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창출의 대안 ‘사회적기업’
서울 광진구 광장동의 한 3층 건물의 지하에선 달콤한 과자 냄새가 풍겨 올랐다. 포춘 쿠키를 만드는 나눔사회의 공장이었다. 과자 안에 운세를 담은 쪽지를 넣어 둔 포춘 쿠키는 미국에선 일반화된 상품이지만 한국에선 그렇게 흔한 과자가 아니다. 만드는 업체도 드물고 유통망도 넓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홍보용으로 찾는 기업과 업체가 늘고 있다고 나눔사회의 황정애 이사는 말한다. 제품에 대한 홍보만 제대로 이뤄지면 더 많은 고객들이 찾을 것이란 기대가 크다는 설명이다.하지만 정작 나눔사회에서 흥미로운 것은 포춘 쿠키라는 제품보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면면이다. 40여 명의 직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고령자들이고 30% 이상이 여성 가장들이다. 다시 말해 80% 이상이 고용 취약 계층에 속하는 것이다. 게다가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불구하고 수익의 20%는 꼬박꼬박 빈곤층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황 이사는 “누구나 일할 공간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 취약 계층을 많이 고용하고 있다”며 “지난해 정부로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은 후 세금이 20%가량 감면됐다”고 말했다.사회적기업이 뜨고 있다. 정부의 육성책이 본격화되면서부터다. 정부는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을 제정하고 다양한 지원책을 실시하고 있다. 인증제를 도입해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은 기업에 경영 지원, 시설비 지원, 공공기관 우선 구매, 조세 감면, 재정 지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인증을 신청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현재까지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은 곳은 2007년 52개사, 2008년 112개사 등 모두 218개사다.사실 사회적기업은 생소한 개념이다. 사회적기업연구원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6%만이 사회적기업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서구 선진국에서 사회적기업은 역사도 오래됐고 이미 일반화된 기업 유형 중 하나다. 영국의 경우 200년 역사를 통해 5만5000여 개의 사회적기업이 활동하고 있으며 유럽 전역으로 보면 약 900만 명이 사회적기업에 종사하고 있다.사회적기업육성법에 따르면 사회적기업은 ‘취약 계층에 사회 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해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 활동을 수행하는 기업’이다. 한마디로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파는 기업’이란 얘기다. 일반적인 기업이 수익을 내기 위한 영리 활동을 1차적인 과제로 삼는 반면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목적 실현을 최우선 과제로 여긴다.사회적 목적이 다양한 만큼 사회적기업에는 여러 가지 유형이 있다. 취약 계층에 일자리를 주는 ‘일자리 제공형’, 사회에 유익한 서비스를 실행하는 ‘사회 서비스 제공형’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사회적기업 가운데 가장 많은 유형은 일자리 제공형이다. 한국의 사회적기업이 외환위기 시절 시작된 공공근로 사업이 기원인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사회적기업의 시작이 취약 계층에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었던 만큼 사회적기업 육성 사업의 일차적인 성과 지표는 고용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 있어서 한국의 사회적기업은 세계 평균 수준의 양호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사회적기업 1개의 고용 인원은 세계 평균 수준인 30명가량에 이른다. 사회적기업의 고용 효과는 일반기업의 2.5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용의 질도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취약 계층에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 빈곤을 퇴출한다는 사회적기업의 꿈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사회적기업이 사회적 목적 실현을 우선 과제로 삼고 있기는 하더라도 본질이 기업인 이상 이익을 남겨야 한다. 자생력과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회적기업 모델이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되기 위해서라도 경쟁력 확보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다. 사회적기업 대부분이 영세하기 때문에 경쟁력이 미흡한 것이다. 정부와 전문가들이 사회적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시급하다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조영복 사회적기업연구원장은 “사회적기업 육성의 핵심은 경쟁력 강화이며 정부와 민간 기업 등 후원자들의 초점도 이 부문에 맞춰져야 한다”며 “경영 능력 향상, 기업가 정신 고취 등 혁신 마인드를 심어줘야 하며 사회적기업가들은 정부의 지원에 기대는 수동적 차원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실제로 사회적기업가를 양성하는 교육 프로그램이 확산되고 있다. 노동부가 주관하고 SK그룹이 후원하는 사회적기업가 양성 프로그램이 2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국에서 19개의 과정이 문을 열었으며 600여 명이 사회적기업가 과정을 이수했다. 올해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정부 주도로 진행될 예정이다.사회적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인 곳은 정부와 SK그룹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사회적기업 육성에 뜻을 같이하기로 한 기업과 공사, 전문가 단체들이 부쩍 늘고 있다. 이런 트렌드는 지난 3월 10일 있었던 ‘사회적기업 지원 협약식’에서 절정을 이뤘다. 포스코 강원랜드 한국토지공사 SK에너지 현대자동차 한국석유공사 롯데백화점 한국노총 우리은행 등 43개 기업과 전문가 단체가 모여 사회적기업을 지원하기로 노동부와 약속한 것이다.대학과 민간단체에서도 사회적기업가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다. 경원대는 이번 학기부터 경영대학에 ‘사회적기업학과’ 석사과정을 신설했다. 특히 신입생 20명 전원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도 약속해 주목을 받았다.공모전도 활발하게 실시되고 있다. 한국쏘시얼벤처대회사무국이 주관하는 ‘한국쏘시얼벤처대회’, 호서대 산학협력단의 ‘사회적기업 아이디어 공모전’, 사회적기업연구원의 ‘청년 사회적기업 창업 대회’, 희망제작소의 ‘사회적기업 아이디어 대회’, 삼선장학문화재단의 ‘청년 사회적기업 창업 공모전’ 등이 대표적이다.사회적기업의 미래는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환경과 인권 등 사회적인 이슈에 기여하는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윤리적 소비자가 점차 늘고 있어 수요가 커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윤리적 소비자의 증가율은 일반 소비자의 그것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영리를 1차적 목적으로 하지는 않지만 일반 대기업에 못지않은 규모를 자랑하는 사회적기업이 나올 수 있다고 예상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사회적기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회적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는 게 일반적이란 설명이다. 한두 번 위기를 겪고, 사회 안전망에 대한 고민이 높아질수록 사회적 일자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게 마련이며 이를 염두에 두고 창업을 하는 사회적기업가도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조영복 사회적기업연구원장은 “사회적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친사회적기업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며 “장애인이나 고령자가 만들었다면 뭔가 하자가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벗고 그들이 만든 제품을 사주는 풍토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며 사회적기업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을 당부했다.변형주 기자 hjb@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