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여겨봐야 할 투자지표
흔히 투자의 세계에서는 많은 지표들이 활용된다. 주가수익률(PER: price-earnings ratio)이나 주가순자산배율(PBR: price on book-value ratio) 등 주식 관련 지표에서 거시경제 분석을 위한 것까지 우리는 수많은 지표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세계적인 투자가들마다 이들 지표에 두는 무게도 다르다. 예를 들어 윈저 펀드의 성공적인 운용자였던 존 네프가 일차적으로 주목했던 지표는 PER다. 그는 비타협적으로 저PER주 투자 원칙을 지켰고, 이로 인해 ‘저PER주 투자자’ ‘절대 가치 투자자’란 별칭을 얻기도 했다.현존하는 펀드매니저 중 역발상 투자에 관한 한 가장 빼어난 식견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데이비드 드레먼도 PER가 높은 주식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그는 시장의 유행에서 뒤처져 인기가 없는 주식, 즉 저PER주에서 투자 기회를 발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길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하지만 마젤란 펀드 신화의 주인공이자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피터 린치 이후 최고의 펀드매니저로 인정받고 있는 레그메이슨밸류트러스트의 윌리엄 밀러는 PER에 대해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는 PER가 높았던 기술주들인 아마존, 델컴퓨터 등에 투자해 높은 수익을 거둔 바 있다.이처럼 투자의 세계에서는 같은 지표를 이용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무게를 두는 비중이 다른 경우를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투자자 간의 개인적인 차이도 있지만 어떤 지표도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사실 한 지표만을 활용해 투자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지금까지 있어 왔던 투자 이론과 투자 지표들은 그 효력을 잃고 당장 폐기 처분돼야 할 것이다.펀드 투자에서도 여러 가지 지표가 등장한다. 직접 주식에 투자하는 것처럼 펀드 내에 편입된 종목들의 PER나 자기자본이익률(ROE: Return On Equity)을 보기도 한다. 펀드의 변동성 위험을 측정하기 위해 베타지수 등의 지표를 활용하기도 한다.여러 펀드 관련 지표 중 중요성에 비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회전율’이다. 회전율이 100%란 얘기는 1년 동안 펀드에 편입된 주식을 한 번씩 모두 팔고 다시 사들였다는 얘기다. 회전율이 높을수록 자주 사고팔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주식을 사고파는 비율을 나타내는 이 지수가 왜 펀드 투자에서 중요하게 참고해야 할 기준이 되는 것일까(미리 걱정돼서 얘기하는 것이지만, 회전율 지표를 맹신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완벽한 지표는 없다. 그 지표가 갖는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스스로 무게를 두는 비중을 결정할 뿐이다).1997년 펀드 평가 회사 모닝스타가 회전율과 펀드 수익률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회전율이 낮은 펀드가 높은 펀드보다 투자 성과가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말 기준으로 분석한 데이터에서도 이와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회전율이 낮은 펀드들이 1년, 3년, 5년 기간 모두 수익률이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하지만 현실은 이런 연구 결과와 사뭇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점점 더 회전율이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 복잡계 이론 등 다양한 현대 학문을 투자에 접목해 빼어난 통섭의 능력을 보여주는 애널리스트 마이클 모바신은 ‘미래의 투자’에서 회전율이 높아지는 이유를 두 가지로 지적한다.첫째, 경제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크게 떨어졌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혁신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를 구성하는 미국의 초우량 500대 기업의 평균 수명은 1950년에는 대략 25년에서 35년이었지만 지금은 10~15년으로 줄었다. 기업의 현재와 미래를 보고 투자해야 하는 펀드매니저 입장에선 이런 혁신의 속도는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다. 그만큼 펀드매니저들은 종목 선정에서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둘째, 펀드 평가에 대한 단기화 경향이다. 펀드 산업이 커지면서 함께 성장한 비즈니스 분야가 펀드 평가다. 펀드 평가를 전문으로 하는 펀드 평가 회사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펀드가 설정된 지 한 달 후부터 수익률 순위를 공개한다. 언론에서도 거의 매주 주요 펀드 수익률을 내보내고, 심지어는 한 달 동안 수익률이 높거나 반대로 낮게 나왔다면 그 이유를 보도하기도 한다. 펀드매니저들은 벤치마크 수익률, 우리의 경우에는 코스피지수와 비교해 어느 정도의 성과를 냈는지 평가 받는다. 수익률 평가도 단기화되고 지수와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입장이라면, 단기적으로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펀드 투자자들의 조급증도 한몫한다. 1950년대 미국의 펀드 투자자들의 평균 보유 기간은 15년 이상이었다. 펀드에 가입하면 평균적으로 15년 이상을 유지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2004년 보유 기간은 4년에 불과했다. 국내 사정은 더 심하다. 한 증권사에서 자사의 고객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1~2년 정도 남짓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형 펀드의 보유 기간은 2003~05년 중에는 2년여였지만 2006~07년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한국투자자교육재단이 발간한 ‘2007 펀드 투자자 조사’도 비슷한 결과를 내 놓고 있다. 목돈을 한 번에 투자하는 거치식 투자자들 중에서 15.3%는 6개월 미만으로 투자하고 있거나 그럴 의향을 갖고 있다. 투자 기간을 6개월에서 1년 정도로 잡고 있는 사람들도 27.8%나 됐다. 당연한 얘기지만 펀드 투자자들이 이처럼 단기 투자 행태를 보이면 펀드매니저들도 그에 따라 주식의 사고팔 가능성이 높아지게 돼 있다.모바신의 지적을 요약하면 데이터를 분석하면 회전율이 낮은 펀드가 그렇지 않은 펀드보다 더 좋은 성과를 보이지만, 이와 달리 펀드매니저를 둘러싼 제반 환경은 더욱 단기화돼 회전율을 높이는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그러면 여기서 회전율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 것일까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사실 이것에 대해 똑 부러지는 대답을 구하기는 어렵다. 모바신은 과거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적절한 회전율을 20~100% 사이에 있는 것이 적정하다고 주장한다.여기에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펀드의 스타일이다. 가치주 펀드와 성장주 펀드는 그 운용 스타일이 다를 수밖에 없다. 만일 가치주 펀드에 가입했는데 회전율이 높으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저평가된 종목을 사서 장기 보유하는 게 가치주 펀드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회전율이 높다는 것은 종목을 자주 사고팔았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성장주 펀드는 회전율이 가치주 펀드에 비해 높더라도 괜찮다. 성장주 투자자들은 가치주 투자자들에 비해 다이내믹하게 운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장주 펀드든, 가치주 펀드든 투자자들의 평균 투자 기간이 1년도 안 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시황에 따라 단타로 치고 빠지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이 정도의 투자 기간은 의미를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다 장기적인 안목과 호흡이 필요하다.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국경제TV, 이코노미스트 등 경제 전문 매체의 재테크 담당 기자를 거쳐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로 재직 중이다. 각종 칼럼 집필, 강의, 라디오·TV 출연 등을 통해 자타가 공인하는 금융 콘텐츠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부자들의 개인 도서관’, ‘이채원의 가치투자(공저)’ 등을 펴냈으며 최근 십수 년 동안 연구한 부자들의 생각과 삶을 담은 ‘부자들의 생각을 읽는다’를 출간했다.이상건·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사 lsggg@miraeasset.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