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알려진 대로 이명박 대통령의 별명은 ‘불도저’다. 서울시장 재직 시 추진했던 청계천 복원이나 시내버스 중앙차로제 같은 정책이 대표적이다. 주위에서 반대를 하면 설득하고 그래도 반대하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이런 점을 감안할 때 이 대통령이 지난 1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에서 열린 국가 조찬 기도회에서 한 말은 다소 이례적이다. 그는 이날 “국민과 역사 앞에서 교만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면서 더 낮고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고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와 함께 “대통령인 나 자신이 모든 것을 먼저 바꿔가겠다. 남에게 바꾸라고 하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을 먼저 바꾸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를 둘러싼 ‘광우병 논란’ 등과 관련, 국민과의 의사소통 단절 등 대응 과정에서의 미흡함을 인정하고 더욱 겸손한 자세로 이를 개선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거듭 나타낸 것이다.이 대통령의 이런 태도 변화는 최근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우리 경제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출범 초 MB 정부는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며 국민들에게 희망찬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사상 초유의 고유가와 국제 원자재 값 폭등, 환율 인상 등은 새 정부의 이러한 계획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유가와 원자재 값이 치솟으면서 이는 고스란히 국내 물가 상승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MB 물가지수’라는 이름으로 52개 생활필수품을 별도로 지정해 관리하도록 했지만 이렇다 할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성장은 고사하고 저성장 속에 물가 불안이라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감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4.1% 올라 경기 부양에 나서려던 정부 당국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올 초 정부가 내세운 소비자물가는 3.3%였다. 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월 3.9%, 2월 3.6%, 3월 3.9% 등으로 3% 후반대를 계속 유지해 왔다. 올 연말 소비자물가는 4% 초반, 최악의 경우 4% 후반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무역수지 쪽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무역 적자는 올해 들어서도 계속돼 5개월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지식경제부와 관세청에 따르면 1월 38억5000만 달러, 2월 12억8000만 달러, 3월 8억2000만 달러, 4월 4000만 달러로 집계됐다.누계 무역 적자 규모는 이미 60억 달러에 육박해 정부가 올해 목표로 정한 130억 달러 무역 흑자가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 추세가 5개월 연속 이어진 것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처음이어서 10년 동안 지속돼 온 무역수지 흑자 기조가 깨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그나마 급등한 환율 덕분에 수출 중심 대기업들의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무역 적자 규모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끝없이 치솟는 고유가 때문에 향후 무역수지를 낙관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최근 산업연구원(KIET)은 ‘무역수지 적자의 배경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국제 원유 가격이 10% 오르면 우리나라의 무역수지는 80억 달러가량 악화된다고 분석했다.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일자리 창출에도 빨간 불이 켜지고 있다. 올해 초 35만 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던 정부는 얼마 전 열린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 합동회의’에서 목표치를 28만 명으로 낮췄다. 그러나 이마저도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올해 취업자 증가 폭이 22만2000명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하는 등 일자리 창출은 원활하지 않을 전망이다.KDI는 취업자 수가 해마다 감소해 2012년에는 15만여 명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이 같은 고용 악화는 곧바로 소득 감소와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고 이는 내수 침체로 연결돼 기업 수익 악화로 나타나 고용 부진으로 다시 돌아가는 전형적인 악순환의 덫에 빠진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경제 정책을 이끌고 책임져야 할 당과 정부, 청와대 간 불협화음이 빚어지는 것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책임자들마다 하는 얘기가 다르다 보니 각 경제 주체들로서는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나올 정도다.정부와 여당은 최근 추가경정예산 편성 문제를 두고 심각한 대립 양상을 보였다. 기획재정부는 하강 국면에 진입한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추경을 통해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한나라당은 인위적인 경기 부양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거부하고 있다.감세 법안 처리에서도 이견은 여전하다. 여당은 LPG 특소세 면제법 등 감세 법안 관련 법안 10여 개를 반드시 처리해야 할 중점 법안으로 꼽았다. 하지만 정부 측은 이들 법안에 대해 ‘수용 곤란’ 또는 ‘일부 수용’ 등 부정적이다.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감세 법안의 경우 그 실효성과 세수 부족 여부 등을 면밀해 검토해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처리는 무리한 요구”라고 말했다.정부 내에서 그리고 정부와 여당 사이에 경제 정책에 관한 시각차가 이처럼 수시로 노출됨에 따라 앞으로 경제 형편이 더욱 어려워질 경우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더 확산되고 있다.김재창 기자 changs@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