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연구소들이 올해 경제 전망을 수정 발표하면서 물가 불안을 국내 경제가 직면한 최대 과제로 꼽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경기가 하반기로 갈수록 급속하게 하강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고 있어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상승)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최근 삼성경제연구소(삼성연)는 ‘2008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을 지난 3월 당시 전망치와 동일한 4.7%로 유지했다. 외견상으로는 큰 폭의 경기 둔화는 없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내용은 영 딴판이다.삼성연은 이번 보고서에서 올해 국내 경제가 상반기에 5.5% 상승하는 반면 하반기에는 3.8%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다시 분기별로 나눠보면 1분기 5.7%를 기록한 경제성장률이 2분기 5.3%, 3분기 4.0%, 4분기 3.6%로 갈수록 악화되는 것으로 전망됐다.반면 지난 3월에는 상반기 4.9%, 하반기 4.4%를 전망치로 내놨었다. 이는 기존 전망에 비해 하반기로 갈수록 경기가 급속도로 나빠질 것이라는 의미다.성장률을 구성하는 하위 지표들을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민간 소비는 기존 4.3%였던 전망치가 이번에 3.3%로 떨어졌고 설비 투자는 6.7%→ 5.1%, 건설 투자는 2.9%→ 2.3%로 상당 폭 둔화될 것으로 예상됐다.연구소 측은 수출이 비교적 탄탄하게 버텨주고 있어 외견상 성장률이 크게 빠지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수 경기는 이미 상당 부분 위축됐고 수출도 하반기로 갈수록 둔화돼 경기 하강 속도는 한층 가속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기업들의 체감 경기는 이미 악화된 상황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올 3분기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전망치는 작년 1분기 이후 가장 낮은 92에 그쳤다. 또 한국은행이 내놓은 제조업체들의 5월 업황 BSI도 85로 전월 대비 2포인트 하락했다. BSI가 100 이하면 향후 경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기업들이 더 많다는 의미다.당장이라도 내수 진작책을 써야 할 상황이지만 문제는 물가 불안이다. 지난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년 8개월 만에 처음으로 4%대에 진입한 데다 최근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 안팎을 오리내리면서 물가 불안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그러자 고환율 정책을 고집하던 정부도 환율이 물가에 악영향을 준다는 비판을 의식해 환율 정책을 수정할 만큼 불가 불안이 심각한 상황이다. 삼성연도 이번에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을 3.3%에서 3.9%로 대폭 높여 잡았다. 특히 올 3분기까지는 4%대 상승세가 지속될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였다.이에 따라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을 펴겠다며 환율과 저금리의 강공 드라이브를 펴 왔던 정부도 최근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마저 1050원 선을 넘나들자 달러를 시장에 내다파는 매도 개입을 전격 단행했다. 그러자 시장에서는 정부의 성장 위주 경제 정책에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원화 환율을 올리고 금리는 내리는 쪽에 무게가 실렸던 경제 정책이 물가 안정 쪽으로 급선회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실제로 정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율은 올리고 금리는 내리는 쪽에 힘을 잔뜩 실어왔다. 정부 고위관계자가 나서 내외 금리차는 시장 불안 요인이라며 미국보다 높은 한국의 정책금리를 비판하기도 했다.그러나 국제 유가가 당초 예상보다 가파르게 급등하고 예전과 달리 환율 상승에 과도하게 베팅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나자 환율 하락 안정을 유도하는 한편 한국은행과의 만남을 통해 물가 안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하지만 이 같은 움직임을 일부에서 성장 정책 포기로 해석하자 정부는 상당히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올해 생긴 일자리 수가 20만 개 밑으로 떨어졌고 경상수지도 여전히 나쁘기 때문에 성장 위주의 정책을 펴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