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경매사 김민서
‘탕!’힘찬 낙찰봉 소리를 듣기까지, 입찰자 사이에 호가를 두고 밀고 당기는 경매는 레이스(race)다. 이 고도의 심리전에서 10억, 20억으로 원 호가가 올라갈수록 경매사의 손끝에도 긴장이 흐른다. 짜릿한 ‘레이스’를 이끄는 경매사에게 카리스마는 필수 요건. 수려한 용모로 시청자의 눈길을 더욱 잡아끄는 SBS TV ‘아이디어 하우머치’ 김민서 경매사의 카리스마는 강렬하지만 부드러웠다.“방송이 끝나고 나서 ‘김민서 씨가 무서워서 (호가대로) 합니다’라고 말씀하신 최고경영자(CEO)가 있었어요. 낙찰이 가까워질 때 ‘한 번 더 하시죠!’라고 권하는데 너무 강하게 했나 봐요.(웃음)”훤칠한 키에 빼어난 미모, 그리고 거부할 수 없는 카리스마. 개발자의 참신한 아이디어 또는 기술을 두고 유망 기업 CEO들이 경매를 펼치는 SBS TV ‘아이디어 하우머치(매주 목요일 오후 5시 25분 방송)’에서의 김민서(32) 경매사의 첫인상은 솔직히 다가가면 튕겨 나올 것만 같이 강렬했다.“사실 평소엔 잘 웃어요. 경매 진행은 미소를 띠면서도 감정을 절제하고 냉정하게 해야 하거든요. 경매는 심리전이기도 한데 경매가 입찰자들 사이의 감정적인 레이스로 흐를 때는 제 말 한마디가 크게 영향을 미쳐요. ‘여기서 포기하시나요?’라면서 입찰자들의 자존심을 살짝 건드릴 때도 있고요.”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지금의 카리스마는 결국 훈련과 연습에 의해 만들어진 것. 좌중을 압도하는 눈빛과 낙찰을 선언하며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휘둘렀다 앞으로 뻗는 왼손의 움직임(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군더더기 없고 절도 있는 말투는 프로 경매사가 되기 위한 훈련과 거울을 앞에 두고 쌓은 ‘내공’의 결과물이다.‘아이디어 하우머치’를 통해 김 경매사가 기록한 최고의 낙찰가는 25억 원. 현대인의 숙면을 도와주는 아이디어 베개를 두고 펼쳐진 경매는 ‘제대로 터지겠다’는 그의 예감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케이스. 입찰자로 출연하는 CEO들은 때론 즐거워서, 때론 그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해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는 그의 호가를 따라 경쟁에 몰입한다.경매 끝에 ‘탕!’하고 시원스럽게 내리치는 그의 낙찰봉 소리는 묘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큰소리’ 한 번 내기 힘든 ‘직딩’이라면 10억, 20억 원을 주저 없이 불러대는 그의 직업이 마냥 부러울 터.“원래는 순수 미술인 조각을 전공했어요. 그런데 졸업을 앞두고 생각해 보니 전 작가로서는 부족한 것 같더라고요. 창의적인 것보다는 상업적인 일이 맞는다고 해야 할까요. 전시기획 쪽이 어떨까 했는데 마지막 학기에 자연스럽게 서울옥션에서 6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할 기회가 생겼어요.”미대에 다니며 미스 강원 출전 이후 이런저런 루트를 통해 하게 된 방송 일과 광고 모델 일은 말 그대로 ‘알바’였다. 외모에 비해 매끄럽지 못한 말솜씨로 방송 리포터 일은 딱 2회, 단발로 끝내고 나니 ‘그 길’은 ‘내 길’은 아니다 싶었다. 졸업과 함께 미술관 큐레이터로 취직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공을 살려 실력을 발휘했고 미술품 경매를 ‘어깨너머’로 배웠다.그러던 중 2007년 마침내 꿈은 이뤄졌다. D옥션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경매사로 단상에 오르게 된 것. D옥션 정연석 회장의 눈에 띈 것이 계기였다. 먼저, 부족하다고 느꼈던 말하기부터 트레이닝에 들어갔다. 경매사 전문 아카데미가 없는 현실에서 경매 진행에 필요한 화법과 발성 테크닉은 현직 아나운서에게 배웠다.“서울옥션 박혜경 이사님이 제겐 롤모델이에요. 경매를 진행하던 그분의 모습이 당시에는 충격으로 다가올 정도였어요. 뭐랄까, 데자부 같다고 할까요? 단상에 서 있는 그분을 보는데 그 단상에 제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거든요.”당시 그가 맡은 작품은 100점. 정식 경매사로 데뷔한 것치고는 꽤 괜찮은 결과도 얻었다. 이후 1년 반 동안 D옥션 경매사로서 기록한 최고 낙찰가는 10억8000만 원.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중국 현대미술 작가 웨민쥔의 작품 ‘왕관’이었다.프리랜서 경매사로 변신한 것은 지난해 10월 이후. 지난해 6월부터 ‘아이디어 하우머치’에 고정 출연하면서 자연스럽게 얼굴도 알려져 농림수산식품부 주최 ‘명품 농산물 경매쇼’를 비롯해 연예인과 올림픽 메달리스트 기증품 자선 경매, 백화점 명품 경매, 보석 경매 등 분야를 막론한 ‘전천후’ 경매사로 뛰고 있다.“미술품 경매는 일단 작품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해요. 경매 전에 고객들이 작품에 대해 물어보시는데 그때 제가 해드리는 말이 영향력이 크거든요. 또 경매 자체도 품위와 격식을 갖춰야 하고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대중적인 경매도 많이 진행하게 됐는데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경매에는 쇼(show)적인 요소가 필요하더라고요.”경매사의 수입은 경매에 오르는 물품의 숫자에 따라 달라진다. 옥션 회사 소속 경매사의 경우 기본급에 각 경매에서 거래가 성사된 작품 수와 가격에 따라 인센티브가 지급된다. 현재 국내 프리랜서 경매사로는 거의 ‘1호’인 김민서 경매사는 방송 출연 후 지명도가 오르면서 대부분 연예인이나 아나운서에게 맡겨졌던 자선 경매나 명품·보석 경매가 늘어났다. 하지만 “아직도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일한다고 보기엔 수입 면에서 부족한 수준”이라는 게 그의 설명. 수입이 들쑥날쑥하지만 그래도 ‘월급쟁이’때보다는 낫단다. 그런데 요즘 방송을 타다 보니 섭섭한 오해를 받기도 한다.“방송국 게시판을 보면 너무 높은 금액만 받아내려고 한다는 댓글이 많아요. 경매사의 역할은 사실 희소성이 있는 물품을 최고의 가격으로 낙찰받게 하는 겁니다. 가치는 가격과 함께 상승하거든요. 보통은 시작가의 5% 단위로 호가를 높이는데 경매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가치만큼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꼭 사려고 했던 사람이 사지 않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단상에 오를 땐 최고가를 받아내려는 판매자의 입장에 섭니다. 하지만 1억 원에서 시작해 500만 원씩 호가를 높여 부를 때는 사실 속으로 부담도 되고 떨리기도 해요.(웃음)”새로운 프로의 세계를 개척하며 그 속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데는 거침없고 당당한 그의 성격도 한몫했다. 도전을 즐기며 살다 보니 경매사가 됐고, 말솜씨가 부족해 단발 출연으로 막을 내렸던 방송 일도 다시 하게 됐다. 서른 초반, 그의 앞에는 또 어떤 짜릿한 도전이 남았을까.“경매를 한 번도 실제로 본 적이 없다고 하는 분들이 정말 많은데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경매를 개척해 보고 싶어요. 또 하나 바람이 있다면 경매사 양성 아카데미를 만드는 거예요. 제가 경매사 교육을 받을 땐 전문 교육기관이 없어 분야를 나눠서 트레이닝을 받았거든요. 이 분야에서 그야말로 프로가 된 다음에는 꼭 한 번 해 보고 싶어요.”얘기를 듣자니 그가 경매 중에 호가가 답보할 때면 입찰자들을 향해 던지는 말이 생각났다. “여기서 포기하시나요? 한 번 더 하시죠!” 자신의 삶을 향한 그의 경매는 ‘낙찰’이 없어 보인다.약력: 조각을 전공한 뒤 서울옥션 인턴 사원 근무를 계기로 대학원에서 미술관·박물관 경영을 공부했다. 대학 재학 때 1997년 미스 강원 포토제닉상 수상 후 SBS TV ‘스포츠가 좋다’ 리포터로 방송과 인연을 맺음. 디(D)옥션에서 미술품 전문 경매사로 활동하다 프리랜서로 전향, 보석·명품·농산물 등 다양한 분야의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SBS TV ‘아이디어 하우머치’에 출연하면서 세간의 화제가 된 바 있다.장헌주·객원기자 hannah315@naver.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