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 고급 두뇌의 ‘아이 러브 코리아’
여의도에 중국인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해서 공장이나 식당에서 단순 노동 일을 할 것이라는 추측은 시대를 못 읽는 편견이다. 중국 경제의 위상이 높아지고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의 규모가 커지면서 학력이나 연봉 수준에서 국내 인재들에게 뒤처지지 않는 ‘고급 인력’들이 바로 그들이다.여의도 한복판에 있는 한화증권에 가면 이들 중국인 인재들을 ‘단체로’ 만날 수 있다. 리서치본부 내 김위, 반영욱, 마요곤, 김화 연구원 등 EM분석팀 중국담당 애널리스트들이 바로 그들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리서치본부는 투자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증권사 내의 ‘머리’에 해당하는 조직이다. 조용찬 EM분석팀 중국담당 부장은 “팀원 7명중 4명이 중국인”이라며 “최근 이머징 시장에 대한 공략을 강화하고 있는 글로벌 전략에 따라 채용된 이들 모두가 석·박사급 인재”라고 설명했다.이 중 EM팀 조직 단계에서부터 함께해 온 김위 연구원은 “전공은 무역이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금융업의 비전이 높아보였다”며 “그간 국내 기업에서 일한 경력을 살려 중국의 기업과 산업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석사 출신인 그는 이미 몇몇 국내 기업을 거쳐 한화증권에 터를 잡았다.반영욱 연구원은 중국 베이화대와 한국 연세대에서 회계를 전공했다. 유명 회계법인 등에서 인턴사원을 거쳐 한화증권에 입사했다. 반 연구원은 “금융업이 역동적이라고 느꼈다”며 “전공인 회계학을 살려 한·중 간 기업 인수·합병(M&A)에 특화된 인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마요곤 연구원은 중국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경희대 경영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입사한 지 한 달여 됐고 한국말도 서툴다. 하지만 마 연구원은 드문 한족 출신 중국인 인재로 중국 거시경제를 읽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마 연구원은 “아직 많이 배우는 입장”이라며 “앞으로 양국을 잇는 금융 전문가가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현재 이들처럼 중국계 회사가 아닌 국내 은행 및 증권사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은 5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로 변호사 및 회계사를 포함한 중국 출신 주니어 인재들의 모임인 ‘재한금융인모임’의 회원 수는 80여 명이다. 이 가운데 70~80%가 은행, 증권, 보험사에서 일하고 있다. 김 위 연구원은 “1년에 두 번가량 회원들이 모이고 이 중 30명 정도가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회원 대다수가 여의도에서 근무하다 보니 다른 회사에 다니더라도 친한 사람들끼리는 자주 만나는 편”이라고 말했다.최근 고급 중국 인재 찾기에 가장 발 벗고 나서는 업계는 은행 증권사 등 금융업계다. 투자은행(IB) 등으로 발전하기 위해 중국 진출을 활발히 추진하면서 전문성은 물론 현지 인맥과 어학 능력을 갖춘 중국인 인재의 수요가 증가했기 때문이다.최근 산업은행은 IB 전문 인력 특별 공채로 중국인 3명을 신규 채용했다. 국내 관련 부서에서 연수 후 글로벌 IB 전문 인력으로 양성한다는 것이다.하나은행 역시 지난해 말 신입 공채로 외국인 행원을 선발했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출신의 이들 행원 3명은 올 3월 입사해 해외 현지법인의 기획과 영업을 맡게 된다. 하나은행은 이미 해외 진출을 담당하는 중국인 행원과 외환파생상품 운용을 맡고 있는 중국계 스위스인 직원도 확보해 둔 상태다. 신한은행도 지난해 국내 석·박사 공채를 통해 중국인과 몽골인 행원을 채용한 바 있다.또 우리은행에서 지난 2월 글로벌 인턴십 과정을 마친 12명 중 5명이 중국인이었다. 우리은행은 이들 중 한 명을 우리은행 중국법인에 정식 직원으로 채용했다. 그는 외국인 인턴 중 우리은행에 정식 채용된 첫 사례다. 아울러 우리은행은 중국내 현지화 특화 점포인 심천푸티엔지행에 한국계 은행 최초로 점포장을 포함한 전 직원을 중국인으로 채용하기도 했다.증권사의 중국인 인재 채용은 더 활발하다. 대우증권 미래에셋증권 굿모닝신한증권 신영증권 등 웬만한 대형사에는 각사별로 적게는 1명에서 많게는 5명까지 포진해 있다. 2006년 중국 증시의 폭발적인 성장과 맞물려 현지에 대한 금융 투자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조용찬 부장은 “한·중 양국 간 자본시장에 직접 투자할 수 있게 된 것도 금융권 중국인 고급 인재들의 수요와 공급이 늘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즉, 중국 기업이 외국에 직접 투자하기 위한 QDII(Qualified Domestic Institutional Investor)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3년 이상 해외 증권 투자 경험자를 일정 인원 고용해야 하며 외국 기업이 중국 본토 증시인 A증시에 투자할 수 있는 QFII(Qualified Foreign Institiutional Investor)를 얻기 위해서는 현지에 능통한 전문 인력이 필수라는 것이다.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총 외국인 유학생 4만9270명(교육과학기술부 통계) 가운데 중국인 유학생이 3만1829명(64.6%)이나 됐다. 국내 대학 캠퍼스를 거니는 외국인 학생 중 3분의 2가 중국인인 셈이다.또 한국 대기업과 금융권에서 일하는 중국인 엘리트들의 모임인 ‘전한국중국재직학인연합회’의 회원 수는 1400여 명에 이르며 국제 장기 체류 외국인의 취업 비자를 살펴보면 연구·전문직(E1~E5) 등 화이트칼라 종사자 중 중국인은 1749명(2007년 12월 기준)이나 된다.이들에게는 그간 국내 중국인들 사이에서 ‘괜찮은’ 직업으로 평가되던 학원 강사 등은 더 이상 눈에 차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또 몇 해 전에 비해 그 수가 크게 늘어난 만큼 인재의 질도 좋아졌다. 특히 금융업은 물론 중국 시장을 노리고 있는 여러 국내 대기업들이 중국인 인재 확보에 나서면서 수요와 공급 모두가 늘어나 중국인 고급 인재의 ‘시장’이 생겨난 것이다. 또 그동안 중국인들의 국내 취업을 제한했던 취업 비자 발급 요건도 크게 완화되면서 중국인 고급 인재의 국내 기업 진출 확대에 한몫했다.물론 국내 기업에서 일하는 중국인 엘리트와 이들을 고용한 기업 역시 불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중국인 고급 인재들은 국내 기업의 ‘연공서열’을 지적했다. 그들은 중국 내 회사의 경우 철저히 능력별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의 연공서열이 자신들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또 보수 부문에 있어선 타 외국계 기업에 비해 크게 적은 편은 아니지만 국내 근무 후 중국에 발령될 때 한국기준이 아닌 중국 기준에 맞춰 연봉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애써 키워 놓은 인재들이 중국 발령 후 외국계 회사로 이직해 버리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국내 기업들의 불만은 ‘옥석 가리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몇몇 곳을 제외하고는 알음알음으로 채용하다 보니 채용 과정에서의 평가 기준을 세우기가 어렵다고 한다. 또 이들의 경력을 검증하기도 힘들고, 대다수가 한국 내에서 유학을 마치고 바로 입사한 주니어급들이어서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야 하는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채용이 가능한 인재들도 현지의 주류인 한족보다는 조선족에 치우쳐 있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고급 인재의 한국 진출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한 중국 지역 전문가의 말처럼 “중국은 이제 세계 경제에서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됐기 때문이다.이에 따라 중국 인재 채용을 진행하고 있는 국내 그룹사 중에서도 SK는 가장 열심이다. 최태원 회장이 주창한 ‘차이나 인사이더’ 전략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이나 인사이더란 중국 내에서 중국의 리딩 기업이나 글로벌 메이저들과 경쟁해 이길 수 있는 수준의 역량을 갖추고, SK가 외국 기업이 아닌 중국 기업 그 자체로 인정받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은 얼마 전 사내 방송에서 “앞으로 언젠가는 중국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업들은 전부 중국인이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실제로 SK는 지난 2002년 ‘중국 공채 1기’를 시작으로 해마다 중국인의 채용에 힘을 기울여 왔다. 특히 지난해는 중국인 신입사원 40명을 채용했다. 그간의 채용 인원은 100명이 넘는다. 대부분 베이징대, 칭화대 출신 석·박사들이다.또 지난해 ‘글로벌 인턴십 프로그램’에도 21개국 165명의 외국인 학생 가운데 중국인 수가 113명에 달했다.SK 관계자는 “중국에 ‘제2의 SK’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중국 시장을 잘 이해하고 동시에 한국 문화에도 익숙한 우수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면서 “현지화 전략에 따라 중국 인재들을 중국 사업의 최선봉에 내세워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범위는 마케팅, 트레이딩, 인력, 연구·개발(R&D) 등 다양하다. 또 올해에는 베이징대, 칭화대 상하이교통대 등 중국 주요 대학에서 채용 설명회도 연다.SK에너지 글로벌사업개발그룹에서 일하는 왕옥상 씨 역시 SK의 ‘중국 공채’ 제도를 통해 입사했다. 글로벌사업개발그룹은 SK에너지가 해외에서 추진하는 사업에 대한 전략과 지원을 담당하는 부서다. “미국계 투자은행에서 상품 트레이딩을 하며 자원 개발에 관심이 생겼다”는 그는 중국과 미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연세대 국제대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운 후 SK에너지에 입사했다.왕 씨는 “그룹 내 최초의 중국인 임원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히면서 “석탄 자원이 다시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SK에너지가 추진하는 중국 내 석탄 개발의 첨병이 되겠다”고 다짐했다.이 밖에도 삼성그룹, 현대·기아차그룹, LG그룹 등 대다수의 그룹사는 해외 법인을 제외하고 더 많은 중국인 고급 인재를 채용할 예정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국내 근무 중인 외국인 직원 800명 중 200여 명이 중국인으로, 대부분 R&D에 종사하고 있다. 김춘화 삼정KPMG 중국사업부 부장은 국내에 진출한 최초의 중국 공인회계사이자 세무사다. 특히 이례적으로 조선족 출신 회계사인 김 부장은 중국어와 한국어는 기본이고 일본어와 영어까지 4개 국어에 능통한 재원이다.“지난 2004년부터 회계 및 관련 컨설팅 회사인 삼정KPMG에서 중국 진출 기업들에 중국에 대한 회계 세무 컨설팅과 전략 자문을 하고 있다. 삼정KPMG는 최근 컨설팅 부문을 강화 중인데 내가 있는 부서는 독립 컨설팅 법인 내의 중국사업부다. 중국사업부는 회사 차원의 모든 중국 관련 업무에 직간접적으로 투입돼 원활한 사업의 진행을 돕는 부서다. 총 10명의 부서원 중 3명이 중국인이다.”“하이테크 산업 등 외국 기업에 대한 특혜가 거의 사라졌다. 세제 등 각종 제도에서 현지 기업과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며 노동법과 환경 기준도 더욱 까다로워졌다. 이 때문에 중국에 진출하고자 하는 기업이 있다면 이전보다 더 강도 높은 현지 시장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중국 시장은 결코 ‘버릴 수 없는’ 시장임엔 분명하다.”“문화적인 차이가 크지 않은 만큼 큰 차이는 없다. 다만 한국 기업은 좀 더 팀워크를 중시하고 중국 기업은 개인의 독립성을 중시한다.”“양국 모두에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기업은 중국 진출을 위한 확실한 교두보를 얻을 수 있고 중국 기업은 향후 이들을 통해 한국 기업의 노하우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족은 중국 내 소수민족 중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영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에 한국 기업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최상위권인 경우 한국보다 임금이 높다. 정부 차원에서 해외 유학파 등에 대한 우대를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력직 고급 인재의 경우 유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초봉은 한국이 높다. 똑똑하고 젊은 주니어급 인재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취재=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