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학과 경영학에서 주목 받는 이론이 있다.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 Theory)’이라는 특이한 명칭을 가진 이론이다. 1982년 미국의 한 잡지에 제임스 윌슨과 조지 켈링이 공동으로 발표한 ‘깨진 유리창’이란 글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다. 어떤 건물에 유리창 하나가 깨진 채로 방치돼 있으면 주변 사람들은 그 건물이 관리되지 않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 장의 유리창이 깨졌지만 이어서 다른 유리창이 모두 깨지게 되고 건물의 안팎은 낙서와 오물 투성이로 변하고 만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나아가 건물 전체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주변 지역까지 모두 걷잡을 수 없는 무질서와 혼란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처음 한 장의 깨진 유리창을 수리하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소프트웨어 불법 복제 행태에서도 ‘깨진 유리창 이론’을 절감할 수 있다. 불법 복제 행태는 남을 따라 처음 노래 한두 곡을 복사해 듣는 사소한 일부터 시작되지만 결국에는 온라인을 통한 무차별 대량 복제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정품을 사용하면 ‘바보’가 되고, 단속에 걸리면 ‘재수 없고 억울한 일’이 된다. 그 결과 현재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율 45% 이상이라는 심각한 실상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1990년대 초 미국 뉴욕의 지하철은 범죄의 소굴로 악명이 높았다. 모든 차량은 낙서로 뒤덮였고 해마다 약 2만 건 이상의 범죄가 지하철에서 벌어졌다. 당시 뉴욕 지하철 담당 경찰서장으로 부임한 윌리엄 브래튼은 ‘깨진 유리창 이론’을 지하철 범죄 척결에 도입했다. 그는 큰일을 제쳐두고 기본적인 지하철 역사의 무임승차부터 단속하기 시작했다. 토큰을 사지 않고 개찰구를 뛰어넘는 일이 일상적이던 당시의 현실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복 경찰들이 잠복하고 있다가 무임승차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예상 밖의 긍정적인 결과가 도출됐다. 무임승차객 중 상당수가 수배자거나 무기 소지자였던 것이다. 결국 지하철 범죄는 반 이하로 감소해 지하철이 누구나 안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최근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를 근절하기 위한 정부의 야심찬 대책이 발표됐다. 현재 45%인 불법 복제율을 40% 이하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지난 10년간의 노력으로도 5% 밖에 낮추지 못했던 어려운 임무다. 그렇기에 과연 강력한 행정력과 의지만을 가지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거창한 계획과 선전보다는 간과하지 말아야 할 보다 중요한 사항이 있다. 바로 사소하게 보일지라도 당장 눈에 보이는 불법 복제 행위부터 청소를 시작하는 것이다. 정부 주변부터 깨끗이 정리하고 아무리 사소한 불법 복제라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는 일이다. 현재 불법 복제의 대부분은 온라인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P2P 사이트나 웹하드 업체, 대규모 정보 공유 사이트에서는 불법 콘텐츠를 콘텐츠의 질이 아닌 ‘양’에 따라 쉽게 얻을 수 있다. 서비스 업체 측은 일반 사용자의 개별적인 행위임을 내세워 슬그머니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고 있으니 이는 고삐 풀린 망아지나 마찬가지다.이렇듯 온라인 곳곳에서 널려 있는 불법 복제 콘텐츠야말로 지식 경제 사회의 대표적인 ‘깨진 유리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 채 불법 복제율을 낮추겠다는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수 있다.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불법 복제가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되는 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다.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은 연례 보고서인 ‘전 세계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 현황 보고서’를 발표했다. 작년 한 해 우리의 노력이 어느 정도의 결실을 거뒀는가 알 수 있는 지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온라인 불법 복제라는 깨진 유리창을 고쳐 인터넷을 정화하게 되면 정부의 야심찬 계획에도 서광이 비치기 시작할 것임을 기대해 본다.정재훈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의장약력: 1964년생. 86년 서울대 법대 졸업. 88년 30회 사법시험 합격. 91년 법무법인 한미 변호사. 95년 미국 뉴욕대 법대 석사과정(통상 및 지식재산권) 졸업. 96년 뉴욕주 변호사. 2002년 MS 대표 법률고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