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속도 내나
그동안 재협상 여부를 놓고 입장 차이를 보여 왔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긍정적인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G20 금융정상회의가 열리는 영국 런던에서 첫 정상회담을 갖고 한·미 FTA 처리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상회담에서 한·미 FTA를 위해 상호 협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를 확인했다”며 “오바마 대통령은 한·미 FTA가 양국의 경제발전은 물론 세계경제 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된다는 뜻을 내비쳤다”고 전했다.이날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한·미 FTA는 양국의 경제적 측면과 한·미 동맹의 전략적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면서 “특히 궁극적으로 미래 지향적 한·미 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자동차에 대한 불공정 거래를 이유로 한·미 FTA 처리에 대해 다소 부정적이었던 오바마 행정부가 다소 긍정적인 태도 변화를 보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두 차례 이 대통령과 전화 통화했지만 단 한 번도 FTA를 거론하지 않았었다. 이날 두 정상이 회담 의제로 FTA를 올려놓았다는 것에 대해 청와대가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이날 두 정상이 논의한 내용은 ‘한·미 FTA의 진전을 위해 상호 협력해 나간다’는 것 정도다. 내용만 놓고 보면 기존과 그다지 달라진 것은 없다. 말 그대로 ‘논의’ 수준이다. 하지만 기대는 걸만 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한·미 FTA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였고 미국 내 기류도 재협상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했던 것을 감안하면 이번 논의는 의미가 있다.오바마 정부 입장에선 FTA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는 것이 실익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가 초읽기에 들어간 데다 글로벌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양국 간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재협상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던 미국 내 여론이 최근 달라지고 있는 것도 오바마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최근 론 커크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미국 자동차 업계가 한국에 자동차 수출을 늘리는 것은 미 정부의 핵심 우선순위 중 하나”라며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힌데 대해 미 유력 일간지인 뉴욕타임스(NYT)가 사설을 통해 반대 입장을 밝힌 것이 좋은 예다.FTA 파국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고개를 들게 되는 것은 오바마 정부로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다양한 채널을 통해 보호무역주의에 반대한다고 역설해 왔기 때문에 명분상 FTA 자체를 거부하기 힘들다는 것이 워싱턴 정가의 분석이다. 그럴 바에야 자유무역에 드라이브를 걸어 가뜩이나 바닥인 미국 경제를 끌어올리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있다.최근 속도를 내고 있는 한·EU FTA 협상도 오바마 정부가 ‘수용’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이유다. 시간을 끌다 자칫 한·EU FTA가 먼저 통과되면 한·미 FTA 효과는 상대적으로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 시장마저 EU에 선수를 빼앗기는 것이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일단 분위기는 좋다. 정상회담 의제로 논의된 데다 이에 앞서 열린 실무협상에도 미국 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 받았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이후 미국 정부로부터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받은 정부는 앞으로 한·미 FTA 발효에 전력을 기울일 공산이 크다.그러나 정부의 예상대로 한·미 FTA 처리가 급물살을 타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협조가 절실하다. 국회 비준조차 만만치 않다. 한·미 FTA에 대한 여야가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데다 ‘박연차 리스트’ 수사에 대한 민주당의 반발이 예상보다 커 정작 미국과 의견 차이를 좁힌다고 하더라도 국회에서 장기간 답보 상태에 머무를 수 있다. 또 오바마 정부의 통상정책 결정 라인 진용이 아직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것도 안심할 수 없는 대목이다.송창섭 기자 realsong@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