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잡 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의 전도사다. 10년 전 ‘금 모으기 운동’처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어떤 강연에서는 “밥을 할 때마다 쌀 한 줌씩을 부뚜막의 ‘절미통(節米桶)’에 넣어 가난한 사람을 도왔던 우리네 정신의 발로”라고 했다. 다른 곳에선 “잡 셰어링은 사회 도덕률이나 시대정신이 돼야 한다”고까지 말했다.경제장관이 이렇게 발 벗고 나서자 공기업들은 무조건 잡 셰어링에 적극적이다. 주로 청년 인턴 채용이지만 일부 공기업은 임원 급여나 직원 성과급을 반납해 직원을 더 뽑고 있다. 민간 기업에선 고용 유지를 선택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정부가 근로자 임금의 최고 4분의 3까지 보조하는 고용 유지 지원금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해서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얻고 실업자가 될 뻔했던 이들이 직장 생활을 계속할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잡 셰어링 붐을 두고 “일본 기업조차 수만 명을 해고하는 위기 상황에서 흔하지 않은 예”라고 했다.하지만 지난주 윤 장관을 연사로 초청해 열린 한경 밀레니엄 포럼에서는 잡 셰어링을 둘러싼 정부와 재계의 미묘한 시각차가 나타났다. 이날 포럼에는 윤 장관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듯 회원들과 취재진이 많이 몰리면서 평소보다 20석 늘려 준비한 좌석이 금방 다 차 버렸다. 이 때문에 일부 회원은 간이의자에 앉아 윤 장관의 강연을 듣기도 했다. 오전 7시 정각에 행사장으로 들어온 윤 장관은 포럼 회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면서 “멤버가 정말 쟁쟁하다”고 평가했다.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윤 장관의 기조연설이 끝나자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금춘수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사장은 “기업이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성과가 낮은 직원을 상시적으로 구조조정하는 것은 정부가 권장하는 잡 셰어링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여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잡 셰어링에 상당한 애착을 갖고 있는 윤 장관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완곡하게 재계의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다.금 사장은 이 같은 발언에 앞서 “최근 300명의 임원이 성과급 전부와 통상임금의 10%를 반납, 이 돈으로 인턴 300명을 채용하는 ‘1임원 1인턴 운동’을 펴고 있다”며 “한화 여수공장도 기존 근로자들이 연장근로를 반납하고 신입 사원을 더 뽑았다”고 설명했다. 한화그룹이 잡 셰어링 취지에 공감하며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일단 주지시킨 것이다. 그러면서도 금 사장은 사회적 압력에 떠밀려 경기 침체기에 적절한 구조조정을 하지 못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도 있다는 재계 일각의 우려를 분명하게 전했다.이에 대해 윤 장관은 “상시적 구조조정과 잡 셰어링 사이에 갈등이 많고 참 어려울 것 같다”며 “정부는 절대로 강요하지 않는다. 인턴 채용이나 고용 유지를 많이 해 주기를 바라지만 기업이 견뎌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하면 된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구조조정은 구조조정대로 하면서 잡 셰어링은 그 나름대로 하면 된다”며 “세상만사 한 줄로만 가지 않는다. 모노레일이 아니고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잡 셰어링을 경제장관으로서 자신의 승부수로 삼고 싶어 하는 윤 장관으로선 마치 ‘힘들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답한 것인데, 아마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윤 장관은 “기업이 필요에 의해 한두 사람 구조조정하는 것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며 “내보낼 사람은 내보내고 그만큼 필요한 인원은 더 뽑고 그렇게 해서 전체적으로 인력을 늘려나갔느냐를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인턴 채용과 고용 유지를 위주로 한 사회 전반의 잡 셰어링 열풍이 적기에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 기업들엔 다소 부담이 된다는 게 재계의 시각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윤 장관은 이날 “1분기까지는 금융 실물 양쪽에서 아직 부실이 현재화돼 나타나지는 않고 있지만 2분기부터는 이게 드러나면서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야말로 ‘뼈를 깎아야 하는’ 구조조정 국면이 찾아왔을 때 정부가 주장하는 잡 셰어링과 살기 위해 불가피한 ‘잡 컷(감원)’ 사이에서 과연 기업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