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서 배우는 지혜 〈하〉

마키아벨리의 주장 중에서 도덕론자들이 특별히 싫어하는 구절이 있다. 바로 ‘존경의 대상이 되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돼라’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이 말 역시 마키아벨리의 원래 의도에서 벗어나 잘못 해석되고 있다.이 말은 신생 국가에서 한시적으로 요구되는 지도자의 덕목에서 언급된 것이다. 마키아벨리의 원래 의도는 ‘존경의 대상이 되는 것과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만, 이 둘 다 동시에 성취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쪽을 선택하라’는 뜻이다.이것은 신생 국가의 국민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신생 국가의 국민들은 원래 변덕스러운 충성심을 보이고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 새로 생겨난 국가이므로 나라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는 기회주의자가 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나라가 처음 생긴 단계에서는 강력한 처벌의 두려움을 증대시켜 혼란을 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다시 말하자면 이런 상황에서는 존경의 대상이 되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여기서 마키아벨리의 천재성이 나타난다. 지도자는 두려움의 대상이 돼야 하지만, 결코 증오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추가적으로 조언하기 때문이다. 군주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국민들에게 겁을 주고 공포심을 심어 주는 것은 군주가 자멸의 길을 걷는 것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 위해 누군가를 처형해야 한다면 정확한 명분과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군주는 곧 증오의 대상이 된다. 특히 군주는 타인의 재산에 손대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마키아벨리는 유명한 구절을 덧붙인다. ‘인간은 아버지의 죽음보다 자기 재산을 빼앗긴 것을 더 못 잊기 때문이다.’아마 마키아벨리의 가르침 중에서 가장 큰 오해를 불러일으킨 구절은 ‘사자의 힘과 여우의 교활함’을 동시에 구비하라는 노골적인 요구일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군주는 여우와 사자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사자는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 반해, 여우는 늑대를 물리칠 수 없기 때문이다. 함정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여우가 될 필요가 있으며, 늑대를 물리치려면 사자가 될 필요가 있다. 여우를 가장 잘 모방하는 자들이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여우다운 기질을 들키지 않아야 한다. 군주는 능숙한 사기꾼이자 위선자여야 한다. 자비롭고 신뢰할 수 있으며 인정 많고 정직하고 경건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유용하다. 하지만 필요할 경우 이것과 정반대로 행동할 준비를 해야 하며 그렇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그러나 이 말 역시 ‘신생 국가의 군주’의 경우에 그러하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 신생 군주의 경우 평민이나 귀족들은 언제나 반역을 꿈꾸게 마련이다. 다른 왕조를 선택할 수도 있고 외국 군대의 힘을 이용해 신생 국가의 군주를 타도할 수도 있다.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헌정했던 로렌초 데 메디치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프랑스 스페인 베네치아공화국 등이 언제든지 선택 가능한 마당에 피렌체 시민들은 ‘신생 국가의 군주’인 로렌초에게 그 어느 때라도 반역을 시도할 수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로렌초가 당면하고 있는 실제 정치의 유동성을 염두에 두고 이런 조언을 한 것이다.마키아벨리의 교훈이 아직도 유효한 이유는, 인간을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현명한 지도자는 이론보다 실전을 더 중요시 여기고, 그 실전의 필요성에 따라 항상 냉철하고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마키아벨리에 의하면 현명한 지도자는 올바른 정책을 고수해야 하지만 ‘필요한 경우’ 올바르지 않게 행동하는 법도 알아야 한다.개인적인 이해타산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대중의 연합체인 국가나 조직을 이끌기 위해 이런 임기응변은 필요불가결한 선택이라고 보았다. 정치 현장과 숱한 권력 투쟁의 상황은 언제나 유동적이었다는 마키아벨리 자신의 정치 경험이 이런 결론으로 유도한 것이다.마키아벨리가 던진 교훈은 21세기의 메디치를 표방하는 현명한 리더들에게 지금도 유효하다. 인수·합병(M&A)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특히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기업 간의 합병이 추진되면서 초래될 수 있는 위기관리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이런 교훈을 남겼다. “정복자는 권력을 장악한 후에는 자신이 해야 할 가혹행위를 결정해 그 모든 것을 단번에 행함으로써 일상적으로 형벌을 가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소심하거나 판단력이 부족해 이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자는 항상 손에 칼을 들고 서 있어야 할 것이다.”위기가 밀어 닥친 상황에서 지도자는 모든 잘못된 문제점을 단숨에 해결하는 행동의 과단성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기관리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한 조언이다. 위기가 닥치면 우매한 대중은 혼란 속에서 갈팡질팡하게 마련이다. 이때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시기적절한 때에 맞춰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해 대중의 혼동과 조직의 유동성을 진정시키는 것이다.시기적절하고 결과를 산출하는 사업상의 조언을 구하고 있는 최고경영자(CEO)들에게도 마키아벨리는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남겼다. 주위에 좋은 참모나 탁월한 견해를 가진 부하 직원을 두고 싶어 하는 것은 모든 CEO들의 바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좋은 참모를 곁에 둘 것인가. 좋은 조언은 어떻게 구할 것인가. 어떻게 아첨꾼을 멀리하고 진실을 말하는 유능한 참모를 곁에 둘 수 있을 것인가.마키아벨리는 말한다. “아첨꾼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은 군주가 진실을 듣더라도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참모의 직언에 화를 내는 CEO는 결국 아첨꾼에게만 곁자리를 내어주게 될 것이다. 직언하던 참모는 입을 다물게 된다. 만약 여기서 논의가 끝났다면 마키아벨리는 일반적인 도덕론자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현실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짚으며 다음 차원의 문제와 해결책을 각각 제시한다.“하지만 만약 누구든지 군주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군주에 대한 존경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현명한 사람들을 신하로 선택해 그들에게만 솔직하게 말하도록 허락해야 한다. 하지만 오직 군주가 그들에게 요청했을 때에만 그렇게 하는 것이지 아무 때나 허락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 군주는 아첨꾼들 사이에서 결국 파멸하거나 상반된 조언으로 인해 자신의 결정을 자주 번복하게 된다.그 결과 군주는 아무런 존경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군주는 항상 귀를 열어 두어야 하지만 다른 자들이 조언해 주고자 할 때가 아니라 자신이 원할 때 조언을 들어야 한다.”마키아벨리는 유배 생활을 마치고 피렌체로 돌아온 메디치 가문의 영주 로렌초에게 ‘군주론’을 헌정했으나 로렌초는 그 책을 읽지 않았다. 마키아벨리의 조언을 무시했던 그는 ‘군주론’을 탐독했던 프랑스의 여왕이 된 딸로 인해 더 유명해졌다.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피렌체의 신생 군주였던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됐지만 정작 이 젊은 군주는 이 책을 읽지 않았다. 대신 그의 딸 카트린 데 메디치(1519~89)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평생 탐독하면서 프랑스의 ‘검은 왕비’로 등극하게 된다. 카트린은 메디치 가문의 딸로서 마키아벨리의 교훈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프랑스의 여왕이 될 수 있었다.“동맹을 맺어가며 정복하고, 군대를 복종하게 만들고, 자신에게 손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되는 자들을 제압해 섬멸시키고, 과거의 제도를 새로운 제도로 교체하고, 엄격하면서도 동시에 부드럽고 관대하고, 인색하지 않게 행동하고…”라는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에 따라 카트린은 프랑스에서 권력과 정치의 성공을 거둔 것이다.21세기 메디치 경영을 꿈꾸는 CEO들에게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협력 업체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경쟁 업체를 일시에 무너뜨리고, 진입 장벽을 높게 쌓아 후발업체들이 우리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하고, 직원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창조적인 회사 분위기를 유지하고, 엄격하면서도 동시에 부드럽고 관대하고 인색하지 않게 행동하고…”라고.최선미·연세대 경영대학 교수김상근·연세대 신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