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진 회장 270억 원에 ‘속옷’ 팔고 어디로

잘나가는 개그맨 출신으로 속옷 업체 ‘좋은사람들’을 운영하던 주병진 씨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다.좋은사람들은 6월 9일 공시를 통해 대주주인 주병진 회장이 보유한 주식 348만5916주(30.05%) 전부를 이스트스타어패럴(대표 홍영기)에 장외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매각 대금은 270억 원으로 7월 22일까지 지급될 예정이다. 이번 매각으로 주 회장은 지난 1991년 ‘제임스딘’ ‘보디가드’ 등으로 출범한 속옷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된다.주 회장은 디자인에서부터 제품에 붙는 라벨까지 일일이 챙길 정도로 속옷 사업에 열정을 보여 온 데다 회사 실적이 뚜렷하게 나빠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번 매각을 의외의 사건으로 여기고 있다.잘나가던 연예계 생활까지 접어가면서 공을 들였던 좋은사람들을 매각한 이유는 무엇일까.업계에서는 주 회장이 속옷 사업을 접는 대신 새롭게 겉옷 사업을 시작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평소 주 회장이 겉옷에 관심이 많았고 이번에 사업 자금도 충분히 확보했다는 것이 이유다. 속옷 업계 관계자는 “주 회장이 지난 2005년 청바지 브랜드 ‘터그 진’을 선보이는 등 겉옷 사업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본격적으로 겉옷 사업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연예계 복귀설도 솔솔 나오고 있다. MBC ‘황금어장’의 인기 코너인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후 연예계에 전격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반대로 주 회장이 당분간 공식 활동을 접은 채 휴식을 취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주 회장의 한 지인은 “얼마 전부터 ‘지쳤다’ ‘쉬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해 왔다”며 “이번에 회사 매각이 마무리되면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쉴 것 같다”고 전했다. 청바지 브랜드 ‘터그 진’이 매출 부진으로 한 시즌 만에 간판을 내리자 사업 의지가 크게 꺾였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이에 대해 좋은사람들 측은 아직 공식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시중에 나도는 얘기는 모두 ‘설’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이 회사 마케팅실 김준호 부장은 “주 회장은 좋은사람들 설립 이후 지금까지 18년간 속옷 업계에서 ‘리딩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다져 왔다”며 “다만 주 회장은 본인의 역할이 여기까지가 아닌가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이와 함께 “회사는 지금 새로운 도약을 위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로벌화와 더욱 정교한 조직 경영에 힘을 쏟아야 하는데 이 역할을 다른 누군가가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좋은사람들은 지난 1991년 주 회장이 ‘제임스딘’이라는 브랜드를 선보이며 설립한 패션 속옷 업체다.주 회장은 당시 ‘백물(흰색 속옷)’ 일색이었던 국내 속옷 시장에 ‘패션 내의’ 개념을 처음 도입한 주인공이다. 내의가 단순히 속에 입는 옷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내의도 자신을 표현하는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소비자들에게 전파한 것이다.‘속옷도 패션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좋은사람들은 단숨에 업계의 다크호스로 부상했다.좋은사람들은 초창기 빅히트 브랜드 ‘보디가드’로 매출 1000억 원까지 성장했지만 경기 침체로 제자리걸음을 거듭하다 지난 2003년에는 매출이 900억 원대로까지 떨어졌다. 이후 패션 내의 ‘예스’로 지난해 122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등 등락을 반복해 왔다.영업이익은 2005년 61억 원에서 2006년 78억 원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다시 51억 원으로 뒷걸음치는 등 부침이 심했다.주 회장은 전문경영인을 따로 두지 않고 사업을 직접 챙기며 의류 사업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 왔다. 특히 주 회장의 패션 내의에 대한 감각은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수준급이라는 게 중론이다.김준호 부장은 “주 회장은 기본적으로 탈권위적인데다 감각적이고 크리에이티브한 면이 많다”며 “일반적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도 “속옷 시장은 제품 사이클이 짧은 게 특징이다. 유행이 금방금방 변하기 때문에 유행에 뒤처지지 않고 트렌드를 주도하기 위해선 아이디어가 풍부해야 하는데 이런 면에서 주 회장은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고 말했다.전반적으로 속옷 업계가 침체를 겪는 와중에서도 그런대로 사업을 이끌어 오던 주 회장도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자 사업을 접을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게 나온다. 패션 내의 업계에서 좋은사람들이 4년 연속 1위를 차지했지만 더 이상 따 먹을 ‘과실’이 부족하다는 것. 사정이 이런데도 비비안, 비너스가 확고한 쌍벽을 이루고 있는 란제리 업계와 달리 패션 내의 업계는 새롭게 진입하는 경쟁사들이 줄을 잇고 있는 상태다.해외 브랜드 가운데 캘빈클라인(CK) 속옷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고, 빅토리아 시크릿은 국내 진출 기회를 엿보고 있다.해외시장 공략도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좋은사람들이 해외 수출용으로 만든 브랜드 ‘J’가 올 4월부터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국내 역수입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은 해외에서의 부진한 실적이 주요인”이라고 풀이하고 있다.주 회장으로부터 주식을 사들인 이스트스타어패럴은 지난 5월 30일 자본금 5000만 원으로 세워진 의류 제조 및 판매 업체다.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주 회장은 이미 지난해부터 지분 매각을 추진해 왔다. 여러 업체들과 물밑 접촉을 가졌으며 베이직하우스, 이랜드 등 굵직한 패션 업체들과도 협상을 벌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랜드 등과는 금액이 맞지 않아 협상이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스트스타어패럴이라는 신생 업체에 지분을 넘기게 되자 업계는 의외라는 반응이다.이스트스타어패럴은 이번 지분 매수를 위해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 홍영기 대표는 삼성테스코 패션 매입 총괄 MD 출신이며 이사로 거론되는 인물들도 화인FC의 조진호 대표와 전 CJ투자증권 김동성 부사장 등 투자회사 출신들이다. 또 전 씨알에스캐피탈 대표인 유태환 씨와 최관수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임명할 예정이다.하지만 이 회사의 실제 소유주는 따로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들 회사에서 270억 원의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투자회사도 이 금액을 직접 투자했을 가능성은 낮다. 분명히 다른 실질 소유자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또 다른 관계자는 “이 회사의 실질 소유주가 가수 출신의 유명 연예기획사 대표이며 이 기획사는 톱클래스의 가수들을 대거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이스트스타어패럴이 이번 지분 매수를 위해 세워진 법인인 만큼 좋은사람들의 가치를 높여서 되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하지만 이스트스타어패럴 쪽에서는 자기 자금 및 차입금으로 좋은사람들을 인수한 후 새로운 경영진을 구성할 예정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좋은사람들 김준호 부장은 “7월 22일 잔금이 들어오면 23일 주주총회를 열어 새 경영진을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김재창 기자 changs@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