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과 주가
국제 유가가 130달러를 훌쩍 넘어섰고 물가는 치솟고 있다. 이제 인플레이션(인플레)은 경제학자들의 책상이나 분석가들의 머릿속에만 머물러 있는 단어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로 바뀌고 있다. 리터당 2000원을 넘어선 기름 값은 주말의 자동차 통행 대수를 줄이고 있고 동네 목욕탕과 트럭 사업자들은 치솟는 연료비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을 택하고 있다는 소식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지난 1970년대 말~80년대 초의 오일 쇼크가 지나간 이후 근 30년 만에 고물가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인플레 환경은 주식시장에 독(毒)이다. 네 가지 점에서 그렇다. 물가가 오르는 인플레 국면에서는 주식과 채권 등과 같은 명목자산(paper asset)이 가진 투자 메리트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첫 번째 이유다. 둘째, 최근의 인플레 환경은 기업들의 마진 악화로 귀결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식시장에 부정적이다.셋째, 인플레는 실물자산을 가진 경제 주체와 가지지 못한 경제 주체 간의 불평등을 야기한다. 인플레 환경에서는 글로벌 경제의 부(富)가 원자재 보유 국가로 차별적으로 이전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중국이 공격적으로 긴축을 계속한다면 세계 경제가 요즘과 같은 인플레 환경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물가 안정을 위해 성장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식시장에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인플레 환경에서는 주식과 채권 등과 같은 명목자산이 매력을 가지기 힘들다. 장기 ‘시계열 데이터(시간이 지나면서 축적되는 통계 데이터)’를 확보하기 쉬운 미국 자산들을 대상으로 인플레 국면에서의 자산별 가격 등락을 살펴보자.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4% 이상인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총 21년이었는데, 이 기간 동안 주식의 수익률은 대단히 부진했다. 실물자산(real asset)의 수익률에 크게 못 미친 것은 물론이고 물가 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수익률은 마이너스를 면치 못했다. 주식과 더불어 명목자산을 대표하는 채권의 실질 수익률 역시 마이너스권에 머물렀다.최근의 원자재 시장발(發 )물가 상승 압력은 기업들의 마진 악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됐던 삼성전자 휴대전화 하청 업체들의 단가 인상 요구와 이에 따른 생산 차질은 단순한 일회성 해프닝으로 보기 힘들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라 제조 원가가 높아지는데, 이런 원가 상승분을 최종 소비자에게 전가하기 힘든 상황에서 나타났던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전반적인 물가 레벨의 상향도 문제지만 물가 상승의 내용도 주식시장에 좋지 않다.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이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크게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직관적으로 해석하면 PPI는 기업의 제조 원가, CPI는 판매가로 볼 수 있다. 한국의 4월 PPI 상승률은 9.7%에 달했던 반면 CPI 상승률은 4.1%에 그쳤다. 지난해 10월 PPI가 CPI 상승률을 상회하는 물가지수 스프레드 역전 현상이 발생한 이후 스프레드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는 가격 결정력이 약한 중소기업(중소형주, 코스닥)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에서 이런 물가지수 스프레드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경우는 이번을 포함해 모두 6차례 있었는데, 이 중 기업 이익의 감소가 나타난 것은 5차례였다. 미국은 1985년 이후 4차례에 걸쳐 물가지수 스프레드 역전 현상이 나타났는데, 이 중 3차례에 걸쳐 기업 이익이 감소했다.100%의 확률은 아니지만 물가지수 스프레드는 기업의 마진을 가늠하는 직관적인 잣대가 될 수 있다. 대체로 물가지수의 역전 현상이 발생하고 약 2분기 후 기업 실적이 영향을 받았다. 이렇게 보면 작년 4분기부터 물가지수 역전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에 금년 2분기부터 기업 이익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최근과 같은 물가 환경은 기업 실적 둔화를 매개로 주식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미국에서 생산자 물가지수 상승률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보다 높았던 국면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모두 11차례 있었다. 이 중 8번 주식시장이 약세를 보였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이후 6차례의 물가지수 스프레드 역전 현상이 나타났을 때 모두 주식시장은 약세, 또는 횡보장을 면치 못한 것이다.인플레는 자원 배분의 왜곡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인플레 환경 하에서는 자원을 가진 국가로 글로벌 경제의 부(富)가 이전된다. 최근의 주가 동향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 5월 말까지 연간 주가지수 등락률이 플러스를 기록하고 있는 국가는 모두 7개였는데, 이들 중 6곳이 원자재를 보유하고 있는 자원 부국이었다. 브라질 캐나다 러시아 멕시코 아르헨티나 태국 등은 글로벌 증시가 조정을 나타내고 있는 2008년에도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의 인플레 환경은 한국과 같은 자원 수입국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2007년 3분기 말까지 세계 경제는 ‘높은 성장+낮은 물가’라는 주식시장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환경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최소한 낮은 물가를 말하기는 힘든 상황이 돼 버렸다. 인플레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원자재 가격의 급등세가 진정돼야 할 텐데, 최근의 원자재 가격 급등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밑그림도 달라질 것이다.최근의 원자재 가격 급등이 글로벌 유동성의 흐름만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원자재 가격 급등을 달러 헤지의 결과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의 원자재 가격 급등은 13억 명의 인구를 가진 중국의 성장과 이에 따른 원자재 소비 증가라는 펀더멘털적 요인이 유동성 요인보다 우선한다고 본다. ‘고성장+낮은 물가’라는 조합은 ‘고성장+높은 물가’라는 조합으로 바뀌어 버렸다. 인플레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서는 이젠 성장을 희생해야 하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고, 이는 글로벌 증시에 잠재적인 부담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19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미국의 사례를 들어 중국이 공격적으로 긴축을 시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기도 하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렸던 폴 버커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으로 재임하던 시기, 미국은 공격적인 긴축을 단행했다. 오일 쇼크와 이에 따른 인플레에 대한 중앙은행의 대응이었다. 1981년 5월 미국의 연방기금금리는 20%에 달했다. 시간이 지난 후 폴 버커의 공격적인 긴축 정책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인플레의 원인이 유가 급등에 따른 비용 상승에 있었는데 중앙은행이 경직적 통화 정책을 실시해 수요까지 위축, 스태그플레이션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1970년대 오일 쇼크 국면과 같은 코스트 푸시(cost push) 인플레이션 환경이라면 중앙은행의 공격적 긴축은 정당화되지 못할 수도 있는데, 한국이 그런 경우다. 그렇지만 중국은 다르다. 에너지가 됐건, 곡물이 됐건, 금속이 됐건 상품 가격 상승의 일차적인 원인은 중국의 수요 증가에 있다. 한국이 직면해 있는 코스트 푸시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은 중국에 있다는 얘기다. 중국이 공격적으로 긴축을 하지 않으면 인플레 상황은 완화되기 힘들다. 결국은 성장과 물가 안정 중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현재 중국의 물가 상승률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 높다. 중국이 인플레 수출국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낮은 물가라는 환경에서는 성장의 과실을 그대로 즐기면 됐다. 그렇지만 인플레 환경에서는 성장을 일정 부분 희생해야 하는 것이다. 작년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인플레에 대한 우려가 낮아지기 전까지는 주식 투자에 대한 기대 수익률을 낮춰야 할 것이다.김학균·한국투자증권 수석연구원hkkim@truefriend.com©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