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은 없었을까. 이 물음에 “안정을 추구하는 은행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IT 사이에서 갈등을 느낀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 자체도 하나의 도전”이라고 대답했다. 또 단순함에서 출발해 결론이 명확한 공학과 달리 심리적 요인이 많은 금융 분야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움이라고 털어놓았다.서울 명동의 하나은행 차세대시스템 개발실. 축구장 넓이로 탁 트인 공간에 수백 명의 프로그래머들이 머리를 맞대고 작업 중이다. 한쪽 벽면을 차지한 초록색, 파란색의 대형 스크린들에서는 각종 수치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다. 마치 야전 상황실을 떠올리듯 긴박한 이곳에서는 총 6개 층에서 1800여 명의 개발 인력이 올 5월 하나은행 차세대시스템 오픈을 목표로 막바지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은행 시스템이 어떤 곳인가. 한 치의 오류와 실수도 허용되지 않고, 또한 해커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져야 하는 곳이다. 정보기술(IT)분야 특유의 자유스러운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이 떠나지 않는 이유다. 이 모든 것을 지휘하는 ‘야전 사령관’은 올해 45세의 조봉한 사장이다.그는 이미 39세에 하나은행 임원(부행장보)에 오르면서 금융계의 기록을 갈아치운 바 있다. 도대체 얼마나 능력이 뛰어나기에 남들이 차장 달 때 임원이 된 것일까,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결론은 의외로 싱거웠다. 특별한 처세술이 없었다는 얘기다. 조 사장은 미국 남가주대(USC)에서 인공지능 연구로 컴퓨터 사이언스 박사학위를 받을 정도로 IT 분야에 남다른 능력을 지녔다. 서울대 계산통계학과에 다닐 때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구력 300에 이르렀지만 학점도 좋았다. 바둑에도 일가견이 있다. “바둑의 룰은 둘러싸이면 먹힌다는 것 하나뿐입니다. 프로그래밍도 마찬가지로 원리는 간단합니다. 0과 1이 전부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바둑이 인류 역사상 가장 인텔리전트한 게임이듯, 프로그래밍도 아키텍처(구조물)를 쌓고 쌓다 보면 복잡해집니다.”처음엔 교수를 할 생각으로 유학을 갔었다. 그렇지만 그가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인 1990년대 초·중반에 마이크로소프트(MS)의 윈도가 출시되고 인터넷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IT 산업의 신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프로그래밍이 연구실 안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조 사장도 기업행을 결심했다.1999년 오라클 연구·개발(R&D) 스태프가 된 후 증권 중개업체 ‘찰스 숍’, 제약사 ‘머크’, e커머스 ‘아마존’ 등 쟁쟁한 미국 기업의 시스템 구축에 관한 컨설팅과 개발을 담당했다. 이후 2001~04년 국민은행 차세대 시스템 신기술팀장(CTO: 최고기술책임자)으로 온라인 서비스 시스템 구축을 성공적으로 끝낸 뒤, 2004년 하나은행 부행장보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2008년 3월부터는 하나아이앤에스 대표이사를 겸하며 차세대시스템 개발을 지휘하고 있다.너무 매끄러운 이력이 아닐 수 없다. 우여곡절은 없었을까. 이 물음에 “안정을 추구하는 은행과 새로움을 추구하는 IT 사이에서 갈등을 느낀 적이 있다. 그러나 이것 자체도 하나의 도전”이라고 대답했다. 또 단순함에서 출발해 결론이 명확한 공학과 달리 심리적 요인이 많은 금융 분야에 적응하는 것도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그는 금융 분야에서 IT가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고 본다. “단순히 상품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니즈를 채워 줄 수 있는 것이 IT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또 국내에서 공대 기피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하나은행 차세대시스템 오픈은 5월 4일, 지금까지의 인터뷰로 보아 이날은 조 사장이 국내 금융계 최고의 CIO임을 확인하는 날이 될 듯하다.하나아이앤에스 사장약력: 1965년생. 전주신흥고,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졸업. 남가주대(USC) 컴퓨터 과학 석·박사. 99년 오라클 시니어 멤버. 2001 국민은행 CTO. 2004년 하나은행 부행장보 및 CIO(현). 2006년 하나금융지주 부사장(현). 2008년 하나아이앤에스 사장(현).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