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4~10일) 국제 유가가 사상 처음으로 배럴당 120달러선까지 넘어서며 연일 급등을 거듭했다. 올 초 100달러를 넘었다는 뉴스로 새해를 시작했는데 반 년도 안돼 20%나 더 뛰어 오른 것이다. 당연히 휘발유 경유 등 국내 석유제품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아 운전자들의 부담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그런데 국민들의 유류비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정부와 정유 업계가 국내 석유제품 소매 가격이 높은 것을 두고 ‘네 탓’ 공방만 되풀이해 빈축을 사고 있다.국제 유가의 기준이 되는 뉴욕상업거래소 서부텍사스산 원유의 선물 가격은 최근 배럴당 120달러 중반대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운전자들이 이미 체감하고 있다시피 국내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와 경유 소비자 가격도 많이 올랐다.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주유소 종합정보시스템(www.opinet.co.kr)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값은 리터당 1746원이었다. 전 주에 비해 리터당 40원가량 오른 것이다. 경유 가격도 리터당 1687원으로 전 주 대비 가격 상승 폭이 63원에 달했다. 경유 값이 오르는 속도가 더 빨라서 휘발유와 경유 간 가격차는 리터당 59원까지 좁혀졌다.국민들의 연료비 부담은 계속 늘게 생겼는데 정부는 높은 휘발유 소비자 가격이 정유 업계의 높은 마진 때문이라고 하고 정유 업계는 유류세 핑계만 대면서 서로 책임 소재를 미루기에 바쁜 모습이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평균으로 세금이 붙은 휘발유 최종 소비자 가격은 한국이 리터당 1659원, 일본이 1397원이어서 실제 한국 운전자가 262원가량 더 비싼 기름을 넣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정부는 정유 업계를 겨냥해 포문을 열었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분석 자료에는 지난해 6월 말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을 제외한 국내 휘발유 소비자 가격이 리터당 661원으로 일본의 592원에 비해 12%나 높다고 나와 있다. 이는 일본이 석유 산업에 경쟁 체제를 도입해 휘발유 가격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결론이다.국내에서도 정유 4사의 과점 체제를 깨고 경쟁을 더 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최근 정부가 도입했거나 하려고 하는 주유소 가격 공개 사이트 운영이나 정유사 공장도 가격 공개 주기 단축과 같은 석유 시장 구조 개선 대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리로 이어갔다.정유사들은 발끈했다. 정유 업계의 이익단체인 석유협회는 반박 자료를 통해 지난 1분기 국내 휘발유 세전 평균 가격은 리터당 780원80전으로 일본의 840원7전에 비해 60원 낮았다고 밝혔다. 즉, 국내 휘발유 소비자 가격이 비싼 것은 정부가 가져가는 유류세 때문이란 얘기다.똑같이 한국과 일본의 휘발유 값을 비교하는데 정부는 한국이 비싸다고 하고 정유 업계는 그 반대라고 주장하니 국민들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느 쪽 주장이 사실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둘 다 맞다. 이는 각각 가격을 비교한 시점이 달라서 생기는 차이에 불과하다. 정부는 지난해 6월 말을 기준으로 해서 한국이 비싸다고 했고 정유 업계는 최근 3개월 평균 가격을 기준으로 이를 반박한 것이다.여론의 흐름은 그래도 가장 최근 가격을 비교한 정유사들의 주장이 조금 더 타당하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정유사들에 유가의 책임을 돌리기 위해 작년 6월 말이라는 애매한 시점의 가격을 비교한 것은 정부가 좀 무리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하지만 정유사들도 할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작년 연간으로는 따져서 국내 휘발유 평균 가격이 일본보다 리터당 13원가량 비쌌다. 딱 잘라 말하긴 힘들어도 이웃나라와 벌어진 이 같은 가격 차이만큼 지난 1년간 정유사들이 마진을 더 챙겼을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정유 업계는 그러나 일본은 수출을 하지 않는데 반해 한국 정유사들은 50% 가까운 물량을 수출해서 채산성을 높였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어쨌든 국민들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차량 연료 가격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어도 매번 정유사 마진 때문이냐, 세금 때문이냐를 놓고 공방만 되풀이해서는 답이 나올 리 없다는 지적이다.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