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황으로 인해 시장에 제품이 파격적으로 싼 가격으로 다양하게 나와 있다. 경기가 정상일 때나 호황일 때는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유통의 기본 과정이 제품을 싸게 입수하고 판로를 개척하는 것이라면 창업자들에게 일단 첫단계는 수월할 수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시장 개척. 각자의 수완과 발품에 달려 있다. 불황이지만 사이버 스페이스, 전국 및 해외 시장에서 기회를 찾아보자.일명 ‘땡처리’. 국어 비속어 사전에 따르면 ‘일정한 기간 내에 팔지 못한 물건을 대량으로 싸게 파는 일’로 정의돼 있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불황으로 소비가 급감하자 여러 제조업체들은 현금 확보나 어음 결제를 위해, 혹은 공장 부도 때문에 제품들을 울며 겨자 먹기 식 ‘땡처리’로 시장에 대량 내놓고 있다. 의류, 생활 잡화, 액세서리, 전자제품, 항공권 등 영역에는 한계가 없다. 제2차, 3차 시장에서 이뤄지는 땡처리는 이전에도 이월상품 등을 취급하며 활발하게 유통의 일부분을 담당했으나, 최근 불황 속에서 재정난을 겪는 업체들이 늘다보니 땡처리 시장이 보다 활성화되고 있는 것. 제조업체나 유통 업자에게 재고는 자산에는 포함되지만 실질적인 돈이 아니기 때문에 싼 가격이라고 할지라도 가능한 한 빠르게 소진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땡처리 제품이라고 품질이 낮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국내 유명 브랜드에서부터 해외 명품 브랜드까지 땡처리 시장에서 유통된다. 기존 1차 유통망에서 벗어난 땡처리 제품들은 다양한 판로로 퍼져 나간다. 시중에서 기존가보다 싼 가격을 강조한다면 대부분 땡처리 제품이라고 보면 된다. 땡처리로 가격이 파격적으로 낮아진 제품들의 일부는 직접 아울렛이나 인터넷 쇼핑몰로, 또는 도매시장에 집결됐다가 소규모 소매업자에게, 때로는 보따리장수들에 의해 해외로 유통된다. 소비자로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브랜드 기획전, 백화점 창고 대방출, 심지어 지하철역 상가에서 ‘70~80% 세일’이라는 플래카드 아래 판매되는 제품들이 이러한 유통 경로를 통하는 것이다. 게다가 거리의 소매 점포들이 폐업하거나 업종을 변경하며 벌이는 ‘폐업 세일’은 땡처리의 마지막이라고 볼 수 있다.지난 3월 16일 남대문시장 미용용품 매장의 상인 김남용 씨는 “최근 불황 때문인지 좋은 물건이 값싸게 들어오는 경우가 많지만, 물건은 많아도 찾는 이가 부쩍 줄어 우리도 물건을 안고 있을 수 없어 구입을 꺼리고 있다”며 “소매업자이건 일반인이건 손님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불황의 그늘을 토로했다. 모두가 지갑을 닫은 상황에서 ‘좋은 물건과 싼 가격’이라는 장사의 기본 원리만으로는 자구책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명동 밀리오레의 벨트 판매상인 김형균 씨는 “요즘 땡처리 제품들이 많이 나오지만 자금력이 있는 도매상들만이 이를 대량 구매할 수 있다. 땡처리 물품만 찾아다니는 일부 도매상은 이런 물건들을 사들인 후 바로 수익을 붙여 되팔아 며칠 만에 수천만 원의 이익을 남기는 이도 있다”고 말한다. 공장에서 나오는 덤핑 제품 정보는 아무나 입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통업계에서의 신뢰와 인맥을 통해 이러한 정보를 입수하고 당장 현금으로 지불할 수 있는 자금력과 매입한 물건을 보관할 창고가 갖춰져야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자금력과 창고를 갖고 있는 대형 도매상들은 공장이나 업체에서 직접 나오는 땡처리 제품을 저가로 일괄 구입하고 가격을 크게 파괴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금씩 유통하기도 한다. 화곡동 도매시장에서 10년간 도매업을 한 (주)덤핑마켓의 박종원 사장은 “우리는 자체적으로 창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여러 업체로부터 재고 처리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며 “해외로 수출하던 물건들도 국내 제조업체가 상황이 어려워지자 대량으로 우리에게 넘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한편 내수 시장 불황으로 인해 도·소매업자가 힘겨워하는 상황에서도 단비처럼 반가운 존재들이 있다. 바로 보따리장수들이다. 국내 보따리장수는 물론 원화 평가절하에 따라 가까운 중국과 일본에서 몰려오는 보따리장수들이 최근 크게 늘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특히 중국의 소규모 무역상들은 한국의 대표 도매시장인 남대문, 동대문, 화곡동 시장을 돌면서 품질 좋고 가격도 싸진 한국 제품들을 쓸어 가고 있다. 땡처리 도매 전문 업체인 ‘신지인터내쇼날(cafe. daum.net / sinzie)’의 박인영 대표는 “환차익 때문에 중국 보따리장수들이 부쩍 늘었다. 신상품보다 저가의 일상 용품들을 많이 사 가고 있다. 그 외 남미나 러시아, 유럽 쪽의 보따리장수의 문의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자본 창업을 지원하는 ‘마당발TV(www.madangbal.tv)’의 최성렬 대표는 “예전의 땡처리 제품들은 국내에서 대부분 소비가 됐었지만 지금은 중국으로 많이 흘러가고 있다. 한국의 저가 제품은 중국의 중산층을 타깃으로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자체가 고급 브랜드화돼 판매된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이 유통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 예전에는 보따리장수들이 중국에서 생산된 저가 제품을 한국에 들여왔다면, 현재는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중국 시장에 유통하는 것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현명한 소비자라면 지금이 쇼핑에는 절호의 기회다. 불황 속에서 씀씀이를 줄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꼭 필요하거나 갖고 싶었던 제품은 가격이 떨어졌을 때 사는 것도 소비의 노하우다. 잘 고르면 정상가의 절반 수준으로 ‘땡처리’ 물건을 살 수 있는 곳, 전국 소매업자 및 중국과 러시아 보따리장수들이 물건을 떼어 가는 곳, 먹을거리와 입을거리를 빼고는 없는 게 없는 곳, 바로 화곡동 생활용품 유통단지다.흔히 화곡동 도매시장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상인들이 지난 2006년부터 소매도 겸업하기로 결정, 동대문과 남대문시장에 비해 일반인에게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화곡고가사거리를 중심으로 목동사거리에서 신월IC까지 도로변 상권과 배다리동길 상권이 260여 개 점포가 모여 ‘ㄷ’자로 형성된 화곡동 생활용품 유통단지에는 대형 마트나 인터넷 쇼핑몰, 심지어 천 냥 백화점의 도소매상인들이 몰려든다.= 화곡동 생활용품 유통단지의 상인들은 대부분 전문 도매업자로, 생산 공장과 직거래하기 때문에 유통 마진이 거의 빠져 시중가보다 최소30%에서 최대 70%까지 저렴하다. 생활 잡화가 모이다 보니 중국제와 국내 중소기업 브랜드가 많기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세계 유명 브랜드 제품도 이곳에서 유통된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식기, 밀폐용품, 건강 제품, 완구 및 문구, 자동차 용품, 속옷 및 양말, 화장품, 간단한 전자제품, 스포츠레저 용품, 각종 선물 세트, 와인 및 양주 등이다. 단지를 둘러보는 것만으로 즐거울 뿐만 아니라 여기의 물건들은 일단 특별한 가격임을 생각하면 물건을 고를 수밖에 없다. 실례로 주부들의 로망인 ‘코렐’ 식기세트(30개)는 시중가가 22만 원대인 반면 이곳에서는 5만 원이 저렴한 17만 원대에 팔리고 있다.다른 재래시장과 달리 깔끔하게 정비돼 있고 주차 공간도 넓어 편리하다. 평일에는 도·소매상인들이 붐비므로 일반 소비자는 비교적 한산한 토요일에 쇼핑하는 것이 좋다. 일요일은 단지 전체가 휴무다.취재=이진원 기자 zinone@kbizweek.com사진=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