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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변하면 경제 행태가 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1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어떨까. ‘시대’라고 할 만큼 오랜 시간일까. 절대적 시간으로 1년은 결코 길다고 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그 사이 글로벌 금융 위기가 나타났고 국내 경제도 급격히 하강했다면, 그래서 지금도 좀체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계곡 속에 우리가 처해 있다면 지난해는 완전히 다른 시대일 수 있다.최근 통계청이 내놓은 새로운 소비 기류에 대한 ‘가공 자료’는 이 점에서 시사점이 크다. 통계청은 기본적으로 각종 기초 통계치를 내놓는 것이 주업무인데, 가욋일처럼 종종 트렌드 분석도 하고 있다. ‘2009년 블루슈머10’이 그것이다. 블루슈머란 블루오션(blue ocean)과 컨슈머(consumer)를 합친 조어로 ‘신소비 집단’ ‘새로운 소비자’라는 의미로 쓰였다.내용 하나하나를 뜯어보면 다소 무리한 논리나 분류도 없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현장의 실물경제를 얼마만큼 제대로 반영했는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도 있다. 그러나 국가의 공식 통계 기관이 조사한 통계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한번쯤 곱씹어 볼 만한 내용이 적지 않다. ‘경제 위기 한가운데에 선 우리가 어떤 소비 행태를 보이는지’ 알 수 있는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의 미래상을 가늠하게 하는 작은 창도 제공해 준다. 통계청은 꼭 1년 전에도 ‘2008 블루슈머7’이라는 자료를 통해 신소비의 경향을 분석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계속되는 경제 조류는 무엇이며, 그 사이 새로 부각되거나 쇠퇴해 버린 유행은 무엇일까. 당장 하루하루가 급한 이 급변기에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 바로 그런 큰 흐름이다.변한 것부터 보자. 통계청은 올해의 블루슈머에 ‘똑똑한 지갑족(smart consumer)’과 ‘백수 탈출’이라는 카테고리를 넣었다. 지금 신소비자로 규정하며 미래 스타일의 소비자를 가려낸 것이다. 경제 위기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2008년 4분기 국내의 실질 월평균 가구 소득은 302만3000원, 전년 동기보다 2.1% 줄었다. 내구재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판매량이 10.3% 줄 정도로 소비는 얼어붙었다. 경제 위기가 시작되면서 소득이 줄어들고 지출도 신중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각종 대여업과 온라인 중고 장터류가 주목받을 것이라고 통계청은 전망했다.그렇다면 1년 전 분석은 어땠을까. 통계청은 ‘부자처럼 2030(almost rich)’이라는 카테고리를 제시했었다. 당시 30대의 수입차 보유율이 40대를 앞질렀고 20대의 외제차 보유율도 꾸준히 늘어난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수입 자동차 리스 상품, 대중화된 명품 상품, 명품 의류가 유망 업종이라는 전망도 내놨었다. 고급 소비의 주체가 20대와 30대라는 것이었는데 돌아보면 쓴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지금 30대 취업자가 1999년 6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저 수준이고 ‘삼초땡(30대 초반에 명예퇴직)’이란 말까지 나오는 판이다. 1년 만에 경제 여건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국가 기관이라고 해도 근시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동시에 보여준 셈이다.지난해만 하더라도 ‘여행과 레저를 즐기는 장년층’이란 블루슈머가 새 유행으로 꼽혔으나 올해는 ‘내 나라 여행족’으로 바뀐 대목도 마찬가지다. 지난해만 해도 장년층을 겨냥한 미용 성형, 실버 여행, 오페라 등이 새롭게 떠오른다고 했지만 올해는 저가 국내 여행 상품이 새 소비 대상으로 부각될 정도로 상황은 급변했다.큰 흐름에서 볼 때 연속성이 있는 것도 물론 있다. 앞으로 ‘거울 보는 남자’가 늘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남성용 화장품과 액세서리, 몸매 보정 속옷이 유망한 분야라고 제시했다. 최근 ‘꽃남’이라는 유행어를 보거나 남자 청소년들의 고민 중 외모가 3위(9.9%)라는 통계를 보면 그럴듯하다. 이와 유사한 내용으로 지난해에는 ‘외동이 황금시대’라며 어린이 전용 헬스 기구점, 감성 놀이 학교, 영어 유치원 등이 유망 산업이라고 내놓았었다.사회현상과 경제 흐름을 따로 볼 수 없게 된 것부터가 오래전 얘기인지도 모른다. 달리 보면 현대에서 경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게 없으니, 경제 현상이 아닌 것도 없다. 통계청의 분석이 맞느니 틀렸느니 시비할 필요는 없을지 모른다. 통계청의 블루슈머는 큰 흐름을 읽어나가는 재밋거리 정도로 보면 된다.허원순·한국경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