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 디자이너 권재혁·조수정 부부

디자인이 곧 그 상품의 가치가 된 지 오래다. 이는 볼펜과 노트 수첩 다이어리 등의 문구류도 마찬가지다. 잘 쓸 수 있는 ‘기능성’뿐만 아니라 쓰는 이의 감성까지 충족시킬 수 있는 ‘디자인’에 주목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래서 디자인 문구류들은 일반 문구류들에 비해 비싸다고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찾는 이들이 많아 그 시장성이 크다.그중에서도 디자인 문구 브랜드 ‘공책(O-check)’은 특히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심플한 디자인에 담아 단순히 예쁘고 세련되기만 한 게 아니라 따뜻하고 소박한 느낌까지 전달해 주는 제품들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공책(O-check)’을 이끌어 가는 쌍두마차는 바로 권재혁 대표와 디자이너인 조수정 실장 부부다. 지금이야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서도 인정받는 문구 디자이너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애초에 문구 디자이너가 될 생각은 없었다는 두 사람이다. “원래 우리 둘 다 의상 디자인을 전공했거든요. 이렇게 문구 디자인을 하게 될 줄은 몰랐죠.(웃음)”(권재혁)10여 년 전, 소개팅을 통해 만난 두 사람은 모두 의상 디자인에 꿈을 키워가고 재능을 인정받고 있던 신진 디자이너들이었다. “당시 저는 의류 기업인 오브제에서 근무하고 있었고 남편은 한창 패션 공모전 등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고 있던 젊은 디자이너였어요.”(조수정) 여느 디자이너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색깔을 나타낼 수 있는 패션 디자인 브랜드를 꿈꾸던 두 사람이 디자인 문구 브랜드인 ‘공책(O-check)’을 창업하게 된 건 우연한 기회였다. “2000년에 이대 앞 한 쇼핑센터에서 창업 프로젝트를 주최했는데 거기에 참여해 의류 소품 액세서리 등을 판매할 수 있는 숍을 무료로 제공받게 됐죠. 평생 의상 디자인을 하며 살 테니까 중간에 재미있는 일을 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참여했어요.”(권재혁)“때마침 저는 이직을 준비하던 시기였고 남편도 막 패션 디자인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터라 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죠.”(조수정)두 사람이 합작해 만든 디자인 문구류들은 기존에 없는 독특한 것들뿐이었다. 우유팩 편지지, 우유팩 달력에서부터 유리병 안에 담긴 편지지, 비스킷 모양의 덮개 안에 담긴 포스트잇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 감각적인 디자인을 입은 ‘공책(O-check)’의 문구류들은 점점 멋과 시각적 감성에 민감한 이대생들의 입소문을 타게 됐고 그 결과 1년도 안돼 대형 문고에까지 입점하게 돼 본격적인 디자인 문구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창업을 즈음해 결혼했죠. 창업이라고는 하지만 두 사람 모두 별로 가진 돈은 없었어요.”(권재혁) “제 퇴직금과 남편의 공모전 대상 수상금 중에서 쓰고 남은 돈을 합쳐보니 350만 원 정도 되더군요.(웃음) 그게 우리의 창업 자금인 셈이에요.”(조수정)창업 프로젝트에 참여해 무료로 숍을 분양받긴 했지만 본격적인 사업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자본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돼 있지 못했던 터라 이렇다 할 판로도 없었다. 결국 디자인에서 포장, 유통, 판매에 이르기까지 오롯이 두 사람이서 다 해내야만 했다. 작은 창고 같은 사무실에서 밤새워 포장하고 스쿠터에 박스를 싣고 판매하러 다니곤 했다.다행히 ‘공책(O-check)’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디자인 문구류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느는 것과 함께 점점 더 성장하게 됐고 외국 디자인 페어에 참여하며 좋은 반응을 얻어 유럽 및 일본 등지로 수출까지 하게 됐다. 여느 문구 브랜드들처럼 하나의 캐릭터, 하나의 히트 제품을 탄생시키는 데 주력하지 않고 볼펜 하나, 노트 한 권에 이르기까지 어떤 제품이든지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공책(O-check)만의 감성이 묻어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쓴 결과다. 덕분에 작년 한 해 매출만도 약 25억 원에 달한다. 그중 수출이 30% 정도다. 벌써부터 국내는 물론 일본 시장에서도 ‘공책(O-check)’의 카피 디자인이 나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 “아무래도 같은 동양권이다 보니 일본 쪽 반응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아요. 아기자기하면서도 심플하고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공책(O-check)의 디자인을 많이 좋아들 해 주시더라고요.”(권재혁)“공책(O-check)의 ‘공(O)’은 여백을 뜻해요. 공책의 상품들은 그 자체로 완성품인 게 아니라 쓰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져 비로소 완성품이 된다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죠. 그러다 보니 똑같은 상품이라고 해도 쓰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단 하나의 오리지널 제품으로 변신한다는 점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된 이유인 것 같아요.”(조수정)회사가 성장하면서 두 사람의 일은 점점 더 많아졌다. 특히 수출까지 하다 보니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경영에 집중해야만 했다. “결국 아내에게 디자인을 맡기고 제가 경영을 맡을 수밖에 없었죠.”(권재혁)“그래서 남편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요. 디자인에 대한 열정은 저 못지않은 사람인데 디자인 외적인 일에 몰두하게 해서.”(조수정)하지만 여전히 공책(O-check)의 디자인은 두 사람의 의견이 반영된 두 사람의 합작품이라고 한다. “남편과 저의 디자인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조금 달라요. 남편의 디자인이 조금 더 현실적이라면 제 디자인은 좀 더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래서 공책(O-check)의 디자인은 이상과 현실을 결합한 두 사람의 합작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조수정)몇 년 전부터는 평소 두 사람이 꿈꿔 왔던 디자인의 실현을 위해 ‘spring come, rain fall’로 회사명을 바꾸고 문구 브랜드인 ‘공책(O-check)’과 함께 리빙 디자인 브랜드인 ‘스프링컴 레인폴’의 이름으로 가구에서부터 패브릭, 생활 소품에 이르는 다양한 디자인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덕분에 누구 한 사람 할 것 없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건 당연지사다. 두 사람의 일상은 이미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다. 거의 하루 24시간을 붙어 있는 셈이다. 두 사람만이 아니다. 두 사람이 있는 곳에는 아빠와 엄마를 꼭 절반씩 빼어 닮은, 이제 일곱 살 된 아들까지 함께 있다. “그래서 일하다 부딪치는 부분이 있으면 그게 곧 사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그만큼 서로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의지할 수 있어서 너무 좋죠.”(조수정) “꿈이요? 우리가 만드는 디자인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한 그러면서도 지금까지처럼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도록 소박하게 살고 싶습니다.”(권재혁) 요란하고 거창하고 화려한 세상이 아닌 사람 냄새,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따뜻한 삶을 채울 수 있는 공책을 만들어 가는 이들 부부의 다음 페이지가 기대되는 이유다.권재혁(오른쪽) 2000년 한성대 의상학과 졸업. 대학 졸업. 남성복 디자이너로 근무. o-check design graphics 설립. 2007년 spring come, rain fall 법인 대표(현).조수정 오브제, 오즈세컨, 쌈지 비주얼 머천다이저 근무. 2000년 권재혁 대표와 함께 o-check design graphics 설립. spring come, rain fall 디자인 실장(현).김성주·자유기고가 helieta@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