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오르지 않는 이유

지난해부터 시작된 글로벌 금융 위기는 우리나라 경제에도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거시경제 지표가 갈수록 악화되면서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떨어져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도 투자하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부동산 시장은 건설업계와 직결돼 있어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 건설업계의 위기를 이끈다.이에 따라 정부는 불황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전체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경기 살리기에 힘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부터 재건축 규제 완화책을 비롯해 종합부동산세 및 양도세 등 세금 완화책을 폈고 올해에도 전매 제한 등 각종 규제 완화책을 내놓았다. 기획재정부는 양도세 중과 폐지에 이어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에 대한 투기지역 및 투기과열지구 지정을 해제하기로 했다.이로써 그동안 부동산 시장 3대 규제로 꼽혀 왔던 양도세 중과, 분양가 상한제, 투기지역 등 투기 억제 장치가 모두 풀리게 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시장에는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그동안 집값 오름 현상을 보면 시중금리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져 왔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0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5.25%였던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한 이후 넉 달 만에 2%까지 낮췄다. 이에 따라 주택 담보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91일물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도 지난해 10월 24일 6.18%에서 지난 3월 10일 2.54%로 떨어졌다.2000년대 주택 가격 급등의 원인을 제공을 한 것은 저금리와 금융회사들의 무모한 주택 담보 대출 경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금리와 대출 세일로 돈의 가치는 바닥에 떨어지고 길 잃은 부동 자금을 끌어당긴 것이 부동산이었으며 주택은 그 선봉에 섰다. 소위 강남 등 버블 세븐이라고 하는 곳은 주택 가격이 2~3배 이상 급등했는데 실제 이러한 곳에 대출을 받아 주택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기회의 시장에 적극적인 대출을 일으키며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 정점은 2006년 말로 보면 정확할 것이다.2006년 말 이전에 주택을 마련한 사람들은 주택 가격의 소위 ‘억’소리 나는 상승으로 함박웃음을 지으며 경쟁에서 승리자가 됐다. 반면 금리가 오르기 시작한 2007년 말부터는 강남권을 중심으로 전반적으로 집값이 급격한 하락세를 보였다. 대출 규제로 인해 자금줄이 묶여 있는 데다 높은 금리로 인해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미국의 경우에도 9·11 테러 등에 따라 경기 침체가 심화되자 경기 부양책으로 저금리 정책을 내놓았고 2000년 6.5%였던 기준금리를 2003년 6월 1%까지 인하했다. 이 시기 미국은 초저금리로 인해 주택 가격 상승은 물론 건설 경기까지 활황세를 보였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은 전혀 다르다.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지만 시중에는 돈이 돌지 않고 있다.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 취득·등록세 등 세제 완화도 집값 상승의 요인이다. 세금 부담이 크지 않기 때문에 매수자 입장에서도 집을 사는데 부담이 없고, 매도자 역시 그동안 세 부담 때문에 내놓지 못했던 집을 매도하면서 거래가 활발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종부세뿐만 아니라 양도세 중과까지 폐지됐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하기만 하다.전매 제한 완화 역시 거래를 활발하게 해 집값 오름세에 한몫하는 부분이다. 전매 제한은 수도권 공공택지에서 3~5년, 민간택지에서 1~3년으로 대폭 완화됐다. 사실상 입주가 시작되면 전매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따라서 시세 차익을 노리는 투자 수요가 늘어 거래가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현재 시장은 그렇지 않다.그렇다면 그동안 집값을 끌어올릴 요인들을 다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반응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동산 역사만을 놓고 봐도 집값은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이 같은 등락은 건설 업체들이 공급을 과하게 늘리거나 줄이면서 공급 및 수요 법칙에 따른 영향이 컸고 또한 정부가 시장 상황에 따라 규제를 풀거나 조이면서 발생했다. 하지만 2008년 집값 하락은 이전 양상과는 사뭇 다르다. 전 세계적으로 집값 하락이 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고 금리가 유례없이 낮다는 점도 외환위기 때와 다르다.현재 시장에 지금까지와 다른 요인이 하나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가 그것이다. 현재 부동산 시장 침체의 가장 큰 원인은 금융 위기로 인한 세계적 경기 침체다. 특히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실업 증가와 소득 감소로 유효 수요가 감소하면서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돼 있다. 또한 주식 시장이 바닥을 치면서 여유 자금이 다 묶인 상태이기 때문에 부동산에 투자할 자금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올 상반기에는 바닥을 찍고 하반기부터 시장이 다소 안정적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첫째, 우리나라의 경제 위기를 불러온 미국 경제 위기가 바닥에 닿는 느낌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후 바닥 없는 추락을 거듭해 온 미국 경제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잿빛이다. 하지만 최근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다.최근 발표되는 각종 경제지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최악의 2008년과는 분명 다르다. 지난 3월 17일 미국 상무부는 2월 신규 주택 착공 건수가 전월 대비 22.2%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주택 착공 건수 증가는 8개월 만에 처음이다.지난 3월 23일 다우지수는 7% 가까이 폭등하며 7700선을 단숨에 뛰어넘었다. 미국 재무부가 금융회사 부실자산 처리를 위한 세부 방안을 발표한 데 따른 기대감 때문이다. 이로써 마의 6000대를 헤매던 다우지수는 지난 3월 9일 연중 최저가(6547.05) 대비 19%를 회복하며 바닥 다지기에 성공했다.소비 시장 역시 달라지고 있다. 굳게 닫혀 있던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조금씩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소매 판매가 전월 대비 1% 증가한데 이어 큰 폭의 감소가 예상됐던 2월 소매 판매도 전월 대비 0.1% 하락에 그치는 등 소비 감소세가 진정되고 있는 모습이다. 부동산과 금융, 그리고 소비 부문에서 바닥을 감지하게 하는 긍정적인 신호가 조금씩 들려오고 있다.둘째, 자금이 가장 많이 묶여 있는 강남 시장이 살아날 수 있는 마지막 ‘히든카드’를 정부가 내놓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다 사라졌던 ‘강남3구 투기지역 해제’가 그것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자금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이 강남 3구다. 그런 곳에 자금 유동을 자유롭게 해준다고 한다면 묶여 있던 자금이 돌 수밖에 없다. 지난 1~2월 동안 강동구가 별다른 호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강남 3구보다 집값이 더 오른 이유 역시 일찌감치 투기 지역에서 해제됐기 때문이다.지금까지 강남 3구의 집값은 주변 지역 집값에 연동돼 돌아갔다. 강남권부터 시장이 살아나고 이어 버블 세븐, 버블 세븐은 또 다른 수도권으로 가격 상승이 확산돼 온 것이다. 올 초에 강남권 시장이 살아난 후 분당신도시 집값이 움직였던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요즘 부동산 시장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는 점이다. 앞으로 부동산 시장은 하루아침에 몇 천만 원씩, 많게는 억 단위로 오르는 일을 기대하기 어렵다.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말도 많지만 사실상 주택 공급은 과잉 상태다. 지방뿐만 아니라 수도권에도 미분양이 쌓여 있고, 정부는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임대뿐만 아니라 시프트, 신혼부부 주택 공급 등 다양한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다.집값이 급락과 급등을 거듭하며 심리적 부담감을 주는데다 향후 미래도 불안정한 상황에서 이제는 과거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내 집’이라는 소유욕이 많이 떨어질 수 있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조금 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이제 부동산 시장에서 ‘단타’는 끝났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투자 목적이라면 여유 자금으로 접근하는 것이 생계에도 부담이 덜할 것이다.강남 3구의 투기지역 해제가 기대되고 있지만 투자에는 여전히 신중한 자세가 요구 된다.양지영·내집마련정보사 정보분석실팀장 ygy45@yesap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