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vs 발렌베리 ‘공통점과 차이점’

지난 8월 26일 오전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 SK그룹 오너 가문의 주요 인물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자회사를 움직이는 주요 경영진과 박태준 이수성 전 총리, 김각중 전 전경련 회장과 김상하 전 상공회의소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등 낯익은 정·재계 인사들도 속속 도착했다. 곧이어 고(故) 최종현 회장의 10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이날은 최태원 회장이 SK그룹의 경영권을 물려받은 지 꼭 10년째가 되는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10년은 평탄한 비단길과는 거리가 먼 파란의 연속이었다. 평소 “기업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며 경영은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맞다”고 입버릇처럼 강조해 온 최종현 회장은 생전에 사전 지분 정리를 통해 2세 경영의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적은 지분과 누적된 부실은 두고두고 경영권을 갓 손에 쥔 최태원 회장을 생존의 시험대에 오르게 했다. 2003년 ‘SK글로벌 사건’과 ‘소버린 사태’는 위기의 정점이자 뉴 SK의 출발점이 됐다. 이날 추모식에서 손길승 전 회장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에서 식은땀이 난다”고 회고하기도 했다.그로부터 5년이 지난 지금 SK에서 당시의 긴박했던 위기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최 회장은 재계를 깜짝 놀라게 한 지배 구조 개혁과 직접 연탄을 나르는 적극적인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SK그룹을 새로운 대기업 모델의 선두주자로 탈바꿈시켰다. 한때 한국 재벌 체제를 향한 비난의 표적이던 SK가 다양한 이해 관계자들의 사랑을 받는 ‘한국의 발렌베리’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SK와 발렌베리는 의외로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 발렌베리가(家)는 엄격한 자녀 교육으로도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검소함은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됐다. 가문의 엄청난 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매우 검소하게 길러졌다. 여름에는 정원의 잡초를 뽑고 가을이면 갈퀴질을 해야 했고 형이나 언니의 옷을 물려 입는 것은 기본이었다. 남자 아이들은 스웨덴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해야만 했다. 이는 거친 바다 생활이 강인한 정신력과 넓은 시야를 길러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최종현 회장의 자녀 교육법도 독특했다. 그는 아들인 최태원 회장에게 ‘기업이란 무엇인가’ ‘그룹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화두를 던지고 토론하기를 즐겼다. 독립심과 책임감을 강조했기 때문에 최태원 회장은 미국 유학 시절에도 재벌 2세답지 않게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최종현 회장은 아들이 밑바닥에서부터 일을 배우도록 했다. 그래서 최태원 회장은 미국에서 유학을 마친 후 실리콘 밸리에 있는 컴퓨터 회사에 입사해 1년 반 동안 차를 몰고 컴퓨터를 팔러 다녔다. 이런 경험은 나중에 그룹경영에 큰 밑거름이 됐다.형제 경영도 SK와 발렌베리의 공통점이다. 발렌베리는 창업자인 앙드레 오스카 이후 2세 때부터 그룹의 최상층부에서부터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2명 이상의 리더를 두는 체제를 정착시켰다. 때로는 이복형제가, 때로는 사촌형제가 ‘투톱’을 맡아 기업을 이끌어 나갔다. 현재 발렌베리를 5대째 이끌고 있는 것도 사촌형제 간인 야콥 발렌베리 인베스터 회장과 마쿠스 발렌베리 SEB 회장이다.오늘의 SK그룹을 만든 것도 바로 ‘형제 경영’이다. SK그룹의 역사는 창업자인 최종건 회장이 1953년 수원에 선경직물을 세우면서 시작됐다. 여기에 10여 년간의 미국 유학을 마친 동생 최종현 회장이 선경직물 부사장으로 1962년 합류했다. 저돌적인 스타일의 최종건 회장과 유학파인 최종현 회장 형제는 남다른 우애로 소규모 직물 공장에 불과하던 SK를 대기업 반열로 끌어올렸다. 그러다 1973년 최종건 회장이 48세의 나이로 타계하면서 동생인 최종현 회장이 회장 자리를 이어받았다. 1998년 최종현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는 SK그룹의 최대 위기였다. 이때 사촌형제들이 모여 최종현 회장의 장남인 최태원 회장을 새로운 회장으로 추대했다. 현재 SK그룹에는 최태원 회장과 동생인 최재원 SK E&S 부회장, 그리고 최종건 회장의 차남이자 가장 연장자인 최신원 SKC 회장과 동생인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 등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른바 사촌형제들의 ‘화합 경영’이다.◇ = 발렌베리는 ‘재벌’이면서도 ‘재벌’이 아니다. 발렌베리는 철저하게 개별 기업의 독립 경영과 투명 경영을 원칙으로 한다. 각 자회사들은 독립된 이사회와 투자자가 있으며 서로 출자 지분으로 엮여 있지도 않다. 발렌베리가 소유하고 있는 기업들 사이에는 막연한 연대 의식만 있을 뿐이다. 이들은 기업명에 똑같은 이름을 쓰지도 않으며 통일된 상징물도 없다.SK도 2004년 뉴 SK 추진과 함께 기존 재벌 체제와의 결별을 선언했다. SK그룹의 ‘경영 바이블’인 SKMS(SK경영시스템)는 그룹의 개념을 ‘경영 능력과 생존 기반을 갖추고 스스로의 필요와 판단에 따라 SKMS에 근간한 기업 문화와 브랜드 등을 공유하는 기업 경영에 합의한 기업들로 구성되는 것’이라고 새롭게 못 박았다. 핵심은 기업 문화와 브랜드 공유다. 독립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SK’라는 엄브렐러 브랜드를 함께 쓰면서 시너지를 살려 나간다는 것이다. 똑같이 투명 경영과 독립 경영을 지향하면서도 발렌베리 모델과는 구별되는 부분이다. SK그룹은 이를 ‘따로 또 같이’ 경영이라고 표현한다. = 발렌베리가 150년 동안 일군 부의 대부분을 3개의 발렌베리재단이 소유하고 있다. 각 세대마다 사재를 출연해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주회사 인베스터의 최대 주주이자 스웨덴의 과학과 기술 발전의 최대 후원자다. 규모가 가장 큰 크누트앤앨리스발렌베리재단은 자산 규모가 4조 원이 훨씬 넘는다.1974년 고 최종현 회장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한국고등교육재단은 ‘한국의 발렌베리재단’이라고 할만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에 불과했던 당시에 해외 유학 자금을 박사학위를 받을 때까지 아무 조건 없이 지원했다.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키운다는 뜻에서 재단 명칭을 ‘SK재단’이나 ‘최종현재단’이 아니라 ‘한국고등교육재단’으로 지었다. 고 최 전 회장은 재단 설립과 함께 충북 충주의 헐벗은 산을 사들여 가래나무 150만 그루를 심었다. 30년 후 나무가 자라면 목재를 생산해 장학 사업의 종자돈을 삼겠다는 원대한 구상이었다. 30여 년 전 심은 나무는 이제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재단이 지금까지 키워낸 박사만 해도 460여 명에 이른다. 지난 2006년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장학 사업에 한 해 동안 108억 원을 썼다. 국내에서 순수 장학재단으로 이보다 규모가 큰 곳은 지난 2000년 설립된 ‘관정 이종환 교육재단(연 사업비 150억 원)’ 한 곳뿐이다. 하지만 34년 역사를 지닌 한국고등교육재단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