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재산업화 드라이브

“영국의 미래를 위해선 금융공학 대신 ‘진짜’ 공학에 기반한 경제가 필요하다.”(피터 만델슨 영국 산업장관)금융 위기 여파로 제2차 세계대전 후 사상 최악의 경기 침체 상황에 빠져들고 있는 영국에서 ‘재(再)산업화(reindustrialization)’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번 금융 위기로 영국 경제 전반이 흔들리자 제조업을 육성해 금융업에 편중된 경제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전 세계에 산업혁명을 촉발했던 영국이 ‘이제는 아무것도 만들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시달리고 있다”며 재산업화가 금융 위기 후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핵심이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종주국’이지만 지금은 이 같은 명성이 무색하다.1980년대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금융업 육성 위주의 정책을 펼친 후 영국은 ‘씨티 오브 런던’ 등을 중심으로 금융 산업이 급성장했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제조업의 비중은 크게 위축됐다. 2007년 현재 영국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3%다. 이 같은 비중은 1950년대의 40%, 1970년대의 33%에 비하면 크게 줄어들었다. 제조업의 GDP 비중이 22% 수준인 일본이나 독일보다 훨씬 낮다. 1950년대 800만 명, 1980년대 700만 명에 이르던 제조업 종사자 수도 지금은 300만 명으로 대폭 줄었다. 1980년대 300만 명에 불과했던 금융 산업 종사자 수가 650만 명으로 불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영국의 제조업 규모는 여전히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에 이어 전 세계 6위다. 그러나 전 세계 산업 생산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3.8%에 불과하다. 세계 최대 제조업 국가로 전 세계 산업 생산의 30%를 담당했던 1850년대와 비교하면 엄청난 격차다.그러나 최근 영국에선 제조업에 대한 예찬론과 함께 구체적인 육성 방안에 대한 요구가 고개를 들고 있다. 피터 만델슨 영국 산업장관이 영국 경제의 미래를 위해선 고도 기술의 제조업을 육성해 금융업과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야당 지도자들과 산업계 지도자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리처드 램버트 영국산업연맹(CBI) 사무총장은 “제조업은 런던에만 집중돼 있는 금융 산업과 달리 보다 폭넓은 지역과 경제 전반에서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 전체의 응집력도 높이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대표적 제조업체 중 하나인 롤스로이스(자동차 및 우주·항공기 엔진 업체)의 존 로즈 최고경영자(CEO)는 “제조업은 기술 확산에도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례로 핵공학 기술은 일단 개발되면 경제 전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워릭대 쿠마르 바타차리야 교수는 “태양광 전기자동차와 같은 그린 테크놀로지 분야에서 많은 중소기업들이 생겨날 것”이라며 “향후 10년간 영국 경제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18~20%까지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물론 경기 침체 여파로 제조업도 금융업 못지않게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제품 주문과 판매가 급감하고 신용 경색으로 인해 은행에서 돈을 빌려 쓰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대규모 해고도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 달러화와 유로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한 파운드화의 약세는 제조업체의 해외 수출에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융 분야로만 몰려갔던 인재들이 갈 곳을 잃으면서 유능한 인재를 채용할 수 있는 기회가 늘었다는 점도 제조업체들에 희망을 주고 있다.그러나 영국의 이 같은 ‘재산업화’ 움직임에 대해 회의적 시각도 있다. 이러한 입장의 경제학자들은 ‘제조업은 특별하다’는 논리에 의구심을 표시한다. 카디프 경영대학원의 패트릭 민포드 교수는 “영국 경제에서 얼마만큼의 제조업 비중이 적당한지는 정치인이나 어느 누가 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며 “이는 토지와 노동력의 질, 특수한 기술력 등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어떻게 분포돼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전 영국중앙은행(BOE)의 통화정책위원회 멤버이기도 했던 옥스퍼드대 너필드칼리지의 스테판 니켈 교수는 “영국이 독일과 같은 (제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갖는다고 해서 얼마나 혜택을 얻을지는 불확실하다”고 비판했다.박성완·한국경제 국제부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