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투자전략

6월 이후 증시를 조망하기에 앞서 이머징 마켓에 대한 시각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그 필요성을 더욱 재촉하고 있다. 베트남 위기설은 한동안 잠잠했던 이머징 마켓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를 자극하고 있다. 과거에는 우리 증시가 이머징 마켓에 속해 있다는 피동적 입장에서 이머징 시장을 분석했다. ‘이머징의 인기=한국 증시 강세’라는 프레임 하에서 바라본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이러한 분석 툴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이머징 마켓에 투자하는 입장에서도 이머징을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얘기다.즉, 한국 증시는 이머징에 대해 1인칭임과 동시에 3인칭이기도 한 복합적 존재가 됐다. 지난 2005년 이후 해외 투자 붐이 일면서 해외 주식형 규모가 국내 주식형에 필적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이머징 아시아, 이머징 유로, 라틴, 남아프리카, 독립국가연합(CIS) 등 해외 곳곳에 직접 투자 및 포트폴리오 투자 등의 형태로 진출했다. 따라서 해외 투자 자금의 성과를 평가하기 위해서도 이머징 시장을 분석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금융 위기 속에서도 국내 금융회사는 큰 피해를 보지 않았는데, 이것은 해외 투자가 선진국보다는 이머징에 집중됐기 때문에 얻은 행운이었다.그런데 만약 베트남 위기설(베트남은 IMF로 가기보다는 일종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에 비해 현재 베트남의 외채 수준 및 외환보유액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다)에서 보듯이 이머징 마켓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다면 우리는 이머징 마켓에 속해 있다는 1인칭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이머징 투자에 따른 손실을 보게 되는 3인칭적인 입장에서 이중으로 피해를 보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머징 마켓의 장기적 안정성이 중요하다.분명한 것은 이머징의 펀더멘털이 과거보다 훨씬 개선됐다는 사실이다. 외환보유액 축적이나 재정의 상대적 건전성, 경상수지 등의 측면에서 본다면 과거보다는 훨씬 안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일례로 국제 유가가 폭등했던 1970년대 이머징 마켓은 대규모 계속사업적자를 안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물론 국제 유가가 급락세로 돌아선다면 유가 상승에 기초해 호황을 누려온 일부 이머징 마켓의 안정성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국제 유가도 투기적 거품의 존재와 별개로 펀더멘털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어서 추세적 하락으로 돌아서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일반적으로 유가가 상승하는 시기에는 재량적 소비가 타격을 받는 경우가 많다. 경기 둔화로 인해 전반적인 소득이 크게 변하지 않거나 감소하는데 유가가 상승하면 필수 소비가 비자발적으로 늘어나게 되고 재량적 소비는 타격을 입게 된다. 전체 증시도 유가 상승 국면에서는 정보기술(IT)이나 자동차와 같은 경기 민감형 섹터의 조정으로 인해 약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정형화된 패턴과 달리 국제 유가가 큰 폭으로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IT나 자동차 관련주들이 시장의 중심권으로 이동하고 있다.이 역시 이머징 내수의 확장과 연관돼 있다. 과거에는 국내 증시에서 IT나 자동차 등 경기 민감형 종목군들은 대부분 선진국 소비 시장을 겨냥한 수출주로 분류됐다. 선진국 경기만 바라보는 천수답 매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 섹터의 선진국 경기 의존도가 많이 축소됐다. IT를 대표하는 삼성전자만 하더라도 미국을 포함한 아메리카 대륙의 매출 비중이 2000년 26%에서 현재는 19.9%로 감소했다. 반면 중국이나 아시아 시장의 매출은 2000년 12.4%에서 현재는 세 배가 넘는 37.4%로, 지역별 최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자동차를 대표하는 또 다른 경기 민감형 수출 대표주인 현대자동차 역시 지역별 출고(실제 판매와 거의 차이 없음)를 보면 미국 비중은 꾸준히 줄어든 반면 중국과 인도 시장의 합산 출고 비중은 19.7%로 미국이나 유로 비중을 훨씬 앞지르고 있다. 이처럼 수출주, 특히 해외 선진 경기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특성이 있었던 IT와 자동차마저도 선진국 마켓으로부터 어느 정도의 독립된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기업의 이익 구조가 안정됐다는 것을 입증한다.물론 국내 기업 이익이 미국발 경기 침체로부터 자유롭다고 단언할 수 있는 정도는 아직 아니다. 상반기 중 미국의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 실적이 건재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다. 과거 미국 경기의 침체기에 국내 기업 실적이 움츠러든 것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패턴이 확인됐고 주식시장은 이를 반영해 1500선 중반에서 하락세를 마치고 반전할 수 있었다.하지만 매크로와 기업 실적 간 연결 고리가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미국 경기가 둔화되면 시차를 두고 유로 경기가 하강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뒤이어 유로 수출 비중이 가장 높은 중국 수출이 연쇄적 타격을 입게 되고 중국 수요에 의존한 남미 등과 같은 이머징 마켓이 최종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선진국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 이익을 건강하게 만들었던 이머징 내수가 물가 상승 여파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난제도 남아 있다. 이머징 마켓의 물가 상승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면 정책금리 인상을 통한 긴축이 하나의 트렌드가 될 수 있다.지난해 하반기 이후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인해 기업들의 원가 상승 부담이 커져 있는 상태다. 문제는 이 같은 원가 상승 요인을 소비자에게 언제, 어느 정도 전가하느냐다. 그런데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생산자 물가와 소비자 물가 간의 갭이 크기 때문에 소비자로의 전가 압력이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다.현재까지는 강화된 글로벌 경쟁으로 인해 기업들이 원가 상승 부담을 내재화하고 소비자에게 전가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이 지속되면 결국 기업들이 원가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면서 소비자 물가가 상승하게 되고 금리 인상과 같은 긴축 수단이 동원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실질 구매력 감소에 직면한 소비자의 지출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 하반기 기업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자 전가가 얼마나 현실화되느냐에 달려 있다.지난해 하반기에 중국 관련주가 득세했다면 올해 상반기는 IT와 자동차가 주도했다. 주도주의 변화 속에서 포트폴리오 조정이 쉽지 않았겠지만 실적이 뒷받침된 중국 관련주에서 IT 및 자동차 주의 순환적인 주도는 우리 시장의 과열을 억제하면서 주가가 완만하게 제 가치를 향해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 되고 있다. 6월 이후부터 하반기 증시까지는 IT와 중국 관련 주가 순환하면서 시장을 끌고 갈 것으로 예상된다. 하반기 중 독점적 주도주가 되기 위해서는 IT는 단기 사이클형이라는 약점, 중국 관련 주는 이익 모멘텀의 주가 선반영이라는 내재적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종합하면 이머징의 펀더멘털 기반은 과거보다 견고하다. 일부 펀더멘털이 불안하거나 정치적 시스템이 불안정한 개별 국가의 경우에는 지속적인 관찰 대상이지만 전반적으로 이머징을 평가한다면 향후 달러 약세가 마감된다고 해도 과거와 같이 이머징이 위기로 진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2005년 이후 투자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해외 투자는 여전히 유효하고 유력한 투자 수단이다.지난 3월 중순 이후의 상승 배경이 유효하기 때문에 KOSPI가 6월 중 1900선 이상으로까지 확장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하반기 증시는 덥지도 차지도 않은 가운데 중국 관련 주와 IT 및 자동차의 순환매가 전개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1년 이상의 장기 투자가가 아니라면 목표 수익률을 낮추기 바란다.김세중·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 21091@shinyo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