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해 미국의 에너지 및 군수 회사인 핼리버턴은 본사를 텍사스 휴스턴에서 아랍에미리트연합의 두바이로 옮긴다고 발표했다. 당시 핼리버턴은 세금 회피 목적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맹렬히 비난했다.#2. 지난달 영국의 제약 회사 샤이어와 출판 회사 유나이티드비즈니스미디어는 각각 절세를 위해 본사를 아일랜드로 이전하기로 했다. 이전 발표 후 자유민주당의 빈스 케이블 대변인은 “뻔뻔한 세금 회피”라고 논평했다.영국과 미국의 대기업들이 세금 부담이 적은 아일랜드 스위스 두바이 등으로 본사를 옮기고 있다. 기업들이 빠져나가는 국가에선 정치권을 중심으로 기업들의 조세 회피 움직임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기업의 ‘도덕성’에 대한 비난은 해외 영업 비중 확대와 국경을 뛰어넘는 인수·합병(M&A)으로 본국과의 유대감이 희박해지는 다국적기업들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업 ‘엑소더스(탈출)’에 대비해 좀 더 우호적인 세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영국 기업들이 세금 문제 때문에 잇따라 본사를 스위스나 아일랜드 등으로 옮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지난달 아일랜드로의 본사 이전을 발표한 제약 회사 샤이어와 출판 회사 유나이티드비즈니스미디어 외에 인터내셔널파워(전력) WPP(광고) 아스트라제네카(제약) 글락소스미스클라인(제약) 등 다른 영국 기업들도 본사 이전을 고려 중이다.옥스퍼드대 기업세제센터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다국적기업의 6%(조사 대상 5421개 회사 중 347개)가 절세 등을 이유로 본사를 이전했다. 라이벌 기업이 낮은 세율을 보장하는 국가에 본사를 두고 있을 경우 기업들은 끊임없이 절세 압력을 받게 되고 본사 이전에 나서게 된다는 설명이다. 아일랜드 스위스 등 일부 국가들이 매력적인 세금 혜택을 앞세워 끊임없이 ‘구애’하는 것도 다국적기업들의 본사 이전을 가속화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법인세율이 12.5%로 미국(35%) 영국(28%)의 절반 수준도 안 된다.이들 국가들은 최근 들어 특히 지식재산권에 대한 세제 혜택을 주요 마케팅 수단으로 삼아 다국적기업들을 ‘유혹’하고 있다. 브랜드나 특허권 등 무형 자산을 가진 기업이 세율이 낮은 국가에 본사를 두고 해외 자회사 등에서 사용료를 받을 경우 세율이 높은 국가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줄일 수 있어 절세 효과가 있다. 크래프트 구글 일렉트로닉아츠 야후 등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이 최근 유럽 본사를 영국에서 스위스로 옮긴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인터넷 경매 업체 이베이,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는 유럽 본사를 룩셈부르크로 이전했으며 시스코 나이키 스타벅스는 네덜란드에 유럽 본사를 두고 있다. 이탈리아 명품 회사인 구찌와 스웨덴의 대표 기업인 이케아도 정작 본사는 네덜란드에 있다.상대적으로 세율이 높아 자국 기업들을 자꾸 빼앗기는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의 입장에선 속이 편할 리 없다. 이들은 저세율 국가들이 조세 회피를 위한 ‘이윤 이전(profit shifting)’을 부추기고 있다며 비난과 견제 수위를 높이고 있다. 프랑스의 정치인 아놀드 몬테버그는 스위스에 대해 “약탈행위를 하고 있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은 올 연말 유럽연합(EU) 대통령 선거에서 회원국의 법인세율을 통일하자는 EU 집행위원회(EC)의 제안을 강력하게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독일 영국은 자국 기업들의 자산 해외 이전에 대해서도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국세청(IRS)은 제약 회사로부터 거둬들이는 세금만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지식재산권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독일도 최근 기업 자산의 해외 이전에 대한 규정을 강화했다. 영국 정부는 자국에 본사를 둔 기업의 경우 해외 임대,이자,배당,사용료 소득 등 자산 소득(passive income)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하는 조세회피방지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상태다.박성완·한국경제 기자 psw@hankyung.com