하면서 월말까지 37건의이 거래됐다”면서 “보통 월평균 10건, 많게는 30건 정도 거래되는 것을 놓고 볼 때 완전히 상승세로 돌아섰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집값 상승이 대세라고 보기는 힘들다. 수도권은 상당수 지역이 아직도 바닥권이다. 스피드뱅크의 3월 넷째 주 주간 조사에서도 5대 신도시(마이너스 0.06%), 경기(마이너스 0.04%), 인천(마이너스 0.06%) 모두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갔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거래량이다. 무엇보다 급매물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특히 분당은 4월로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강남 집값이 회복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분당 부동산 시장도 술렁거리는 모습이다. 서현동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소형 평형에 한정됐던 것이 최근에는 중대형도 서서히 급매물이 빠지기 시작했다”며 “6월에 대규모 입주가 시작된다는 변수는 여전하지만 전체적으로 가격 상승 기대감이 높다”고 전했다.미분양 시장도 다소 숨통이 트이고 있어 1월 말 현재 전국 미분양 주택은 16만2693가구로 한 달 전에 비해 2906가구(마이너스 1.8%)나 줄었다. 특히 서울과 경기를 포함한 수도권 미분양 주택은 1월 말 현재 2만5531가구를 기록해 한 달 전보다 1397가구(마이너스 5.2%)나 감소했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민관 합동으로 미분양 해소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데다 양도세 폐지로 대표되는 부양책이 시장에 영향을 미치면서 수도권 유망 지역을 중심으로 미분양 가구 수가 조금씩 줄고 있다”고 말했다. 미분양 시장이 살아나면서 분양권도 활기를 되찾고 있다. 분양권 전매 제한이 사실상 해제된 상태에서 개발 호재가 즐비한 지역의 분양권은 환금성이 높다.저가 매수 수요의 바로미터인 법원 경매시장도 여전히 뜨겁다. 경매 정보 제공 업체인 지지옥션이 조사한 3월 15일 기준 서울시 아파트 낙찰가율은 78.1%로 2월 말 76.5%보다 약간 상승했다. 서초구 잠원동 현대훼밀리 아파트 805호(전용면적 84.5㎡)는 감정가 6억8000만 원에 29명의 입찰자가 몰려 감정가의 83%인 5억6441만 원에 낙찰됐다. 경기도 아파트 낙찰가율도 76.6%로 2월 말(74.4%)에 비해 상승했다. 지난해 하반기 경매로 내몰린 물건 수가 많아 법원 경매를 찾는 투자자들은 당분간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낙관론이 서서히 힘을 얻고 있지만 아직 안심할 때는 아니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부동산 경기가 바닥을 찍고 본격적인 회복세로 접어들기 위해선 실물경기 회복이 관건이다. 현 상황은 ‘하반기 경기 바닥론’에 힘을 입은 측면이 강하다. 실물경기가 살아나기 전에 저가로 매물을 취득하려는 생각에서 수요자들이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얘기다.분명 시장의 움직임은 예상보다 빠르다. 외환위기 후 저금리에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부동산이 사상 최고의 호황을 누렸던 것은 투자자들의 뇌리 속에 분명히 남아 있다. 시중금리가 내려가고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있는 것은 투자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만약 경기가 바닥을 찍고 상승세로 돌아서면 가격 변동 폭이 큰 상품이 유리하다. 재건축단지가 대표적이다. 향후 3~4년간 강남권에 신규로 분양되는 물량이 많지 않아 희소가치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지금 강남 부동산 시장을 기웃거리는 투자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부동산 경기가 회복세를 탈 때 가장 먼저 꿈틀거린 것 역시 강남 재건축 아파트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토지 거래 허가 기준이 다소 완화되면서 서울 도심지와 가까운 곳의 재개발 지분은 여전히 매력적인 상품이다. 경기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상가도 택지지구 등 확실한 배후단지를 확보한 곳은 블루칩 상품으로 분류된다.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